[김길웅의 借古述今] (327) 겨라고 해서 바람에 날려 보내는 부자 없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겨 : 거둬들인 곡식을 장만하며 일곡을 얻어내고 남은 껍질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불리는 : (바람에) 날려 보내는
*부제 : 부자
*엇나 : 없다

흉년이 들면 이 겨도 가축 차례에 가지 않았다. / 사진=픽사베이
흉년이 들면 이 겨도 가축 차례에 가지 않았다. / 사진=픽사베이

‘겨’라 하면 곡식을 장만할 때 알곡을 얻은 끝에 마지막 남는 껍질 따위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제주방언으로 ‘졸레’라 한다. 남은 껍데기라는 뜻이다. 

가을 농사가 풍년이라 이곳저곳 들녘에서 농부들이 태평가를 부를 양이면, 이 겨가 주로 집에서 기르는 소나 돼지의 먹잇감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하지만 흉년이 들면 이 겨도 가축 차례에 가지 않았다. 굶주려 배는 등짝에 달라붙고 눈이 팽팽 돌 지경인데 어찌하랴. 겨도 없어서 못 먹는 시절인들 왜 없었겠는가. 적빈(赤貧)이다, 한빈(寒貧)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빈궁함이 그야말로 참혹의 극에 달한 것이었다.

잘 산다고 떵떵거리는 부잣집도 먹지는 않더라도 푸는 체(곡식을 장만하며 알곡과 체를 바람에 불려 갈라놓는 체. 바람에 까불릴 때 씀)로 알곡과 분리해 놓은 겨를 버리지 않고 갈무리했던 것이다.

혹여 비상식량이 필요할 것에 대비함이다. 생활의 지혜라고 할까. 조상들의 질박 검소한 생활의 한 단면을 무심히 지나칠 게 아니다.

필자, 1950년대 초등학생 시절 바다에서 캐어온 톨(톳)에 겨를 섞어 이른바 ‘톨밥(톳밥)’을 먹었었다. 사람이 먹는 게 아닌 걸 알면서 죄 없는 아레미 낭푼(알미늄 양푼)만 긁었다 긁었다 하던 게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겨 불리는 부제 엇나.’

곡물을 귀하게 여기는 삶을 환기할 때 하는 말이다.

그런 고생을 겪어선지 휴지 한 장도 아껴 쓰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요즘 아이들 귀함 천함을 너무 모른다. 코 한번 닦는다고 한꺼번에 서너 장을 뽑는 걸 보며 짓노니 한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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