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 최대 학살지, 정방폭포-소남머리 인근서만 255명 희생 

제주특별자치도와 정방4.3희생자유족회는 29일 서귀포시 동홍동 정방폭포 일원, 서복전시관에서 ‘정방 4.3희생자 위령공간 제막식’을 개최했다.  사진=제주도.
제주특별자치도와 정방4.3희생자유족회는 29일 서귀포시 동홍동 정방폭포 일원, 서복전시관에서 ‘정방 4.3희생자 위령공간 제막식’을 개최했다. 사진=제주도.

유족들의 애끓는 눈물 소리를 닮은 세찬 물줄기가 쏟아지는 정방폭포에 제주4.3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 공간이 75년 만에 마련됐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정방4.3희생자유족회는 29일 서귀포시 동홍동 정방폭포 일원, 서복전시관에 마련된 정방 4.3희생자 위령공간 제막식을 열었다. 

안개비가 흩날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위령 공간 제막식에는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김창범 4.3희생자유족회장 △고희범 4.3평화재단 이사장 △오순명 4.3희생자유족회 서귀포시지부회장 △허영선 4.3연구소장 △오임종 전 4.3희생자유족회장 등 4.3단체 관계자들과 유가족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또 △오영훈 제주도지사 △이종우 서귀포시장 △위성곤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서귀포시) △한권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장 △강상수 도의원(정방·중앙·천지·서홍동, 국민의힘) △강충룡 도의원(송산·효돈·영천동, 국민의힘) 등 정치권 인사들도 함께했다.

제막식 행사는 김성도 전 정방4.3유족회 서귀포시지부회장의 경과보고를 시작으로 오순명 정방4.3유족회장 추도사, 오영훈 지사를 비롯한 주요 내빈 인사말, 서귀포 출신 김용길 시인의 추모시 낭송, 헌화 및 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아름다운 해안절벽과 바다로 곧장 떨어지는 폭포수로 유명해 많은 관광객이 다녀가는 정방폭포는 제주4.3 당시 산남지역에서 희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슬픈 역사가 서려 있다. 

4.3 당시 정방폭포 인근은 산남 최대의 학살터이자 토벌대가 많이 주둔했던 거점지역으로 서귀면과 중문면 일대 주민뿐만 아니라 대정, 남원, 안덕, 표선 등 서귀포시 전역을 아우르는 주민들이 이송됐었다.

수용소로 사용된 전분공장과 단추공장에는 수감자로 넘쳐났으며, 군부대에서 취조받은 주민 중 즉결처형 대상자들 대부분이 해안절벽으로 끌려가 희생당했다. 절벽에서 희생당한 탓에 유가족들은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

정방4.3희생자유족회에 따르면 정방폭포에서 희생된 피해자는 서귀면 112명, 안덕면 55명, 중문면 42명, 남원면 32명, 대정면 12명, 표선면 2명 등 255명에 달한다. 

 정방 4.3희생자 위령공간 제막식을 찾은 한 희생자 유족이 가슴을 부여잡고 통곡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정방 4.3희생자 위령공간 제막식을 찾은 한 희생자 유족이 가슴을 부여잡고 통곡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정방 4.3희생자 위령공간 제막식을 찾은 한 희생자 유족이 돌아가신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정방 4.3희생자 위령공간 제막식을 찾은 한 희생자 유족이 돌아가신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처럼 정방폭포는 수많은 주민들이 죄없이 학살당한 곳이었지만, 70여 년이 지나도록 이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 공간 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었다. 이에 유족회와 제주도는 2021년 특별교부세를 통해 4.3 위령공간 조성사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위령 공간 설치를 반대하는 일부 주민과 상인들의 반발과 국가등록문화재 현상변경허가 신청 등 이유로 계속 미뤄지다가 서복전시관으로 장소를 확정, 지난 6일 준공됐다.

위령 공간은 ‘문의 개방’을 주제로 설계됐다. 정방폭포 학살터의 아프고 어두웠던 과거 문을 열어 진실과 화해의 빛을 맞이, 희생자의 넋을 기린다는 의미를 담아 정방폭포를 형상화했다. 

오순명 4.3희생자유족회 서귀포시지부회장은 “너븐숭이에 이어 제주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희생당한 이곳에 75년 동안 위령비 하나 세워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느껴볼 필요가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바다로 떨어지도록 절벽에서 학살한 탓에 유족들은 시신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채 헛묘만 만들어야 했다”며 “또 희생자 명단에는 10살도 안 된 어린아이들이 16명이나 있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렇게 학살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위령비를 세운다고 하니 타지역 희생자 유족이 전화와 부모님 영전에 절 한번 하고 싶다며 소원을 들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며 “늦게 위령 공간을 마련하게 돼 미안한 마음이 크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정방 4.3희생자 위령공간 제막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오영훈 제주도지사. 사진=제주도.<br>
정방 4.3희생자 위령공간 제막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오영훈 제주도지사. 사진=제주도.
사진 왼쪽부터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고희범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오순명 4.3희생자유족회 서귀포시지부회장, 김성도 전 정방4.3유족회 서귀포시지부회장. ⓒ제주의소리
사진 왼쪽부터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고희범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오순명 4.3희생자유족회 서귀포시지부회장, 김성도 전 정방4.3유족회 서귀포시지부회장. ⓒ제주의소리

오영훈 지사는 인사말을 통해 늦어서 죄송하다며 앞으로 4.3유적지를 정비해 4.3의 역사를 보존, 계승하고 4.3정신의 세계화를 이뤄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오 지사는 “정방폭포는 영주십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경승지이자 산남지역 최대의 학살 터”라며 “4.3의 비극은 섬 곳곳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이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간은 아직도 부족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현직 대통령으로 4.3유족에게 진정어린 사과를 하셨던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는 역사는 더디지만 진보한다고 하셨다. 저 역시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며 “국가폭력으로 3만여 명이 희생된 참혹한 비극을 겪었지만, 희생자의 이야기와 역사의 진실을 전하기 위해 애써온 우리 도민의 저력을 믿는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제주도 곳곳에 퍼져있는 유적지를 잘 정비해 후손들이 4.3의 역사를 잊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며 “도민의 희생과 헌신으로 만들어진 4.3의 정신과 가치가 세계 평화모델로 자리 잡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피력했다.

이날 제막식에서 김용길 시인이 추모시를 낭송하자 자리 곳곳에서는 울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한 유가족은 희생당한 부모님을 부르며 가슴을 부여잡고 통곡하기도 했다. 

위 국회의원은 인사말을 통해 유족들의 아픈 삶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조롱, 폄훼하고 왜곡하는 세력을 향해 단호히 맞서 싸우겠다고 말했다. 

한권 위원장은 30주년을 맞은 도의회 4.3특별위원회가 4.3 기록을 보존하고 화해와 상생, 인권의 가치를 계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종우 서귀포시장은 “저기 들리는 정방폭포의 물소리가 당시 억울하게 돌아가신 희생자들, 그리고 한스러운 세월을 살아온 유족들의 애끓는 소리 같아 가슴이 먹먹하다”며 “이번 제막식을 계기로 4.3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일이 중단되길 바란다”고 했다.

고희범 이사장은 “75년이 지나서야 겨우 애도의 공간을 마련해 찾아온 저희를 용서해달라”며 “오늘의 작은 시작이 유족들의 응어리를 풀고, 이웃들을 하나로 모아 4.3의 교훈을 전 세계로 퍼져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 왼쪽부터 이종우 서귀포시장, 위성곤 국회의원, 한권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장. ⓒ제주의소리
사진 왼쪽부터 이종우 서귀포시장, 위성곤 국회의원, 한권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장. ⓒ제주의소리
제주특별자치도와 정방4.3희생자유족회는 29일 서귀포시 동홍동 정방폭포 일원, 서복전시관에서 ‘정방 4.3희생자 위령공간 제막식’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제주특별자치도와 정방4.3희생자유족회는 29일 서귀포시 동홍동 정방폭포 일원, 서복전시관에서 ‘정방 4.3희생자 위령공간 제막식’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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