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남북소통아카데미] 김진환 통일교육원 교수 "미리 통일 준비해야"

31일 설문대여성문화센터 다목적실에서 '2023년 남북소통공감아카데미' 첫 강연자로 나선 김진환 국립통일교육원 교수. ⓒ제주의소리
31일 설문대여성문화센터 다목적실에서 '2023년 남북소통공감아카데미' 첫 강연자로 나선 김진환 국립통일교육원 교수. ⓒ제주의소리

제주에서 남과 북의 평화적 소통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2023년 남북소통공감아카데미'. 공교롭게도 첫 강의가 시작되는 31일 아침에는 서울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 문자로 대한민국이 공포에 떨었다. 뒤늦게나마 오발령 소동으로 확인됐지만 애써 외면해 온 남북의 위기를 직면하게 된 순간이었다.

첫 강연자로 나선 김진환 국립통일교육원 교수는 이런 때일수록 더욱 공고하게 통일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민족이기 때문'이라는 해묵은 논리, '미래경제 발전'이라는 뜬구름 잡기 식 전망을 떠나 당장의 평화를 위해 통일을 이뤄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31일 오전 10시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하고 [제주의소리]가 주관하는 '2023년 남북소통공감아카데미' 첫 강연이 설문대여성문화센터 다목적실에서 열렸다. 통일교육 주간인 5월 넷째주를 맞아 진행된 이날 강연에서 김진환 교수는 '평화의 길, 통일의 꿈'이라는 주제로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넓혔다.

김 교수는 강연 당일 오전 서울시민들에게 발령된 경계경보 문자로 운을 뗐다. '오늘 6시 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쓰인 서울시 재난 문자는 9분 뒤 행정안전부가 '오발령'임을 안내하며 단순 소동으로 종결됐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 소동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트라우마를 건드린 사건이라고 봤다. 지난 십 수년간 남북의 대치로 전시에 준하는 상황을 목격해온 국민들은 이 위기를 망각한 것이 아니라,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마했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현실화되는 것 또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켰다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꼭 통일이 필요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민국 국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통일연구원이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기 여론조사에 따르면 '남북한이 전쟁 없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면 통일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2016년까지는 '필요없다'는 응답이 43%, '필요하다'는 응답이 37%로 집계된 반면, 2021년에는 같은 질문에 '필요없다' 응답이 56%, '필요하다' 응답이 25%로 갈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일에 대한 염원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객관적 지표다. 다만, 김 교수는 한가지 의문을 덧붙였다. '남과 북이 통일을 지향하지 않는 상태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현실에서 성립 가능한 질문이냐는 것이다.

31일 설문대여성문화센터 다목적실에서 '2023년 남북소통공감아카데미' 첫 강연자로 나선 김진환 국립통일교육원 교수. ⓒ제주의소리<br>
31일 설문대여성문화센터 다목적실에서 '2023년 남북소통공감아카데미' 첫 강연자로 나선 김진환 국립통일교육원 교수. ⓒ제주의소리

그는 "지정학적 위치 상 한반도는 단순히 남북관계가 좋아서 '우리끼리 사이좋게 지내자'라고 할 수 없는 여건"이라며 "만약 우리가 미국 정부에 '이제 우리 북한과 안싸우기로 했다. 사이좋게 지낼테니 무기 수입 줄이고, 군사훈련 비용 줄이겠다'고 말하면 미국은 어떻게 반응하겠나. 북한의 권력자가 중국을 찾아가 '이제 중국과 거래하던 것을 한국, 일본, 미국과도 하겠다. 행복하게 지내게 해달라'고 하면 중국 공산당이 응원해주겠나"라고 현실적인 가정을 덧붙였다.

김 교수는 "한반도는 위치 상 해양세력에게는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이고, 대륙세력에게는 해양을 겨누는 '칼'의 역할을 한다"며 "'통일 없는 평화'는 우리의 주변국이 남북의 행복을 진심으로 원해야 성립될 수 있다는 명제로,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 교수는 통일의 당위성을 높이기 위한 논리를 시대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과거에는 '우리가 같은 민족이니까, 본래 하나의 국가에서 살았으니까'라는 이유로 통일을 주장했지만, 내 삶을 살기 벅찬 오늘날 민족성의 논리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오히려 '과거 하나의 국가기 때문'이라는 명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당위성이 된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회의적인 입장을 표했다.

또 '통일이 되면 남한의 자본·기술과 북한의 자원·노동력이 결합해 경제적으로 급성장할 수 있다', '줄어든 국방비는 복지비로 돌릴 수 있고, 철도 도로가 연결돼 대륙 진출도 활발해진다'는 경제성의 논리와 관련해서는 "단순 그런 목표라면 통일하지 않아도, 공존하며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박과 맞닥뜨린다. 통일의 논리가 너무 빈약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31일 설문대여성문화센터 다목적실에서 '2023년 남북소통공감아카데미' 첫 강연자로 나선 김진환 국립통일교육원 교수. ⓒ제주의소리

그러면서 통일의 주 논리로 '평화'에 초점을 맞췄다. 김 교수는 "통일을 얘기할 때 '과거에 좋았기 때문, 미래가 좋을 것'이라는 구호보다는 현재를 주목하면 평화를 위한 화두만 귀에 들어올 것"이라며 "경계경보 발령으로 시민들이 겪었을 공포를 돈으로 보상해줄 수 있나. 이 공포를 완화시키는 것을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할만한 시도가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러고 사는게 우리만 무섭겠나. 저 동네(북측)도 마찬가지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다"며 "그나마 남과 북은 말이 통하고, 생각이 비슷하고, 역사적 트라우마를 공유하고 있지 않나. 북한 사람과 만나면 가장 이야기하기 좋은 주제가 일본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다.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함께 분노하는 내용"이라고 했다.

이어 "통일을 경제논리로 접근해 소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로 접근하면 어려움이 있겠지만, 돈으로 평화를 살 수 있다면 살만하지 않나. 돈이라는게 결국 사람이 행복하자고 하는 것인데 고통과 상처를 미연에 방지하는데 투입된다면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옵션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평화체제는 남북 상호이해가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라며 "한반도는 주변 국가에 의한 원심력이 강하게 작동하는 땅이므로  평화체제 수립 이후에도 통일을 향한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구체적인 대안으로 "하나의 국가를 만드는 것이 어렵고 부담스럽다면 통일 이전에 평화를 공고히 만들어줄 수 있는 장치를 고민할 수 있다. 유럽연합, 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 같은 '남북연합'의 형태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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