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석의 칼럼과 에세이 사이] (18) '성숙의 시대'에 맞는 제주개발 모형 찾아야

제주의 번영이 더딘 이유는 창발성을 요소요소에 잘 살리지 못한 데 있지, 제2공항이 없어서 제주개발이 더딘 것은 아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의 번영이 더딘 이유는 창발성을 요소요소에 잘 살리지 못한 데 있지, 제2공항이 없어서 제주개발이 더딘 것은 아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도가 국제자유도시를 추진한 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되었다. 그 공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국무조정실 제주도 지원단이 평가한 2020년 국제자유도시 성과 부문은 ‘미흡’으로 나타났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만큼 국제자유도시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도시로 발전시키는 일은 매우 어려운 과제다. 

제주국제자유도시라는 상징자본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획득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도민들간 첨예한 갈등과 대립이 잠복해 있는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중의 하나가 제2공항 문제다. 나는 제2공항 문제는 신설보다 기존 공항을 확장하는 방안을 선호한다. 이 분야에 전문가는 아니지만, 전문기술적인 처방이나 정-관료집단의 정책적 지향은 건전한 시민적인 상식에 의해 균형을 잡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정책 과정을 통해 채택된 정책이라야 순응성을 확보할 수 있고 거래비용도 줄일 수 있다. 특히 대규모 개발사업일수록 더욱 그렇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제주가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한다고 하는 것은 사람과 자본, 상품의 입·출입을 자유화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나 무한정 자유화시키자는 것은 아니다. 자유화를 적정한 선에서 잘 조절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러한 능력을 관리적 세계화, 개방화라고 한다. 제주에 관광객이 무조건 많이 와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하와이를 보자. 면적으로 보면 하와이는 제주도의 15배다. 최근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1년에 8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는 300만명 미만이었다. 하와이 주민 1인당 국민소득은 8만 불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제주도는 15개 광역 시도 중에서 1인당 국민소득 수준으로 보면 최하위다. 3만 불 내외인 것으로 알고 있다. 공항이 하니 더 생겼다고 이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을까. 현재 제주를 찾는 1년 관광객이 1500만명 정도다. 노령화, 인구감소로 인해 중국의 인해전술식의 관광객이 급격히 줄고 있는 마당에 중국만을 바라보고 제2공항을 짓는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세계정치가 블록화되고, 병행해 탈세계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탈세계화 전선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처럼 중국 관광객이 한국이나, 일본, 유럽 등 소위 선진 국가들을 헤집고 다니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사드 사태로 인한 한한령(한류 금지)이 본격화되기 이전까지는 제주도의 세계화는 곧 중국화였다. 이러한 전제는 2012년부터 시행된 제주도 제2차 종합계획에도 암암리에 내포되어 있다. ‘중국자본에 좋은 것은 제주도에도 좋다.’ 항등식이 성립되었던 우울한 시대였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는 시효가 다 된 것 같다.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관광정책은 전면적으로 수정될 수밖에 없다. 통치자의 말 한마디로 한한령이 발동되는 중국과는 건전한 관광 교류도 할 수 없고 자본 유치를 받는 것도 불안정하다. 최근 법치가 서지 않은 중국에 투자한 우리나라 기업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가? 그런 나라를 상정하고 구상하는 공항 신설계획은 원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관광객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지역들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성이 있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베네치아나 밴쿠버 등도 과잉 관광(over tourism)으로 속앓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야기되는 한계를 초월한 오수, 쓰레기, 치안 문제 등의 기회비용을 계산해보면 무엇이 진정한 관광 발전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나라도 유사한 예가 있다. 몇 년 전, 종로구 북촌에 밀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가회동 골목길의 한 한옥 대문 앞에 흰 종이 위에 매직으로 눌러쓴 손글씨가 붙었다. 그 내용이 절절하다 못해 처절해 보였다. “여러분, 제발 도와주세요. 관광객 때문에 살 수가 없습니다.”(Please support us not coming to village. We’re suffering from tourist.) 영어, 한글, 중국어로 인쇄한 포스터가 그것이다.

제주의 환경용량(carrying capacity)을 초과할 정도의 관광객 유입은 현지인 삶의 질을 형편없이 떨어뜨린다. 멀리 갈 것 없이 전형적인 농어촌마을이었던 나의 고향 우도가 그렇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입도 관광객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그야말로 고향 우도에 가끔 가서 느끼는 감정은 노 스타일 저(향수병)의 파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이제 우도를 그리워할 것인가. 아무 곳에서 볼 수 있는 우도의 모습이라면 누가 구태여 우도를 찾겠는가. 우도는 이제 황금알을 낳던 거위가 산란을 못 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이제 제주 관광은 양적인 성장에서 질적인 발전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제주도 입도 관광객이 하와이를 찾는 관광객 수보다 두 배 이상 많다. 그런데 제주도의 1인당 소득은 하와이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 차이를 가져오는 동인은 무엇인가. 

이 문제는 공항 하나 더 짓는다고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은 아니다. 복합적인 차원의 정책접근이 요구되는 사항이다. 이와 관련하여 제주도의 미래 항공 수요를 예측하는 일은 매우 의미가 있다.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수치지만 국토부는 2050년에는 편도기준 연간 4500만 명 정도의 관광수요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다. 이러한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서 제2공항 같은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강변한다. 4500만 명이라는 수치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에 기초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급속한 노령화나 인구감소 추세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 같다. 제주도 입도 중국 관광객의 경우 한한령과 같은 돌발적인 정치변수도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 단지 제주도의 2015년 기준 연간 관광객이 1500만 넘었기 때문에 이후에도 이런 추세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희망 사항을 산술적으로 계산한 수치에 불과하다. 앞으로 제주도의 항공 수요는 국토부의 전망치와는 달리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데 연간 관광수요가 편도기준 4500만 명 정도 발생한다고 해도 기존 공항으로 이 문제를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는 특이한 보고서가 나왔다고 한다. 그것도 세계 유수의 공항시설 관련 엔지니어링 업체인 ADPi(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가 내놓은 보고서다. 국토부의 예측치인 4500만의 관광객을 현재 국제공항을 확충하지 않고도 공항의 관제 시스템 개선과 주기장 추가 등 시설개선만으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는 ADPi의 보고서는 왜 공적인 토론에 부치지 않는가. 참 이상한 일이다. 이 회사가 공적인 권위를 가진 세계적인 회사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이 보고서의 진실에 대해서 한국토목학회, 한국공항 관리 공단 등 전문업체의 평가를 제대로 받아봤는지 묻고 싶다.

기존 공항을 유지하거나 확장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의 정성이 부족했다는 것이 최근에 드러났다. 지난 정부의 책임이 크지만, 제주공항 문제를 풀려는 정부의 절절함이 없지 않았나 생각한다. 제2공항을 짓는 일은 제주도의 경우 많은 희생과 엄청난 갈등의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는 거대한 사업이다. 그야말로 역사를 새롭게 쓰는 작업이다. 최근 보도된 기사로 ‘포화상태’ 제주공항 하늘길 정체 문제가 제한적이지만 풀릴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만시지탄은 있지만 천만다행이다. 그간 군(軍)이 사용하던 제주국제공항 일대 공역(空域) 일부를 군용기와 민항기가 나누어 쓸 수 있도록 국방부와 국토교통부가 합의하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군이 훈련과 작전을 위해 주로 사용하는 공역을 조정하여 민간항공기가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을 넓혀 주면 제주공항 하늘길 정체가 일부 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감사원은 공군이 제주공항 일대 공역을 주로 사용하는 시간을 분석, 야간이나 주말에는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했다고 한다. 이후 군이 훈련 시간을 공항에 사전에 통지하고 훈련이 없는 시간대에 공항 측이 군 공역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상당히 근거 있는 처방이다, 윤석열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 여하에 따라서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만족한 상태는 아니지만, 일단은 부분적으로 풀릴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한편 제2공항 예정지 입지선정과정 자체도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생각한다. 버스노선도 이러한 방식으로 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항 예정지 몇 곳을 전문적인 관료집단이 비밀리에 미리 선정하고 이 지역 일대를 토지거래 허가 지역으로 묶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전문가집단이 분석한 해당 지역들의 장단점을 공적인 논의에 부쳐서 최종 지역을 선정해야 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비밀리에 소수의 관련된 정책 결정 집단의 주도하에 최종 지역이 선정되었다. 그 결과는 어떤가. 어느 지역. 어느 기관 출신들이 공항 예정지나 주변 땅을 많이 샀다는 둥 온갖 악성 루머가 횡행했다. 공항 예정지 선정을 전후해서 이곳에 땅을 산 지주들의 신상을 명명백백하게 공개해야 선정 자체의 도덕성을 담보할 수 있다. 공항 예정지 선정과정 자체가 권력과 자본에 포획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2공항 예정지는 지하동굴과 이어지는 무수한 숨골이 존재하는 곳으로 판명되었다. 처음에는 숨골이 8개 있다고 했다가 최근에는 153개 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숫자는 조사 여하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다. 과거부터 제2공항 예정지는 학자들에 의해 동굴과 숨골이 밀접한 곳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공항을 지으면서 숨골을 막아 지하수가 함양되지 않으면 대수층이 함몰될 가능성이 크다. 엄청난 항공기의 착륙 충격이 가해져 지반이 무너지면서 예상치 못한 재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왜 정부는 기존 공항 확장도 공항 수요 해결을 위한 하나의 확실한 대안으로 삼지 않는가? 왜 정부가 기존 공항 확장 문제에 대해서 심도 있는 논의와 과학적 담론을 꺼리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단지 기존 공항 확장은 수심이 깊어서 건설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 외에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사회적 비용 등을 고려할 때 기존 공항 확장이 제2공항 신설보다 훨씬 비용이 적게 소요될 것이다. 최선의 노력도 해보지 않고 성장물신주의에 매몰되어 5~6개 마을이 없어질 위험을 감수하면서 추진하려는 제2공항 사업은 미래에 크게 후회할 일이다. 제주도의 자연과 문화를 파괴하는 반문명적이고 반역사적인 처사다. 제주의 자연은 우리 것이 아니라 후대에서 잠깐 빌려서 쓰고 돌려주어야 할 자산이다.

세계인들이 왜 열광하며 제주를 찾는가? 제주에 인류 보편적인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제주에 있어 인류 보편적인 가치재는 무엇인가. 누누이 이야기되지만, 최고는 한라산과 오름. 코발트 빛 청정바다로 구성된 자연환경이다. 이것을 잘 보전하고 관리한다는 전제 위에 제주의 문명을 일궈내야 한다. 나는 이러한 행위를 자연자본주의라고 명명한다. 제주의 자연 가치를 잘 활용한 아젠더를 개발. 산업화하여야 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뉴질랜드의 ‘제스프리’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뉴질랜드의 키위 농가들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시장 공략을 위한 방안 모색을 시도했다. 뉴질랜드는 인구 400만 명에 불과하여 내수시장으로는 키위 산업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수출창구의 통합과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시장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제스프리 인터네셔날’(1997년)’을 설립, 주식회사로 전환하였다. 키위 농장주들이 이 회사의 지분을 100% 갖고 있다. 제스프리는 ‘골드키위’을 독점 생산하면서 국제시장을 넓혔다. 세계시장을 평정한 뉴질랜드 제스프리 사례는 1차 상품의 브랜드화 및 수출마케팅의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다. 품질 경쟁력으로 글로벌 브랜드화에 성공했고 뉴질랜드 키위 농가의 95%가 ‘제스프리 농민이라고 한다. 뉴질랜드의 ‘제스프리’ 사례를 통해 세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① 지식재산권을 이용한 농업정책 
② 대학 및 연구소 등의 연구기관과 농업 주체의 협력 강화 
③ 정부의 지원/보조보다는 농업 자체의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주효했다. 

이런 여건 충족은 작목별로 다르지만, 제주에서도 노력하면 가능한 일이다. 대학이나 연구 요원, 작목반 등 인적·물적 인프라는 어느 정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행동이다. 행동하는 자에게 축복이 있다. 몇 년 전, 세계적 투자가 짐 로저스는 제주에 와서 30년 후에 제주도를 먹여 살릴 산업은 농업이라고 했다. 귀담아들어야 할 이야기다.

지방자치는 창발성을 살리는데 적합한 정치제도이다. 창발성 있는 정책이나 제도‘ 사람 하나가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우를 지방자치에 많이 본다. 대표적인 예로 충주시의 유튜브 담당자 김선태 주무관을 들 수 있다. 9급 공무원으로 출발해 현재 7급 주무관이 된 그가 혼자서 충주시 유튜브를 제작하여 대단한 성공을 이루었다. 충주시 인구보다 많은 구독자 수를 갖고 있다. 김 주무관은 이러한 능력을 인정받아 여러 기관에서 구애받고 있다. 행정은 창발성을 고양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설계하고 현장에서 뛰는 혁신가들을 뒤에서 지원해야 한다. 

제주의 번영이 더딘 이유는 창발성을 요소요소에 잘 살리지 못한 데 있지, 제2공항이 없어서 제주개발이 더딘 것은 아니다. 문명의 거대한 흐름을 읽지 못하면 집단이든 개인이든 낙오는 불가피하다. 

21세기는 성장의 시대는 저물고 성숙의 시대가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주가 이때까지 지향했던 대규모 집중개발은 성장의 시대의 산물이다. 이제는 성숙의 시대에는 맞는 제주개발의 모형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제2공항 건설에 대한 재검토를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 

공부방에서 서로 싸우면서 화해하고 공감하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느낀다.


# 고충석

現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제7대 제주대학교 총장, 제주국제대학교 초대 총장, 제주발전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제주를 대표하는 원로학자로서 칼럼과 에세이를 넘나드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조언을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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