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28) 낙숫물도 받아 두면 도제에 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지싯물 : 낙숫물, 비 내릴 때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
* 두민 : 두면
* 도제 : 제주 전역에 걸쳐서 해마다 음력 정월 첫 정일(丁日)에 지내는 마을제, 포제 또는 동제라고도 한다.

1971년 오라1동 마을에서 촬영한 공동 간이수도. / 사진=이토 아비토, 제주학연구센터
1971년 오라1동 마을에서 촬영한 공동 간이수도. / 사진=이토 아비토, 제주학연구센터

수도가 들어오기 전, 제주도는 섬 전체가 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물을 찾아 해변으로 내려 마을이 생겼지만, 우선 식수난으로 보통 어려움과 불편을 겪지 않았다. 동네마다 우물을 파 물을 허벅으로 길어 날랐지만 한동안 비가 안 오면 우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냈다.

찔끔찔끔 솟아나는 물을 받아야 밥을 해 먹을 게 아닌가. 우물 앞에 허벅이나 물동이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먼저 물을 길어 가려고 선두를 다투었다. 다 잠든 동새벽에 온 사이 1번, 그 다음이 2번… 순번이 정해지는 것이다.

가뭄이 심할 때는 물이 쫄쫄 나와 차례를 기다리다 보면 해가 중천에 솟기도 했다. 궁여지책으로 나온 것이 낙숫물을 항아리에 받아 두는 것. (우도는 얼마 전까지만 연못에 고인물, 봉천수를 식수로 사용했었다.) 그 물을 식수로 아주 유용하게 썼음은 물론, 마을에서 지내는 도제에도 사용했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마을의 번영발전과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신성한 제의(祭儀)인 도제에 지붕에서 흘러내려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지싯물(낙숫물)을 썼겠는가. 가뭄으로 우물이 다 말라붙은 것을 신(神)도 그 사정을 잘 알 것이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례없는 흉년이었다는 ’갑인년에도 먹다 남은 게 물‘이라 했는데, 마을제에 쓸 물마저 없었다니, 하늘도 무정한 일이 아니겠는가. 

제주는 참 살아가기 힘든 섬이었다. 그런 악천후를 이겨내어 오늘의 풍요를 일궈낸 우리 조상들의 위업에 큰절을 올리지 않을 수 있으랴.

음료수까지 비축하면서 사셨던 우리 조상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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