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75) 장 자크 루소(이환 역), 사회계약론,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9

/ 사진=알라딘
/ 사진=알라딘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의 생애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사건이 있다. 그 중 하나는 현상응모 작품으로 자신의 사상을 구체화했다는 것이다. 현상공모한(1번은 당선되고 1번은 떨어진) 논문을 ‘학문 및 예술에 관한 논고’와 ‘인간 불평등 기원론’으로 출간했다.

1749년(당시 루소의 나이는 37세였다) 디종 아카데미는 ‘학문과 예술의 부흥은 도덕적 순화에 기여했는가?’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공모했는데, 루소는 “본래 선하게 태어난 인간은 사회와 문명에 의해 타락하였다”라는 놀라운 주장을 펼치며 당선된다. 이 논문은 1750년에 ‘학문 및 예술에 관한 논고’로 출판되었다. 루소는 현상공모 제목을 보는 순간, 자신의 눈앞에 새로운 세계가 전개되었고 자신이 아주 딴 사람이 되었다고 ‘참회록’에 서술하고 있다.

5년 뒤인 1754년(당시 루소의 나이는 42세였다) 디종 아카데미는 ‘인간 안의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이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용된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공모했다. 루소는 공모 주제에 충격을 받아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루소는 “현대사회의 불평등이 사회 그 자체에 기인한다”는 주장을 담은 논문을 썼다. 사회는 문제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라는 루소의 주장은 너무나도 급진적이었다. 당선되지 못했지만 이 논문은 1755년에 ‘인간 불평등 기원론’으로 발간되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있는 다음 문장을 살펴보면, 루소 주장의 급진성을 알 수 있다.

“사회와 법률의 기원은 이러하거나 이러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 사회와 법률은 약자에게는 새로운 구속을 부여하고 부자에게는 새로운 힘을 부여해 자연적 자유를 영원히 파기해버리는가 하면, 소유와 불평등의 법률을 영구히 고정시키고 교활한 횡령을 당연한 권리로 확립시켜그 후 온 인류를 몇몇 야심가들의 이익을 위해 노동과 예속과 비참에 복종시킨 것이다.” 
(장 자크 루소/주경복, 고봉만 역, 인간 불평등 기원론, 책세상, 2003/2012, 116면)

극복해야 할 대상인 사회상태

“인간은 본래 자유인으로 태어났다. 그런데 그는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사회계약론’은 루소가 50세인 1752년에 발간되었다. 이번에는 현상응모한 논문이 아니라 ‘정치제도론’이라는 대작을 쓰려는 도중에 나왔다. 하지만 ‘정치제도론’은 몇 년이나 더 걸릴지 몰라 주저되었고, 그래서 필요한 것만을 추려내어 ‘사회계약론’으로 출판했다. 이 책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사회의 문제점을 다루고, ‘사회계약론’에서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작품들은 루소가 쓴 다른 여러 작품과 더불어, 그에게 명성을 안겨다 주었다. 하지만 그 내용이 파격적이고 급진적이어서, 루소의 삶은 평탄할 리 없었다.

전작인 ‘학문 및 예술에 관한 논고’와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원래 선했지만, 사회가 인간을 타락시킨다”는 것이 루소의 생각이었다. 루소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파악한 ‘사회상태’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더 잘 묘사되어 있다. ‘사회계약론’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문장으로는 제1부 마지막 각주 부분에 나온다.

“잘못된 정부하에서는 이 평등도 피상적이고 공허하다. 여기서 평등은 가난한 자를 가난 속에 그리고 부자를 약탈 속에 머물게 하는 데 쓰일 뿐이다. 법은 실제로 항상 유산자(有産者)에게는 유익하고 무산자(無産者)에게는 해롭다.” (31면)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는 이를 더 자극적으로 기술했는데, 다음과 같다.

“이러한 모든 변천 가운데서 불평등의 진행을 따라 가보면, 법과 소유권의 설정이 제1단계이고 행정 권력의 제도화가 제2단계이며 합법적인 권력에서 독단적인 권력으로 변화하는 것이 제3단계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부자와 빈자의 상태는 첫 번째 시대에 의해, 강자와 약자의 상태는 두 번째 시대에 의해, 주인과 노예의 상태는 세 번째 시대에 의해 성립되었다. 주인과 노예의 상태는 불평등의 마지막 단계로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 정부 권력을 완전히 해체하거나 정당한 제도에 가깝게 만들 때까지는 다른 모든 단계가 거기로 귀착된다.” (130-131면)

공동 이익에 기초한 일반의지

루소의 과제는 사회계약을 통해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상태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이는 홉스의 사회계약론이나 로크의 사회계약론이 사회계약을 통해 자연상태를 극복하고자 했다는 점과 비교해 큰 차이가 있다.

루소는 사회상태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는 무엇보다도 ‘공동 이익’에 기초해 통치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이러한 ‘공동 이익’을 담아내려고 루소가 제시한 것이 그의 ‘사회계약’이었다.

“사회적 유대를 형성하는 것은 개개의 여러 이해 가운데 존재하는 공통적인 것이다. 만약 모든 이해가 서로 일치되는 합치점이 없다면, 어떤 사회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회는 오직 이 공동 이익을 기반으로 통치되어져야 한다.” (35면)

루소는 사회적 관계의 불평등을 ‘이익의 공동성’에 기초한 ‘일반의지’를 통해 해결하려 했다. 공동 이익 아래에서 각자는 자기가 타인에게 부과하는 계약 조건에 자신도 필연적으로 복종해야 하며, 이것은 이익과 정의의 훌륭한 일치로서 공동의 결의에 공정성을 부여한다. 루소는 이익의 공동성에 기초한 일반의지에 의해 통치되지 않고 잘못된 정부에 의해 통치된다면, 평등은 피상적이고 공허한 것이 된다고 주장한다.

공동 이익에 기초한 일반의지는 루소 사상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루소는 개별의지와 일반의지의 동일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공동 이익에 기초해 모든 개별의지를 일반의지로 모을 수 있을까? 다음 문장에서 우리는 루소 사상이 이상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합된 여러 사람들이 스스로를 한 몸으로 생각하는 동안, 그들은 공동의 보존과 전체의 이익에 부합되는 단 하나의 의사만을 가지고 있다. 이때 국가의 모든 기구는 강력하고 단순하며, 그 원리는 분명하고 명쾌하며, 뒤얽히고 모순된 이해관계란 있을 수 없고, 공동의 이익은 어느 곳에서나 명백하게 드러나므로 그것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오직 양식(良識) 만이 필요하다.” (135면)

루소 스스로도 개별의지와 일반의지가 불일치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한 개별적 의사가 어떤 문제에 대해 전체 의사와 일치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적어도 이러한 일치가 지속적이고 항구적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전체 의사는 평등을 지향하는 반면 개별적 의사는 본질적으로 편파성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그러한 일치가 상존한다고 하더라도, 이 일치를 보장하기란 더욱이나 불가능하다.” (35면)

루소는 일반의지를 따르는 약속이 사회계약에 담겨야 한다고 보았다. 이를 통해 사회계약이 의도한 바는 개인을 자유롭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루소는 자신이 실질적으로 의도한 바와는 정반대의 오해를 받았다. 개인은 일반의지를 위해 개별의지의 관철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전체주의를 정당화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사회계약은 유명무실한 형식이 되지 않기 위해서, 전체 의사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전 단체에 의해 그것을 따르도록 강요되어야 한다는 약속을 암암리에 내포하고 있다. 우선 이 약속이 있어야만 다른 약속들도 효력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이 자유롭게 되도록 강요한다는 것 외에 다른 의미가 없다.” (25면)

나가며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일반의지와 개별의지가 일치하지 않기에 현실에 반한다는 비판, 일반의지를 강요하는 것이 전체주의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루소가 왜 이런 구성을 도입했을까를 생각하면 그의 ‘사회계약론’의 중요성은 다시 부각된다.

(법)사상에서 주장되는 바는 어느 정도 이상적인 측면을 담고 있다. 이상적이라고 해서 배격하거나 일방적으로 비판할 것은 아니다. 필자는 루소의 이상적인 이론 구성에도, 루소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 두 문장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루소의 주장을 수정 보완하고 좀 더 현실화할 수 있는 이론 구성과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정부 형태가 어떤 것이든 간에 법에 의해 통치되는 모든 국가를 공화국(共和國)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때 비로소 공공이익이 우위에 서고, ‘공공의 것’이 중요한 것이 된다.” (32면)

“모든 입법체계의 목적이 되어야 할 만인의 최대의 행복은 정확히 무엇으로 성립되었는가를 찾아보면, 우리는 그것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개의 주요한 대상으로 귀착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자유, 왜냐하면 모든 개인적 예속은 그만큼 국가라는 정치체의 힘을 약화시키기 때문이고 평등, 왜냐하면 이것 없이는 자유가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69면)


#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려대 법학과 졸업,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법학박사.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철학/법사회학 전공).

블로그: blog.naver.com/gojuraphil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