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교육春秋] (35)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지난달 31일 대법원은 서울시교육청이 낸 “서울시교육청 기초학력 보장지원에 관한 조례”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의 판단이 없었다면 서울지역 학교별 기초학력 진단검사 결과가 외부에 공개될 예정이었다. 기초학력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의회는 같은 입장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낮아진 학생들의 기초학력 보장을 기본권이나 인권의 측면에서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기초학력 진단평가 성적 공개에 대해서는 입장이 전혀 달랐다. 기초학력 평가결과를 공개하자는 쪽은 경쟁은 어쩔 수 없으니 성적 결과를 알아야 그에 맞춰 학부모들도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고 학습 결손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시험 결과 공개를 반대하는 쪽에선 성적 공개는 기초학력 강화와 무관하고 학교별 줄 세우기와 낙인찍기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아이들을 위해 성적을 공개하는 것은 정당하고 필요한 일인가? 지능검사라는 평가 제도를 통해 살펴보자.

학교가 경쟁과 다툼의 장이 되어버린 대입제도는 사회의 불평등과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다. 아무리 해도 상대평가에선 모두가 1등이 될 수 없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학교가 경쟁과 다툼의 장이 되어버린 대입제도는 사회의 불평등과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다. 아무리 해도 상대평가에선 모두가 1등이 될 수 없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요즘엔 학교에서 지능검사를 하지 않지만, 십여 년 전 학생들의 지능검사는 일반적이었다. 지능검사는 해방 이후 한국의 주먹구구식 교육을 과학화한다는 명분으로 몇몇 선구적인 인물들에 의해 국내에 도입된다. 1947년 미국에서 귀국한 염광섭에 의해 1948년 중등학교 입시에 지능고사가 시행되었다고 한다. 지능검사와 객관식 시험 제도 등을 소개한 염광섭의 서울대 문리대 심리학연구실을 이어 1953년 정범모의 교육심리연구실에서 중고교용 간편 지능검사를 개발하고 문교부의 중앙교육연구소가 가세해서 1960~70년대에는 지능검사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당시 지능은 “환경이나 훈련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일반적 정신 능력”으로 규정되었고 개인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수단이었다. 당시 분위기를 살필 수 있는 기사를 하나 소개해 보자!

저능아란 지능지수 80미만으로 우리나라에 100만명이나 되며 내년 (중학교)진학예정자 중에만도 5만 여명이 된다. 이들이 무시험진학하여 우수한 학생들의 학습진도까지 방해하기 때문에 진학을 막는 것은 당연하다해도...(중략)... 저능아는 이미 우리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장병림씨의 조사에 의하면 범죄소년의 75%가 저능아였고 이재정씨의 조사에서 윤락여성의 80%가 저능아라는 사실이 이것을 뒷받침한다. 더구나 지금은 어리지만 1백만의 저능아가 성인이 되어 활동범위가 넓어질 때 사회에 미칠 악영향은 더욱 클 것이다. 우리나라에 저능아를 위한 대책이 미비한 이유의 하나는 부모들이 창피하다고 숨기기 때문이다.
- 경향신문 1970년 10월 1일자 4면 기사 ‘갈곳없는 低能兒’ 중에서

기사에는 지능이 낮은 아이들을 저능아라는 비하의 표현으로부터 시작해서 이들이 얼마나 사회의 암적 존재가 될 것인지를 조사 결과를 인용해 합리적인 것처럼 확정적으로 쓰고 있다. 문교부(현재 교육부)에서도 이들의 중학교 진학을 제지하려고 했다고 한다. 지능검사에 대한 전폭적인 사회적 신뢰는 드러난 부작용들로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IQ가 낮은 것에 좌절하고 자포자기했다는 기사가 나오는가 하면 임의로 학생들의 지능검사 결과를 올리는 일도 발생하게 되었다. 지금 읽어보면 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개그 프로그램의 소재 정도가 될 내용 같지만, 당시에는 너무나 진지했다. 지능검사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 아이들의 현재를 파괴하고 미래를 재단한 셈이다.

이전 입시시스템의 문제를 보완해서 만들어진 시험방식이 현행 수능시험이다. 그러면 수능은 지능검사와 다른 궁극적인 제도일까? 시험 문제 하나를 틀리면 대학입학의 당락이 결정되는 상황은 합리적이지 않다. 한 문제를 더 맞췄다고 능력이 우수하다는 것은 인정하기 어렵지만, 문제를 맞힌 순서로 전국 단위의 서열이 매겨지고 대학 진학 여부가 결정된다. 올해 전국 의과대학 정시 합격자의 절반이 서울 강남의 한 학원에서 나왔다는 것은 이 제도가 얼마나 문제인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돈과 정보력이 있는 이들이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수능인 셈이다. 수능 창시자라고 불리는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조차 지금의 수능은 학력 지표로서 오차가 큰 시험이고 부정확하다고 평가한다. 

다시 기초학력 시험결과 공개를 둘러싼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우선 시험이라는 잣대가 얼마나 부정확한지를 인정하자. 아울러 기초학력 시험결과를 학교별로 공개하면 학교 서열화는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이 학교별 경쟁을 통해 학력을 증진하기보다 사교육을 강화할 것도 분명해 보인다. 이미 기초학력 보장을 위해 각 교육청들이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기초학력 보장을 위해 기초학력을 공개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교육의 목표는 경쟁이 아니다. 아이들을 줄 세우기 위한 소위 킬러 문항 몇 개가 아이들의 미래를 좌우하는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학교가 경쟁과 다툼의 장이 되어버린 대입제도는 사회의 불평등과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다. 아무리 해도 상대평가에선 모두가 1등이 될 수 없다. 

한국현대사를 전공하고 능력주의를 비판해온 황병주는 ‘개발연대와 능력주의’라는 글에서 학교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한국의 능력주의를 (재)생산하는 핵심 메커니즘은 학교다. 동일한 연령의 학생들이 동일한 공간에서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내용을 동일한 교사로부터 학습받아 나타난 차이를 인간의 자연적 능력 차이로 전화시켜 움직일 수 없는 위계 서열화의 원칙으로 만드는 것이 학교다. 식민지 시기 공교육은 식민지적 차별을 구조화한 바탕 위에 서 있었다. 
- 황병주 ‘개발연대와 능력주의’ 중에서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냐던 어느 선생님의 말이 다시금 떠오른다.


#안재홍

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KBS제주 TV 시사프로 '집중진단' 진행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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