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92)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를 추모하며

매주 목요일,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하나 둘 모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모이는 장소는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시민 분향소’가 차려져 있는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이다. 그들이 매주 목요일 지친 몸을 이끌고 모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자의 날이었던 지난 5월 1일, 기념대회 중 강원도에서 비보가 들려왔다. 

건설노조 간부인 한 노동자가 강원지방법원 앞에서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는 소식이었다. 순간 시간이 멈춘 듯 했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며 산화해간지 50년이 훌쩍 넘은 2023년의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나.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비정규직 철폐를 호소하며 집회 중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던 비정규직 노동자 이용석 열사가 돌아가신지도 벌써 20년이 지난 시점이 아닌가. 

저는 자랑스런 민주노총 강원 건설지부 양회동입니다. 
제가 오늘 분신을 하게 된 건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네요. 힘들게 끈질기게 투쟁하여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데 혼자 편한 선택을 한지 모르겠습니다. 함께 해서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 고 양회동 님의 유서 중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전태일의 외침,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어달라는 양회동의 외침을 이어가기 위해 오늘도 노동자들은 연대하며 투쟁하고 있다. / 사진=정종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전태일의 외침,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어달라는 양회동의 외침을 이어가기 위해 오늘도 노동자들은 연대하며 투쟁하고 있다. / 사진=정종배

고용·실업이 일상인 현장에 세워진 건설노조  

건설노동자 양회동은 건설노조 강원지부 3지대장을 맡고 있었다. 노동조합에서 그가 주로 하는 일은 조합원의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사측과 협상하는 일이었다. 

건설업은 업종의 특성상 몇 개월 단위의 고용이 일반적이고, 공사가 끝나면 실업이 반복된다. 게다가 건설현장의 다단계 불법하도급 구조 속에서 건설노동자들은 임금을 떼이기 일쑤고 불안정한 일자리가 계속되었다. 노동조합이 없었던 시절에는 일자리를 찾아 전국을 떠돌며 일을 해야 했고, 일을 소개해주는 명목으로 중간착취를 당했다. 이름도 없이 김씨, 박씨, 이씨로 불리며 노가다라며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수많은 건설현장에서 떨어짐, 끼임, 부딪침의 재래식 산업재해로 사람이 죽어나가도 신문 한귀퉁이 단신으로도 나오지 않는 죽음이 더 많았다. 

건설현장을 바꾸기 위해 건설노조를 만들었다. 노동조합에서는 조합원의 노동조건 개선에 나섰다. 조합원의 고용안정을 위해 건설사업주와 교섭을 했고, 과거에 비해 안정적인 고용관계를 만들 수 있었다. 노동조합을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함으로써 건설현장의 위험을 지적하고, 조금씩 개선해나갔다. 

경찰, 50명 특진 내걸며 무리한 수사 강행

윤석열 정부는 작년 말부터 이러한 건설노조의 활동을 폭력으로 매도했다. ‘건폭’(건설현장 폭력행위)이라는 말을 쓰고, 언론이 받아 적으며 전국민에게 건설노조에 대한 불법 프레임을 씌웠다. 이에 부화뇌동한 경찰은 건설노조 수사 성과에 따라 50명을 1계급 특진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경찰에 배당된 전체 특진인원이 500명인데 그 중 1/10에 해당하는 규모를 건설노조 수사에 배정한 것이다. 같은 시기 보이스피싱 범죄에 25명, 전세 사기 수사에 30명의 특진이 걸렸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전국 각지에서 건설노조에 대한 무리한 강압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건설노조 제주지부를 압수수색하기 위해 제주경찰이 들고 온 영장의 혐의는 ‘공동강요’였다. 하지만 그 협박이라는 행위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며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조합원의 고용을 강요하면서 협상이 잘 되지 않으면 집회를 할 것처럼 협박하고, 실제 집회를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을 관계당국에 신고하며 건설사업주에게 고용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관계법에 무지한 경찰이 업적을 올리기 위해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노동조합이 사업주를 만나서 교섭을 하고, 교섭이 잘 되지 않으면 집회 등을 개최하여 교섭력을 높여 타결해가는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제주경찰을 통해 신고하고 허가받은 집회에 대해 그 집회가 불법이었다고 제주경찰이 수사하는 모순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양회동 열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5월 1일은 양회동 열사를 비롯해 간부 3명에 대한 구속여부를 결정하는 실질심사가 예정된 날이었다. 공동강요에 대해 당일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에서 3명의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되었다. 분신 이후 양회동 열사의 구속수사에 대해 피해자로 분류된 건설업체에서 구속을 원하지 않는다는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해당 건설사 대표는 조사 과정에서 ‘노조의 강요는 없었다’고 진술했지만 경찰의 기소장에는 ‘전임비 갈취’라고 기재되었다. 

현재까지 16명의 건설노조 간부가 구속되었고, 1100명이 넘는 조합원이 소환되었다.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했을 뿐인데 노동자로서의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양회동 열사의 유서와 같은 마음으로 노동조합 탄압을 온 몸으로 버티고 있다. 

사과 없는 윤석열 정부, 대책 없는 원희룡 국토부 장관 

최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 기간 중 국회 방청석을 떠나지 못한 사람이 있다. 바로 양회동 열사의 유가족이다. 정부가 공식적인 사과는 아니더라도 위로와 유감 표시, 고인에 대한 애도가 있지는 않을까라는 기대를 갖고 방청석에서 대정부 질의를 지켜보았다고 한다. 

특히 양회동 열사의 유서대필 의혹 등 자신의 SNS를 통해 의혹을 제기하며 망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는 원희룡 국토부 장관의 사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러한 발언은 없었다. 월간조선이 양회동 열사의 유서대필 의혹을 제기했다가 거짓으로 밝혀져 공식 사과를 했지만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다. 양회동 열사가 사망한 당일에도 건설노조 지부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애초 예정한 수사발표기한도 연장해 추가 수사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양회동 열사의 한을 풀자며 전국에서 모여 1박 2일 노숙투쟁을 한 건설노조를 사회적으로 비난하며, 이참에 집시법을 개정해 야간집회를 막아버리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어 주세요

지난 5월 2일, 양회동 열사가 돌아가시고 난 후 제주시청에 마련된 시민 분향소에는 많은 이들이 다녀갔다. 양회동 열사의 죽음을 애도하며 향을 피우고, 유서를 읽었다. 현재 양회동 열사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되어 있고 유가족의 뜻에 따라 건설노조 위원장이 상주를 맡으며 매일 추모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어제 건설노조는 지난 기간 동안 노동, 시민, 제정당 등으로부터 열사의 유언을 지지하고 이어가겠다는 사회적 명예회복이 일정부분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가족과 함께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장례는 오는 17일부터 5일간 노동시민사회장으로 치러진다. 

양회동 열사는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유서를 남겼다.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에 불법프레임을 씌우고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정권과의 싸움이 남아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전태일의 외침,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어달라는 양회동의 외침을 이어가기 위해 오늘도 노동자들은 연대하며 투쟁하고 있다. 

故 양회동 노동자의 명복을 빕니다. 


#김경희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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