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30) 견디는 게 약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전디는 : 견디는
*약인다 : 약이다

1971년 8월~10월 사이 제주시 오라1동에서 촬영한 어린아이들. / 사진=이토 아비토, 제주학아카이브
1971년 8월~10월 사이 제주시 오라1동에서 촬영한 어린아이들. / 사진=이토 아비토, 제주학아카이브

 못 살던 시절, 이런저런 일들이 떠오른다.

삼시 세끼 배불리 먹고 배 두드리며 사는 오늘의 젊은이들은 상상하지 못 할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배가 등에 붙어 있으면서도 밭에 나가 일을 해야 했던 옛 어른들의 삶은 참혹한 지경이었다. 하물며 머리에 불덩이처럼 열이 나고 땀이 흘러내리고 심한 기침에 헐떡이면서도 감기를 구원할 약 한 방울이 없었다.

늘 하던 대로 ‘전뎜시민 나실 테주(견디다보면 나을 테지)’였다. 어머니는 감기로 불덩이가 된 10살 아들에게 말했다.

“자, 이거 모물죽이여. 후룩후룩 드르싸그네 이불 속에 누워이시민 땀이 흥당허게 날 거여. 그때, 검은 헝겊에 소곰 싼 걸 주쿠메 그걸로 땀난 얼굴을 막 문질르라 이? 기영 허민 고뿔 나사분다. 맹심해영 하란 대로만 허라”
(자, 이거 메밀죽이다. 후룩후룩 들이켜서 이불 속에 누워 있으면 땀이 흠뻑 날 거다. 그때, 검은 헝겊에 소금 싼 걸 줄 테니 그걸로 땀난 얼굴을 막 문질러라이? 그렇게 하면 감기 나아 버린다. 명심해서 하라는 대로만 하라.)

그런데 시킨 대로 했더니 감기가 씻은 듯이 낫는 게 아닌가. 답답해 숨이 막혔지만 한참 이따 얼굴을 내놓았지만, 찬 바람을 쐬면 어머니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는다. 감기가 재통(再痛)한다. 감기는 재통하면 중병이 된다.

메밀죽에 패마농(쪽파)만 굵직굵직하게 썰어 넣었다. 한데 그야말로 특효제였다. 무의촌의 겨울은 고난의 계절이었다.

아이들은 이렇게 감기를 낫게 하면서도 어른들은 전뎠다(견뎠다). 감기로 기침을 쿨럭거리면서도 밭을 떠나지 않았다. 강인했다. 

흔히 생활력이 강하다는 말로 얘기하지만, 그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다. 못 견디게 아파도 몸져 눕지 않았다. 그렇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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