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제주와 자치 이야기] 
(18) 국제자유도시, 미래글로벌산업도시를 떼내야

지난 6월 11일 강원특별자치도가 출범했다. 이로써 복수의 특별자치도 시대가 된 것이다. 

제주에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이하 ‘제주특별자치도법’)이 있듯이, 강원에는 ‘강원특별자치도 등에 관한 특별법’이 있다. 

처음에는 간략하게 만들어졌다가, 올해 6월 7일 전부 개정돼 법률의 명칭도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및 미래산업글로벌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강원특별자치도법’)으로 바뀌었다. 개정 법률은 2024년 6월 8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특별자치와 충돌하는 ‘미리 정해진’ 지역비전

기본적으로 특별자치도는 지방분권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지역 차원의 돌파구를 내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래서 특별자치도 출범 당시에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 같은 단어도 사용됐다. 물론 실제 현실은 그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권한 하나 이양받으려고 해도 일일이 중앙정부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국회에서 법률을 고쳐야 하는 ‘개별적 이양’ 방식이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특별자치도와 결합해 있는 ‘국제자유도시’나 ‘미래산업글로벌도시’같은 지역비전이다.

이는 지역의 발전방향과 관련된 것인데, 특별자치라면 그 지역주민들이 자율적으로 논의해서 지역의 발전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국회에서 법률을 통해 지역의 발전방향을 ‘국제자유도시’나 ‘미래산업글로벌도시’라고 정해준 것이다. 이것은 자치와는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특별자치와 ‘국제자유도시’, ‘미래산업글로벌도시’는 상호 충돌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이후에 발생한 혼란의 원인이기도 하다. 특별자치는 제주도민들 스스로 지역의 발전방향을 정해나가는 식으로 진행되고 발전되어야 하는데, 뒤에 ‘국제자유도시’가 붙으면서 제주의 발전방향은 국제자유도시로 정해진 것으로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규제완화’가 지상 명제처럼 여겨진 때도 있었다. 제주 국제자유도시는 ‘사람·상품·자본의 국제적 이동과 기업활동의 편의가 최대한 보장되도록 규제의 완화 및 국제적 기준이 적용되는 지역적 단위’라고 제주특별자치도법 제2조에서 정의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특별자치도법에는 지방분권을 강화한 또 다른 측면이 존재하고, 그 권한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특별자치를 한다고 하면서, 국회가 통과시킨 법률에서 지역의 발전비전을 미리 정해놓는다는 것은 모순이다.

정체성 혼란의 특별자치도

강원특별자치도도 마찬가지이다. ‘미래산업글로벌도시’를 지향한다고 하는데, 말은 그럴듯하다. 강원특별자치도법에서 미래산업글로벌도시의 개념 정의를 해놓은 것을 보면, “과학기술 혁신과 기후변화 등이 가져오는 새로운 산업사회로의 전환에 대응하여 첨단산업 육성, 자유로운 기업활동, 국제적 수준의 인력양성, 지속가능한 환경관리 및 국제교류의 중심 기능이 활성화되는 지역적 단위”라고 정의해놓았다(제2조).

그런데 뜯어보면 ‘기후변화’/‘지속가능한 환경관리’와 ‘자유로운 기업활동’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기후변화를 생각하고 지속가능한 환경을 생각하면, 산림과 농지를 보전해야 하고 개발을 억제해야 한다. 기업활동도 규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상호 모순되는 것을 지역의 발전비전으로 정해 놓았으니, 강원특별자치도도 앞으로 정체성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환경단체들은 강원특별자치도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법의 내용을 보면, 산지개발과 농지 훼손을 쉽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진흥지구 내의 완충구역에서 궤도건설 등 개발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4천만 제곱미터 이내에서는 도지사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승인을 받지 아니하고 농업진흥지역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면 기후위기 대응이나 환경보전과 관련된 내용은 빈약하고 추상적이다. 그러니 강원특별자치도가 말로만 기후, 환경을 얘기하지, 실제로는 난개발로 귀결될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하는 것이다.

앞으로 제주는 어떻게?

현재 상태에서 법률을 비교해보면, 제주특별자치도법도 한계점과 문제가 많지만, 강원특별자치도법은 내용도 더 빈약하고 정체성의 혼란도 더 심하다.

그러나 특별자치도를 17년이나 먼저 해 본 제주의 고민은 더 깊어야 한다. 복수 특별자치도 시대에 제주특별자치도의 정체성을 더 늦기 전에 다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국제자유도시’를 뗀 ‘제주특별자치도’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제주가 ‘국제자유도시’로 갈 것인지, 다른 방향으로 갈 것인지도 제주도민들이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개념의 특별자치도가 되어야 앞으로 제주도정이 추진하려고 한다는 ‘포괄적 권한이양’도 가능할 것이다. 포괄적 권한이양을 받으려면, 기존의 사고 틀에서 큰 전환을 이뤄내야 하고, 그 시작은 제주 내부에서부터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 하승수

1992년 공인회계사 시험, 1995년 사법고시까지 합격한 엘리트지만,  정작 그는 편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참여연대 실행위원과 납세자운동본부 실행위원장,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 시민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2006년부터 약 4년간 국립 제주대학교 법학부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을 맡으며 시민운동에 매진했다. 2012년 녹색당 창당에도 참여했다.

지금은 세금도둑 잡아라 공동대표와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풀뿌리 지방자치를 향한 '하승수, 제주와 자치이야기'를 매월 한차례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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