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교육春秋] (36) 우물에서 숭늉 찾지 마라!(표선고를 향한 행보에 부침)

2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왼쪽)이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한 뒤 오승걸 책임교육정책실장이 수능에 출제된 '킬러문항'(초고난도문항) 사례를 공개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 사진 출처=오마이뉴스
2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왼쪽)이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한 뒤 오승걸 책임교육정책실장이 수능에 출제된 '킬러문항'(초고난도문항) 사례를 공개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 사진 출처=오마이뉴스

“눈앞의 이익만 알고 결과가 같은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유하거나 남을 농락하여 자기의 사기나 협잡술 속에 빠뜨리는 행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朝三暮四 

두산백과가 소개하는 조삼모사의 의미다. 이달 중순 윤석열 대통령이 “공정수능”이라는 발언과 함께 수능시험문제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후 지난 26일 교육부는 킬러 문항을 공개했다. 이런 식의 문제는 출제하지 않겠다는 의미이지만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은 더욱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킬러 문항을 없애면 수능은 공정할까? 애초에 킬러 문항은 최상위권을 변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항이다. 성적순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관행은 그대로 둔 채 킬러 문항만을 없애겠다고 하니 변별력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존의 킬러 문항이 정당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수능이 가지는 성적 서열화는 그대로 둔 채 형식만 바꾸는 정책이 수험생을 농락하는 걸로 비쳐 우려스럽다는 의미다.

수능 논란 중에 이주호 교육부장관이 지난 22일 표선고등학교를 찾았다. 이주호 장관이 논란이 집중된 시기에 표선고를 찾은 건 아마 공교육의 변화와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공교육이 국제학교의 교육과정과 다를 바 없다는 것만으로도 매력이 크다. 표선고는 IB(국제 바칼로레아) 학교로 지난해 교육감선거에서 학생들의 대학 입학과 관련해 논란이 된 학교다. 이주호 장관은 IB 학교가 다른 지역으로도 빨리 확대되길 바란다는 말로 IB 학교의 교육과정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보였지만, 학부모들과의 간담회에서는 자신감 있는 태도를 유지하지 못했다. 수능 최저 기준이 없는 수시 전형 위주로 대입을 준비해야 하는 표선고의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IB 교육에 맞는 입시 제도가 절실하다. IB 고교 과정을 “대입 제도에 법제화 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달라”는 질문에 장관은 “국가적인 입시 제도는 저희가 좀 느리게 갈 수밖에 없는 많은 한계가 있다”는 말로 완곡하게 거절했다.

지난 22일 표선고등학교에서 이주호 교육부 장관과 김광수 제주도교육감, 학생, 교사, 학부모들이 참석한 간담회가 열렸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22일 표선고등학교에서 이주호 교육부 장관과 김광수 제주도교육감, 학생, 교사, 학부모들이 참석한 간담회가 열렸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이주호 장관의 바람처럼 아이들이 행복하게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이석문 전 교육감은 IB 학교를 도입하면서 다양한 우려의 목소리를 들었다. 당시에도 가장 큰 걱정은 대입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석문 전 교육감은 자신 있게 말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아직 IB 학교와 연계한 대입 전형은 없는데 대책이 있냐는 질문에 “대학에 충분히 갈 수 있다. IB 과정 학생들은 국내 대학뿐만 아니라 해외 대학 진학까지 폭넓은 선택의 기회를 갖게 된다.”고 답했다. 만일 이 말이 진심이었다면 너무 현실을 모르거나 외면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부장관도 답하지 못하는 질문에 너무나 자신감있게 답변한 셈이다. 

개인적으로 IB 학교의 프로그램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이 필수가 된 한국사회에서 대입은 커다란 장벽이다. 만일 내가 IB 학교를 추진한 교육감이었다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행복한 고등학교 시절을 선물하고 싶다면 IB 학교로 보내달라. 입시를 위한 학교가 아니라서 국내 대학에서는 얼마나 이 아이들을 받아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갈 힘을 가지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될 것이다. 대학은 바로 들어갈 수도 있고 재수를 해야 할 수도 있다. 그것조차 아이들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대학 입학이 힘들어, 재수를 하게 된다면 교육지원 방안도 마련하겠다.”

교육감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석문 전 교육감은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정직하게 지금 입시제도와는 맞지 않지만 필요한 교육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이주호 장관의 표선고를 향한 행보도 마찬가지다. 이주호 장관이 ‘아이들이 행복한 공교육’의 다양한 모델을 만들고 싶다면, 문제의 원인을 짚어야 한다. 아이들이 불행한 가장 큰 원인은 입시제도와 그와 연결된 임금 격차를 비롯한 사회적 차별에 있다. 입시제도는 내버려 둔 채 고등학교를 찾는 것은 우물에 가 숭늉을 찾는 격이다.

입시제도 개혁은 교육 대개혁의 핵심과제이고, 교육 대개혁은 사회 대개혁과 함께 이뤄져야 하고 그만큼 공론화를 통한 국민적 의견수렴이 전제되어야 한다. 임기응변식 교육 처방은 혼돈만 부를 뿐임을 정치권도 경험상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무한 반복되는 것은 교육개혁의 어려움보다 사회개혁의 방향이 잡히지 않기 때문일 것이고 그것은 지금의 사회제도로 이권을 누리는 자들이 권력과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안재홍

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KBS제주 TV 시사프로 '집중진단' 진행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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