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32) 첫 딸은 종 부릴 팔자에 난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똘 : 팔자  
* 팔저 : 팔자

 첫 딸은 부모와 같이 늙어가면서 더더욱 자상하고 세심하게 마련이다. / 사진=픽사베이
첫 딸은 부모와 같이 늙어가면서 더더욱 자상하고 세심하게 마련이다. / 사진=픽사베이

예로부터 아들을 선호했지만 첫 딸은 예외였다. 그 이유인즉슨, 첫 딸은 여덟 아홉 살만 되면, 집안의 자잘한 일은 마다않고 다했다. 어릴 적부터 여자아이는 달라서 이것저것 주위에 쌓인 일들을 어른이 시키지 않아도 으레 제가 할 일인 양 알아서 척척 했다. 청소는 물론 어른들이 이슬을 차며 어둑새벽에 밭에 나가면서 손이 닿지 않은 설거지까지 몽땅 해놓는다. 

그뿐인가. 해 저물고 밤중 아홉(늦은 시간이 돼야 돌아옴을 빗대 이름)에야 돌아오는 어른들과 식구들이 먹을 저녁밥까지 지어놓고 문간 밖에 나가 기다린다. 

심지어는 물항아리를 살펴 동네 우물에 가 대바지(아이가 물을 길어 나르게 만든 작은 물허벅)로 물을 길어다 채워 놓기까지 한다.

남자아이하고는 어릴 적 커올 때부터 생각하고 일하는 씀씀이가 썩 달랐다. 이런 딸을 보고 부모의 입에서 나오느니 칭찬이었다. 

“어마, 나 새끼 착허기도 해라.”

그래서 어느 집에서든 첫 똘 낳기를 바랐다. 그게 원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아들에 딸이 한둘 섞이기를 은근히 마음속으로 빌었던 것이다. 커서 시집 가버리면 출가외인이라고 선을 긋지만, 사실은 그게 그렇지가 않찮은가.

딸은 원래 잔셈이 많아 틈만 있으며 부모를 찾아 친정을 드나든다. 아파서 몸져누워 있을 때, 늙은 부모 옆에 앉아 병시중을 드는 것도 딸이다. 첫 딸은 부모와 같이 늙어가면서 더더욱 자상하고 세심하게 마련이다.

‘첫 똘은 종 부릴 팔저에 난다.’

종은 아무나 부리지 못한다. 살림이 넉넉해야 되는 일이다. 하지만 종을 못 부리면 어떤가. 딸이 있어 궂은일까지 도맡아 하는데….

첫 딸이 좋은 점을 일깨우며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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