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존엄성과 자기결정권 존중되는 교실을 상상하며

학생들의 존엄성과 자기결정권이 존중된다면, 학생들은 훨씬 더 자신들의 삶을 위해서, 어른들이 설정한 기초과정을 그야말로 자기 삶에 대한 기초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학교 학습에 참여하게 되지 않을까? / 사진=픽사베이
학생들의 존엄성과 자기결정권이 존중된다면, 학생들은 훨씬 더 자신들의 삶을 위해서, 어른들이 설정한 기초과정을 그야말로 자기 삶에 대한 기초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학교 학습에 참여하게 되지 않을까? / 사진=픽사베이

제주도 내 모 여중에 인권교육을 갔을 때 일이다.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교장 선생님이 된다고 하면 무엇을 하고 싶든가요?” 

또래 여중생이면 관심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학생들이 머리를 길게 기를 수 있게 하겠다”, “공부하지 않게 하겠다”, “남녀공학으로 만들겠다” 등등. 어떤 학생은 “아예 학교를 없애겠다”라는 말까지 했다. 허튼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필자는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참 고달파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창가 쪽에 있던, 조금은 시크해 보이는 한 학생이 심드렁하게 이야기했다. 

“공부 말고 다른 거 하겠다.”

필자가 원래 질문한 의도는 학생들의 자치와 자기결정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자신들이 원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을 꺼내놓고 그것을 어떻게 의제로 설정하고, 어떻게 토론해서 결정하는지에 관해 설명을 하려고 먼저 학생들의 욕구를 물어본 것이었다. 

우선 본래의 목적대로 여러 의견 중에 학생들이 요구하는 교복 착용에 관한 이야기를 예로 삼았다. 교복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면, 그 문제에 대해 먼저 스스로 토론해 보길 권했다. 학생들 스스로 왜 교복을 입어야 하는지, 왜 교복을 입지 말아야 하는지를 토론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리고 학생들 간에 교복에 관한 의견이 모인다면 그것을 다시 선생님을 비롯한 학교, 그리고 부모님들과 공식적으로 토론회를 열고 논의해 볼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우리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한 가지 사안에도 여러 입장이 있을 수 있으므로 민주적인 토론을 통해 서로가 동의할 수 있는 의견을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과정에 학생들이 스스로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알렸고, 그것이 학생들의 권리임을 설명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가 바로바로 이뤄지지 않음에 실망했기도 했지만, 학생 자신들의 문제가 거론된다는 점에 매우 흥미로워하며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했다. 잠을 자던 학생들도 눈을 뜨고 이야기에 집중하기도 했다. 

사실 인권교육을 진행할 때는 잠을 자는 학생이 있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그 학생들 나름대로 사정이 있기도 하겠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음에도 강제로 주어진 시간에, 이것저것 많은 정보가 쏟아지니 힘들기도 하겠다는 필자 나름대로 이해이기도 하고, 그래도 인권교육인데 강제로 인권에 관한 정보를 강요하는 것 같아 오히려 미안하기도 해서 잠을 억지로 깨우지 않는다. 그런데 인권교육을 하다 보면 학생들이 때때로 스스로 잠을 깨고 필자에게 주목할 때가 있다. 자신들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자신들의 욕구 또는 바람이 이뤄질 것 같은 수업 내용에는 금세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도 한다.

교육계에는 ‘자기주도학습’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어느 교육 현장이든 늘 수시로 강조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학생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 배움을 이룬다는 교육 방식이다. 이를 위해서 수많은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자기 동기부여를 할 수 있도록 큰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실제 교육 현장에서 이러한 교육방식이 잘 먹히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다. 왜 그럴까? 결국 자기주도학습은 그 주체가 스스로 해야 한다는 핵심이 있는데, 그게 잘 안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창가 쪽에 그 시크한 여중생의 한마디가 내 귀에 크게 들렸다. 

“공부 말고 다른 거 하겠다.” 

왜 공부는 하지 않겠다는 것일까? 그런데 왜 다른 것은 또 하겠다는 것일까? 필자는 그 학생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나의 의견으로 받아들였고, 그것에 대해 설명하겠노라고 응답했다. 그러면서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도 특별히 강조되고 있는 ‘교육받을 권리’에 대한 설명으로 응답했다. 

아동·청소년들은 자기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 자신의 잠재적 능력을 발휘하는 필요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학생에게 공부 말고 다른 것을 할 권리가 있고, 그 다른 것을 하는 데 필요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래서 원하는 교육을 학교에 요청할 수도 있다고 말해 주었다. 더불어 초, 중학교의 기초 교육과정은 그 다른 어떤 것을 하든 간에 지금껏 인간들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우리 인간 삶의 기초가 된다고 판단한 정보를 모아 놓은 것으로 그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점도 설명하였다. 그 학생은 필자의 교육 시간 내내 나의 말에 집중해주었고, 필자가 보기에 교육의 끝날 때 즈음 얼굴은 아주 부드러워진 느낌이 들었다. 

얼마 전 제주도 내 모 중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에게 성적이 저조하다며 그냥 배드민턴이나 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필자는 가끔 여러 선생님이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교 교육이 학생들의 삶이나 욕구, 바램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비쳐 절망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말로는 ‘자기주도학습’이라고 강조하면서도 결국 학생들을 판단하는 것은 학습 정보에 대한 암기 능력 평가 점수에만 매몰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어른들의 욕망에만 편중된 점수로만 정의되는 공부에 학생들은 관심이 별로 없을 수밖에 없다. 아니 오히려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각 개인에 따라 개별적 능력이 다양하고 천차만별이다. 정말 자기주도학습을 성공시키려면, 학생들은 자신들이 이룬 자그마한 성과라도 인정받아야 하고, 자신들이 자신들의 삶을 잘 만들기 시작했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결국 한 명만 존재할 수밖에 없는 1등을 위해서 모든 학생을 채근한다는 것 자체가 자기주도학습에 치명적 장애물이지 않을까? 

학생들의 존엄성과 자기결정권이 존중된다면, 학생들은 훨씬 더 자신들의 삶을 위해서, 어른들이 설정한 기초과정을 그야말로 자기 삶에 대한 기초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학교 학습에 참여하게 되지 않을까? 학생들과 만남에서 인권적 자세야말로 바로 자기주도학습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교육방식이지 않을까? 

공부가 그저 강제로 주어지기만 해서 그 ‘공부 말고 다른 것을 하겠다’라는 그 시크한 학생이 한 번의 교육으로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 자신할 수 없다. 하지만 필자는 그 학생이 자기 삶을 위해서,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그 다른 것을 위해서 학교 교육을 잘 이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교육을 당하는 것이 아닌 진짜 교육받을 수 있는 학창 생활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더해서 우리 학교 교육이 지금보다는 좀 더 학생들을 주체적 인간으로 존중하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 /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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