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원희룡, 박민식, 한동훈, 윤석열까지...싸움하듯 추진, 신뢰 멀어져

지난 6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대통령 부인 처가 땅 문제로 한창 논란이 일고 있는 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에 대해 “김건희 여사 땅이 그 곳에 있는 사실을 몰랐다”며 “저는 장관직을 걸 뿐만 아니라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발언했다.<br data-cke-eol="1">/ 사진=오마이뉴스 유튜브 갈무리
지난 6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대통령 부인 처가 땅 문제로 한창 논란이 일고 있는 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에 대해 “김건희 여사 땅이 그 곳에 있는 사실을 몰랐다”며 “저는 장관직을 걸 뿐만 아니라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발언했다.
/ 사진=오마이뉴스 유튜브 갈무리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정치사상가인 맹자(孟子)가 남긴 말이다. 지금 볼 때 그 말이 갖는 의미가 그리 놀랍거나 새삼스럽지 않다. 하지만 맹자가 그 말을 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2000년도 전인 중국 전국시대다. 왕이라는 절대 권력이 있고 신분제가 사람을 옭아매던 시절이다.

그런 그 때 그는 백성이 군주보다 귀하다고 했다. 나아가 왕이 누리는 권력은 백성을 위해 일하도록 준 것이며 부당한 권력을 휘두르는 군주에는 저항하고 바꿔야 한다고 했다. 시대를 뛰어넘는 진보적 주장이다. 맹자가 2000년 세월을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이유로 충분하다.

맹자가 살고 간 이후에도 세상은 오랜 세월 봉건 신분제 사회를 겪었다. 신분제가 사라지고도 독재권력을 겪어야 했다. 오래고 힘든 민주주의 발전과정을 거쳐 민주주의가 보편적 정치이념으로 자리 잡은 지금에야 “백성이 군주보다 귀하다”는 말은 다른 설명조차 필요 없는 말이 됐다.

우리 헌법 1조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주권재민을 최고 정치이념으로 삼는다. 그런데 요즘 정치권을 보면 맹자가 다시 일어나 무슨 말을 일갈할지 모르겠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했다. 그런데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이 국민을 멀리 떠나 몇몇 사람들 품으로 들어가 버린 듯하다. 대의 민주주의 아래 선거제도를 통해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와 의회 대리인들을 뽑는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또 다른 권력 집단이다.

선거에 승리한 정당이나 정치인에게는 권력을 잡았다느니 권력자라니 수식어가 붙는다. 그리고 당선과 함께 권력은 주인인 국민을 떠나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옮아가 버린다. 선거 주체는 정당이나 정치인이 아닌 주권자인 국민이다. 선거제도 또한 정당이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는 방식이나 절차가 아니다. 주권자들이 선거를 통해 직(職)과 업(業)을 맡아 일할 대리인들을 뽑는 주권 행위가 선거다.

선거 당선이 곧 권력을 쟁취하는 것도 아니며 선거를 통해 권력이 주권자를 떠나 옮아가도 안된다. 직이 국민들이 부여한 자리이자 직위라면 업은 마땅히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다. 주권자로부터 선택된 자들은 맡은 바 직에 따라 업을 다하면 되는 일이다.

요즘 부쩍 직을 거는 장관들이 잇따르며 논란과 비판을 사고 있다.

지난 6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직을 걸었다. 대통령 처가 땅 문제로 한창 논란이 일고 있는 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에 대해 “김건희 여사 땅이 그 곳에 있는 사실을 몰랐다”“저는 장관직을 걸 뿐만 아니라 정치생명을 걸겠다. 이재명 대표, 민주당 간판 걸고 붙자”고 도발 발언을 했다.

같은 날 국가보훈부 박민식 장관은 독립군을 토벌하던 간도 특설대 출신으로 친일파 인명사전에 등재된 백선엽 장군에 대해 “친일파가 아니라는 것에 직을 걸고 이야기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국가보훈업무를 책임지는 장관이 친일파 활동 경력이 분명한 개인 명예회복에 직을 걸고 있다. 

이에 앞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지난해 10월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야당의원에 “장관직을 포함해서 다 걸겠다”며 공격한 바 있다. 더 돌아가 보면 윤석열 대통령이 먼저 직을 건 바 있다.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 시절 윤 대통령은 검찰개혁 입법에 “직을 건다”며 반발한 적이 있다. 

물론 직을 건다는 발언은 여야를 떠나 심심찮게 있었지만 이번 정부에서는 유행처럼 나온다. 공교롭게도 검사 출신 장관들이다. 승부사처럼 유무죄를 다투던 검사 시설 성향이 몸에 밴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있다.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이나 공천권자에게 눈도장을 받으려는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사고 있다. 이유를 떠나 국민 모두를 위한 일을 맡고 책임지는 공직자이자 타협과 설득이 필요한 정치 영역에서는 어긋난 행태다. 국민을 위해 일하라고 주권자로부터 선택과 소명받은 장관이라는 자리를 마치 소유물처럼 생각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더욱이 불거진 여러 의혹들이 국민 상식과 정서로 볼 때 의문을 갖고 사실 여부를 따져 물을 만하다. 정말 의혹이 사실이 아니거나 억울함이 있다해서 도박판 내기하듯 직을 걸고 따질 일은 더욱 아니다. 

무엇보다 공직을 마치 선거를 통해 쟁취한 권력 정도로 생각한다면 잘못된 인식이다. 권력을 잡았으니 누리는 것이고 개인 판단에 따라서 마음대로 버려도 되는 전리품 정도로 생각하게 된다.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공직은 개인이 누리는 권력이 아니다. 또 특정 정당이나 지지층만을 위한 자리도 아니다.

직에 대한 인식이 이러하니 업에 대한 인식도 가볍기는 마찬가지다. 원희룡 장관은 야당이 사실이 아닌 문제 제기를 했다는 이유로 7년째 예비타당성 조사를 포함해 여러 절차를 거치며 추진해온 1조7000억원 규모의 국책사업을 하루아침에 백지화하겠다는 돌출 발언을 했다. 

국가에 필요한 사업이라면 타당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끝까지 일을 마무리하는 게 공직자로서 책임이다. 의혹과 논란에 대해서는 그러하지 않음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게 우선이다. 그럼에도 국책사업을 공론 절차없이 변경한 것도 모자라 의혹 제기를 이유로 하루아침에 백지화하겠다는 결정이 주민 혼란과 갈등만 키우고 있다. 

장관직을 걸고 내기나 싸움하듯 정부 사업이 이뤄진다면 신뢰와 지지는 커녕 갈등과 혼란을 낳고 사회적 비용만 커진다. 꼭 필요한 사업이라 한다면 그 사업 취소에 따른 불편과 불이익은 지역주민을 비롯한 국민이 지게 된다.

<br>

물음은 제주2공항으로 향한다. 그렇지않아도 제주2공항 사업 필요성이나 입지 선정, 전략환경영향평가 논란 등 절차를 놓고 의혹과 갈등이 깊다. 이 또한 양평고속도로처럼 국토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것인가? 또 다른 반대나 의혹 제기가 있으면 백지화를 선언할 것인가? 

장관들이 가벼이 직을 걸고 싸움하듯 추진하는 정부 일처리 모습에 신뢰는 멀어지고 걱정은 크다. 난제를 풀기에는 맡은 바 직에 충실해도 부족한 때다. 공직을 맡긴 이도 국민이고 거둬들일 이도 국민이다. / 김효철 논설위원(곶자왈사람들 공동대표)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