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제주4.3행방불명희생자 진혼제 15일 개최...“여전히 남은 과제 위해 노력”

“어릴 때 아버지께서 ‘우리 아들 잘 컸구나’하고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안아주는 것이 그렇게 그리웠습니다. ‘아버지’하고 불러볼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철부지 때는 그저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 어린아이는 이제 반백의 노인의 돼 아버지가 계신 세상으로 가서 만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주4.3 행방불명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명복을 기원하는 ‘제22회 제주4.3행방불명희생자 진혼제(이하 진혼제)’가 15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표석 위령제단에서 봉행됐다.

‘제22회 제주4.3행방불명희생자 진혼제(이하 진혼제)’가 15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표석 위령제단에서 봉행됐다. / 사진=행불인유족회
‘제22회 제주4.3행방불명희생자 진혼제(이하 진혼제)’가 15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표석 위령제단에서 봉행됐다. / 사진=행불인유족회

4.3 유족회 활동은 1988년 10월 30일 창립한 ‘제주도4.3사건민간인반공희생자유족회’로 시작한다. 1990년 6월에는 ‘제주도4.3사건민간인희생자유족회’로 명칭을 바꿨다.

이후 4.3특별법이 제정된 해인 2000년 3월 13일에 제주4․3행방불명인유족회가 창립했다. 2000년 12월 8일 제주4.3사건민간인희생자유족회와 행방인유족회가 통합하기로 합의했다. 이듬해 3월 3일에 ‘제주도4.3사건희생자유족회’가 통합 출범했다. 그리고 2007년 3월 현재 명칭인 ‘제주4.3희생자유족회’로 개칭했다. 

첫 4.3행방불명인 진혼제는 2000년 4월 5일 옛 주정공장터에서 열렸다. 통합 유족회가 출범하고 2001년부터 2008년 제9회에 이르기까지 4.3희생자유족회 주최로 매해 4월에 주정공장터에서 진혼제를 봉행해왔다.

2011년 3월 26일 평화공원 봉안관에서 발굴유해 봉안식을 가졌고, 그해 7월 9일에는 제10회 4.3행방불명희생자 진혼제를 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 비원에서 열었다. 2012년 이후로는 매해 7월 세 번째 토요일마다 표석 위령제단에서 진혼제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진혼제는 제주4.3희생자유족회가 주최하고, 제주4.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이하 행불인유족협의회)가 주관했다.

현장에는 양성홍 행불인유족협의회장, 김창범 희생자유족회장 등 4.3유족들과 오영훈 지사, 김경학 도의회 의장, 김광수 교육감, 위성곤·김한규 국회의원, 고희범 4.3평화재단 이사장 등이 참여했다.

진혼제 참가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맨 오른쪽부터 김광수 교육감, 김경학 의장, 오영훈 지사, 김창범 회장, 양성홍 협의회장. / 사진=제주도 
진혼제 참가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맨 오른쪽부터 김광수 교육감, 김경학 의장, 오영훈 지사, 김창범 회장, 양성홍 협의회장. / 사진=제주도 

양성홍 협의회장은 주제사에서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에 기재된 2530명의 희생자는 2000년에 이르러서야 기록을 찾을 수 있었고, 그제야 행방을 알게 된 유족들이 대다수이다. 군법회의 희생자분들은 소송 또는 직권재심을 통해 무죄판결 받고 명예를 회복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희생자분들이 자신의 가족의 행방을 알지 못하고 있다. 모든 행방불명인에 대해 진상이 밝혀지고 명예회복이 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2021년에 전부개정 된 4.3특별법에 따라 4.3희생자에 대해서 개별보상이 진행되고 있고, 또 잘못된 가족관계등록부도 정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모든 군법회의 수형인들에 대한 명예회복, 형사보상과 손해배상청구, 행방불명된 분들의 신원확인 등 과제들이 많이 남아있다. 우리들은 모든 행방불명인들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성홍 협의회장은 “과거를 돌이켜 보면 ‘기억하는 자들이 사라지면 역사를 왜곡해 왔다’고 한다. 우리의 4.3은 ‘기억을 기록으로’, ‘기록을 유산으로’ 남겨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이 땅에서 과거 우리가 겪었던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김창범 회장은 “후손들이 가야할 길은 오로지 4.3과제를 정의롭게 해결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영령님들의 명예회복과 단 한 분이라도 따뜻한 가족 품으로 모시기 위해 소홀함이 없도록 명심하겠다. 4.3 왜곡·폄훼에 대해 당당하게 맞서며, 무소의 뿔처럼 올곧은 길로 남은 4.3과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 후손들이 가는 길에 굽어 살펴주시옵고 지혜와 용기를 북돋아 주길 바란다”고 영령들에게 당부했다.

참가자들이 분향을 하고 있다. / 사진=제주도.
참가자들이 분향을 하고 있다. / 사진=제주도.

오영훈 지사는 추도사를 통해 “4.3유족회와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의 협조를 통해 최근 행방불명 희생자 신고를 완료했다”며 “꼼꼼한 사실조사와 심의를 통해 최대한 많은 분이 희생자로 인정돼 직권재심으로 명예를 회복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유해 발굴과 발굴 유해 유전자 감식사업을 통해 현재 411분의 유해를 확인했고, 141분의 신원을 파악했다”면서 “앞으로도 행방불명인 유족을 포함한 모든 희생자들의 아픔을 덜어드릴 수 있도록 많은 과제를 해결하는데 정성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김경학 의장은 “4.3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발걸음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어디로 끌려가셨는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 수 없는 분들이 많다. 4.3의 완전한 해결을 이루기 위해선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제주도의회는 4.3의 완전하고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4.3의 역사를 기억하고 후세로 올곧게 전승해 나가는데 더욱 노력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김광수 교육감은 “4.3정신의 계승과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그 가운데 4.3에 대한 교육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4.3을 지속성 있게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것과 세계화를 통해 4.3을 인류보편의 가치로 승화시키는 것은 교육의 몫이기 때문”이라고 4.3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주도교육청은 ‘4.3평화·인권교육’을 통해 평화와 인권, 화해와 상생이라는 인류보편의 가치들이 미래세대인 학생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오늘 진혼제에 함께하신 여러분께서도 4.3이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의 대명사가 될 수 있도록 ‘4.3평화·인권교육’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피력했다.

고희범 이사장은 “암매장당한 영령님들의 유해 발굴과 유전자 감식을 통한 신원확인 작업으로 후손된 도리를 다 한다 할 수 있겠습니까만은, 단 한 구의 유해 발굴도, 단 한 명의 신원확인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며 “시신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죽임을 당했는지, 그 마지막 행적이라도 밝혀달라는 행방불명 희생자 유족님들의 간절한 바램을 가슴에 새기고 추가진상조사 작업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진혼제는 진혼 제례를 시작으로 4.3평화합창단 공연, 헌화 및 분양, 경과보고, 주제사, 진혼사, 추도사, 추모시 낭독 순서로 진행했다.

진혼제 참가자들. / 사진=행불인유족회
진혼제 참가자들. / 사진=행불인유족회
4.3평화합창단.  / 사진=행불인유족회
4.3평화합창단.  / 사진=행불인유족회

제주도는 4.3 당시 불법 군사재판 수형인 피해자로 확인된 2530명 가운데 신원 파악이 어려운 258명에 대한 희생자 신고를 완료했다. 희생자 신고가 완료된 258명에 대해서는 추후 4.3실무위원회와 4.3중앙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최종 행방불명인으로 결정되면 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표석 위령제단으로 모실 예정이다. 

한편, 현재 4.3평화공원에는 총 4007기의 행방불명인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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