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35) 까마귀가 솥 타령한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가마귀 : 까마귀  
*솟 : 솥(밥솥, 국솥)

그렇게 까만 까마귀가 저보다 조금 덜 검은 솥을 검다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웃기는 일이다. / 사진=픽사베이
그렇게 까만 까마귀가 저보다 조금 덜 검은 솥을 검다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웃기는 일이다. / 사진=픽사베이

까마귀같이 몸이 새까만 날짐승이 있을까. 

몸 전체가 까만 깃털로 덮인 데다 어느 구석 검지 않은 곳이 한 군데도 없다. 부리도 검고 눈도 검고 발도 다리까지 검다. 물가에서 한적하게 노니는 새하얀 해오라기와 선명하게 대조가 된다.

그렇게 까만 까마귀가 저보다 조금 덜 검은 솥을 검다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웃기는 일이다. 자신이 더 검은 것을 모르고 남이 검다 하는 경망스러운 언동이 아닐 수 없다. 한참 주제 파악을 못하는 짓이다. 남을 비웃고 남의 결함을 꼬집는 좋지 않은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은 깨끗해 보이고, 상대는 나빠 보이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는 누구에게도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할 것은 물론이다.

요즘 정치 사회를 망라해 자신만을 내세우면서 상대를 업신여기고 비하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이다. 

행여, 정도(正道)를 걷는 내 가족이 뜻하지 않는 모함이나 함정에 걸려 마음에 상처를 입을세라 노심초사하게 된다. 

아파트 숲가에 앉아 있으면, 까마귀와 까치가 흔히 쫓고 쫓기는 싸움을 벌인다. 까치들이 둥지에 새끼를 쳤는데, 까마귀들이 까치 새끼를 노린다. 까마귀의 기습에 대응하는 까치의 공격이 잽싸고 매섭다. 괴성을 내지르며 공중을 휘젓는다. 하루 이틀이 아니다. 새끼를 보호하려는 까치 쪽이 사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일단 영역을 벗어났다가 다시 나타나는 까마귀, 두 무리의 혈투가 처절하다.

자기를 키워준 어미에게 석 달 열흘 먹이를 먹여 효도한다고 반포조(反哺鳥)라 일컫는 까마귀, 녀석도 먹이 앞에는 눈이 빨개지는 모양인가.

까마귀가 솥 타령한다는 걸 보면, 다른 새를 얕잡아보는 습벽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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