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제주와 자치 이야기]
(19) 기초지방자치 부활 어떻게 할 것인가?

제주특별자치도의 기초지방자치단체 부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용역(제주형 행정체제 도입 등을 위한 공론화 추진 연구용역) 주체가 중간보고를 하면서 2개 안이 대안으로 제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2개 안은 ‘시·군·구 기초지방자치안’과 ‘시·읍·면 기초지방자치안’이다.

그리고 시·읍·면 자치안에 대해서는 생소해하는 분위기도 느껴진다. 60년 이상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시·읍·면 자치가 다시 논의 테이블에 올라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시·읍·면 자치는 지방자치의 뿌리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시·읍·면 자치는 1949년 제정된 대한민국 최초의 지방자치법에서 채택한 기초 지방자치 제도이며, 1961년 이전까지 시행되고 있던 우리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여러 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기초지방자치 모델이라는 것이다. 

4.19혁명 직후인 1960년 제주도에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도지사, 도의회 선거와 함께 기초지방자치단체장, 기초지방의회 선거를 실시했다. 당시 제주의 기초지방자치단체는 시·읍·면이었다.

그리고 당시에 시는 제주시 하나였고, 읍·면은 한림읍, 대정읍, 서귀읍, 애월면, 한경면, 구좌면, 조천면, 추자면, 안덕면, 중문면, 남원면, 표선면, 성산면 등 13개였다. 

그래서 1960년에는 제주시장과 함께 13개 읍·면장을 주민직선으로 뽑았다. 그리고 시의원, 읍의원, 면의원도 선출했다.

그런데 1961년 5.16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이라는 법률을 만들어 읍·면 자치를 폐지하고 군으로 통합했던 것이다. 이는 국회에서 민주적으로 만든 지방자치법을 근본적으로 훼손한 것이었다.

그런데 1991년 지방자치를 부활시키면서, 당시의 정치세력들과 행정관료들이 읍·면 자치를 부활시키지 않고, 시·군을 기초지방자치단체로 했던 것이다. 그래서 제주의 경우에도 2시(제주시, 서귀포시) 2군(북제주군, 남제주군) 체제가 됐고, 2006년 특별자치도 출범 이전까지는 이러한 체제가 유지됐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돌아보면, 62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 시·읍·면 자치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따지고 보면, 시·읍·면 자치는 한국 지방자치의 뿌리였고, 제헌국회가 만든 민주적인 제도였다.

시·읍·면 자치는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는 모델

세계적인 지방자치 현황을 보면, 도시지역에서는 시(市)를 자치단위로 하고, 농촌지역에서는 읍·면 정도를 기초지방자치 단위로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기초지방자치단체인 시·정·촌에서 정(町)·촌(村)은 우리로 치면 읍·면이다. 독일의 기초지방자치단체인 게마인데(Gemeinde)도 농촌지역에서는 우리의 읍·면 정도이다. 스위스의 기초지방자치단체인 코뮌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 평균 인구 규모가 20만명이 넘는 세계 최대수준인 것도 바로 농촌지역에서 읍·면이 아닌 군(郡) 단위로 지방자치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촌에서 군(郡)은 자치를 하기에는 너무 넓고 인구 규모가 크다. 실제로 육지부의 군을 보면, 각 읍·면의 실정이 상당히 다르다. 그런데 군청에 권한과 예산이 집중되어 있다 보니까, 각 읍·면의 특성을 살린 정책을 펴지 못한다. 군청 중심으로 나오는 정책은 탁상 정책, 하향식 정책으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농촌의 경우에는 면(面)이 생산과 생활의 기본단위인데, 군에 권한과 예산이 쏠려 있다 보니 군청 소재지로의 집중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면 지역의 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군청 소재지인 읍 지역의 인구는 유지되거나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농촌지역에서 군(郡) 단위 자치는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따라서 제주에서 기초지방자치를 부활시킨다고 하면, 과거의 시·군체제로 돌아가기 보다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의미에서도 시·읍·면 자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기초지방자치 부활 논의는 어떻게?

물론 무조건 시·읍·면 자치가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대안들이 검토되고 논의될 필요가 있다.

다만, 필자는 제주특별자치도에 기초지방자치 부활이 필요하다고 본다. 제왕적 도지사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하고, 제주의 각 지역이 지역 특성에 맞게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도 기초지방자치 부활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러 대안 중 하나로 시·읍·면 자치가 논의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읍·면 자치는 장점이 있는 방식이다.

인위적인 구역 분할도 필요 없다. 기존의 행정구역을 살리면서, 제주시의 도시지역과 서귀포시의 도시지역은 제주시, 서귀포시로 하면 된다. 그리고 현재의 12개 읍·면은 기본적으로 유지하면서 기초지방자치단체로 전환하되,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서 통합을 원하는 곳이 있으면 통합해도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구가 많은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시장은 도지사를 상당히 견제할 수도 있고, 각 도시의 특성에 맞는 도시정책을 펼칠 수 있다. 그리고 도시지역의 동 지역은 동장을 직선으로 뽑고 동 단위 주민자치를 강화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읍·면 지역의 경우에는 읍·면을 기초지방자치단체로 하면, 각 읍·면의 특성을 살려서 지역의 ‘내발적 발전’을 모색해나갈 수 있다. 다만, 시와 읍·면의 권력구조와 조직형태, 권한 배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다각적인 검토를 해 나갈 필요가 있다.

물론 시·읍·면 자치, 더 나아가 기초지방자치 부활에 대한 반론도 상당할 것이다. 그러니까 검토와 토론의 시간이 상당히 많이 필요한 것이다. 여러 대안들을 놓고 장·단점을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어떤 대안이든 시한을 정해놓고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 도민들이 이해하고 의견을 제시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어차피 법률이 개정되어야 하는 사항이다. 그러니까 내년 4월 총선 이후에 구성되는 22대 국회에서 논의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따라서 제주 내부에서 충분한 숙의의 과정을 거칠 시간적 여유는 있다. 앞으로 진행될 경청회, 공론조사, 여론조사 등으로 부족하다면, 더 많은 토론을 거쳐서라도 도민들의 합의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그래야 최종적으로 어떤 대안이 채택되든 중앙정부와 국회를 설득할 힘이 생길 것이다.

# 하승수

1992년 공인회계사 시험, 1995년 사법고시까지 합격한 엘리트지만,  정작 그는 편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참여연대 실행위원과 납세자운동본부 실행위원장,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 시민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2006년부터 약 4년간 국립 제주대학교 법학부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을 맡으며 시민운동에 매진했다. 2012년 녹색당 창당에도 참여했다.

지금은 세금도둑 잡아라 공동대표와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풀뿌리 지방자치를 향한 '하승수, 제주와 자치이야기'를 매월 한차례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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