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36) 구명 나면 장마 멎는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구명 : 연일 비가 쏟아져 내리는 장마철에 땅속을 흐르던 차디찬 지하수가 지각을 뚫고 솟아 흐르는 것을 ‘구명’이라 한다. 흔히 “구명났다”, “구명 터졌다” 고 한다.
*마 : 장마
*갇나 : 걷힌다. 멎는다. 그친다

일기예보가 없던 시절, 지하수가 땅 위로 솟아 흐르는 것을 보고 기상 관측을 한 조상들의 지혜를 엿보게 한다. 사진=픽셀즈
일기예보가 없던 시절, 지하수가 땅 위로 솟아 흐르는 것을 보고 기상 관측을 한 조상들의 지혜를 엿보게 한다. 사진=픽셀즈

지형상 특이한 현상의 하나다. 섬인 제주도는 연중 비가 많은 다우지역에 속한다. 

한데 지형상 한라산이 섬 한가운데 높이 솟아 있어, 엄청난 빗물이 산기슭을 타고 내리면서 지하로 흘러들어 버린다. 그러는 바람에 논밭이 거의 없어 대부분이 밭이 됐다.

그런데 6,7월 장마가 들면 아주 달라진다. 계속해서 비가 많이 내리면, 땅속에 스며 들었던 물이 숨골(수맥)을 따라 땅 위로 솟아 나와 봇물처럼 마구 흘러내린다. ‘구명나는 것’, ‘구명 터지는 것’이다. 그러면 오래 끌어 오던 지루한 마(장마)가 멎는다는 상례(常例)가 돼 왔다는 얘기다.

하늘을 잔뜩 덮었던 검은 구름이 들르면서(걷히면서) 오랜만에 푸른 하늘을 보게 된다는 것, 얼마나 고대했던 일인가.

일기예보가 없던 시절, 지하수가 땅 위로 솟아 흐르는 것을 보고 기상 관측을 한 조상들의 지혜를 엿보게 한다.

유사한 것으로, “금감꼿 피민 마 갇나”, “맹마구리 울민 마 갇나” 등이 있다. 아마 다른 지역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예일 것이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