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국의 시와 시작 노트] (31) 돌고래가 산다더라

 

 

돌고래가 산다더라

가끔씩 맨발로 와서 물수제비 뜬다더라
바위에도 젖을 물리는 포유동물이 산다더라
만발한 국화밭 가꾸며 동해바다가 산다더라

한 생애 열길 물속 벽을 향해 돌아누우며
늦도록 굽은 허리로 자맥질 돕던 바다
나선형 슬픔을 감추며 늙은 고래가 산다더라

강강술래 강강수월래 독도리 산 1번지
정강이 뼈를 깎으며 섬이 혼자 산다더라
정한수 놋그릇 머리엔 초록 등을 켠다더라

동체로 곤두박질치는 절망이여 빛이여!
등 푸른 백두대간에 밀고 당기는 물갈퀴여
돌아와 자유를 가꾸며 사람들이 산다더라

/ 2007년 고정국 詩 

사진=픽사베이<br>
사진=픽사베이

#시작노트

詩란 시대적 상황의 예각에서 그 시대정신을 이끌어가야 하기에, 시 쓰는 사람들이 고독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나의 작품 밑바탕에는 낮음과 넓음을 동반하는 ‘바다’라는 바탕화면이 깔려 있습니다.

동경 131도, 북위 37도 14분,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산 1번지, 그 섬에 가서, 2년 남짓 날마다 갇히고 날마다 탈옥하는 꿈의 시집 한 권 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 신체적 조건은 물론, 독도에 대한 갖가지 제약 때문에 그 <탈옥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2년 전, 제주도 동쪽 섬 우도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1년간 글쓰기 지도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해 경상북도에서, 전국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독도에 관한 글쓰기 공모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써온 작품 다섯 편을 골라 응모 했는데, 최우수상에서 장려상까지 다섯 편 작품 모두가 입상했습니다. 한반도 맨 동쪽의 섬 독도와, 제주도 맨 동쪽에 있는 우도가 마치 자매결연이라도 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소박한 기쁨이야말로, 저들 어린이 중에 나를 대신해서 한 녀석이 독도에 살면서 세계적 명저를 써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새롭게 해주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초부터 내 삶의 바탕에는 ‘감옥’이라는 현실인식이 깔려 있었나 봅니다. 날마다 갇히고 날마다 탈옥하려는…, 그 탈옥의 방법으로 문학을 선택한 것이, 하필 삼장 육구 열두 음보인 시조의 틀에 갇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내가 치러야 할 숙명이고 보면, 수천 편에 달하는 나의 작품 한편 한편이 섬과 다르지 않습니다.  

50년 전 호위구축함을 타고 동해바다 경비 중에, 배 곁에 다가와서 우리 해군을 응원해주던 돌고래 무리가 그리워졌습니다. 마스트 꼭대기에 앉아 지친 몸을 쉬고 있던 갈매기 한 마리, 동해 바다를 국화 밭처럼 아름답게 수놓았던 울릉도 오징어잡이 배 집어등 불빛이 오늘따라 그립습니다.


#고정국

▲ 1947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 출생
▲ 1972~1974년 일본 시즈오카 과수전문대학 본과 연구과 졸업
▲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 저서: 시집 『서울은 가짜다』 외 8권, 시조선집 『그리운 나주평야』.  고향사투리 서사시조집 『지만울단 장쿨레기』, 시조로 노래하는 스토리텔링 『난쟁이 휘파람소리』, 관찰 산문집 『고개 숙인 날들의 기록』, 체험적 창작론 『助詞에게 길을 묻다』, 전원에세이 『손!』 외 감귤기술전문서적 『온주밀감』, 『고품질 시대의 전정기술』 등
▲ 수상: 제1회 남제주군 으뜸군민상(산업, 문화부문),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유심작품상, 이호우 문학상, 현대불교 문학상, 한국동서 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등
▲ 활동: 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도지회장 역임. 월간 《감귤과 농업정보》발행인(2001~2006), 월간 《시조갤러리》(2008~2018) 발행인. 한국작가회의 회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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