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37) 집게도 집을 짓고 산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게들레기 : 바닷가에 사는 집게
* 짓나 : 짓는다

거듭 놀라운 게 남이 살던 집을 제 집으로 횔용한 그 지혜다. / 사진=픽사베이<br>
거듭 놀라운 게 남이 살던 집을 제 집으로 횔용한 그 지혜다. / 사진=픽사베이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게. 기척이 나면 화르르 구멍을 찾아 홰달음질을 한다. 여간 약삭빠른 놈이 아니다.

한데 이 녀석이 제법 제 구실을 하는 것으로 이 화중(話中)에 올랐다. 살아있는 것들에게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이 의식주이다.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세 가지이다. 그런다고 다 갖출 수 있으랴. 살아가는 형편이 각양각색이 아닌가. 그중에도 사는 집이 없는 것처럼 궁상맞은 것이 없다.

제대로 핵심을 짚었다. 

집게란 놈이 몸뚱이에 집을 올리고 있다니. 그것 참 놀랍고 신기한 일이 아닌가. 그것도 실은 제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다. 고동이 등에 짊어지고 다니던 것이다. 단단하니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도 있다. 몸이 들어가 살고 자기 몸을 보호하고, 이런 안성맞춤인 게 또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그 녀석, 사람이 눈에 띄었다 하면 삽시에 오물락(순식간에 숨어 버리는 모습) 안으로 기어든다. 껍질 단단한 짐이 한 구실 톡톡히 하지 않는가.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남이 살던 집에 들어가 주인 행세를 하는 적응 능력의 귀재다. 거듭 놀라운 게 남이 살던 집을 제 집으로 횔용한 그 지혜다.

‘한낱 게들레기도 집이 있어 버젓이 행세하거늘 하물며 사람임에랴’라며, 손가락질하는 화자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다.

이러하거늘, 당연히 있어야 할 집 한 채 없고서 어디 가서 사람 행세를 할 것인가. 바로 그 점을 혹독히 나무라고 있다. 차마 낯을 들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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