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실 전 제주시장

요즘 제주 사회는 찌는듯한 폭염만큼이나 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이런저런 논란으로 시중이 뜨겁다.

특히, 도민사회에 공감대를 확대한다는 차원에서 도민들의 의견 청취를 위해 여기저기서 경청회를 개최하고 있고 필자 역시 어떤 이유로 행정체제 개편을 하려는 지 의문이 있어서 참석한 바 있다. 그런데 경청회는 도민들이 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깊은 식견이 있는 것을 전제로 왜 행정체제 개편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배경 설명도 없이 기초자치제의 부활과 관련한 3가지 안건과, 지금 시행하고 있는 시장임명제와 관련하여 보완하는 방안 3가지 안건을 설명하고 도민의 의견을 청취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이 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도민공감대를 형성시키려고 용역을 주관하고 있는 분들께서 상당히 성의가 없는 수준에서 이 일을 진행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이 문제가 비용만 들고 문제점만 파생했을 때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그들은 도민의 의견을 물어서 (안)을 선택했다고 책임을 도민에게 미루겠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이미 16년 전에 제주도가 국제자유도시라는 미래비전을 실현시키겠다는 의지를 도민 투표를 거쳐서 채택하고 있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시장임명제에 대한 영향 평가나 특별자치도에 이 제도를 개선해야 할 이유 등에 대한 소상한 설명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필자의 기우일 수도 있지만 많은 전문 학자들 사이에서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행정체제에 대해서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하는 사례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다음 5가지 측면에 대한 설명이 전제되고 우리의 미래 방향을 제시하면서 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

첫째, 우리 삶을 둘러싼 환경 변화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도전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분석과 설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보자,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정보통신 기술 그리고 사람의 능력과 비슷해지는 AI기능, 빅데이터 기술혁신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그리고 인구 절벽시대에 접어들어서 인구가 감소하고 생산 능력이 급격하게 쇠퇴한다면 우리는 행정체제를 운영하는 비용 분담만하고 있을 것인가?

창의적인 경영보다는 점차 관리 기능에 집중해가는 행정 기능의 혁신은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둘째, 우리 도민들은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같은 유형의 국제자유도시의 미래를 기대하면서 행정체제의 개편에 주민투표로서 참여했다. 그 이후 지방분권에 적극적이던 노무현 정부도 바뀌었고 당시 이 일을 추진했던 도지사나 관련 공직자들은 물론 뜻있는 많은 인사들이 현직에서 물러나며 다음 지도자들에게 그 뜻이 이어지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당초에 열정이나 애정은 많은 부분 희미한 추억이 되는 듯싶다. 그렇다 해도 앞으로 50년,100년을 바라보는 안목에서 매년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성과 그리고 보완할 점은 무엇인지 분석하고 도민들에게 소상히 알려주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행정체제 방향도 물색해 나감이 마땅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세 번째, 얼마 전 국회에서는 지방분권이라는 큰 주제 앞에 헌법 개정이 이루어지면 특별자치 제도 정신을 함축해야 한다는 의미의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어쩌면 앞으로 몇 년 이내에 헌법 개정이란 새로운 변혁의 시대를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면 헌법에 따라 지방자치법이 바뀌고 그에 따른 행정체제가 형성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이 문제를 먼저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 용역을 맡고 있는 학자 한 분은 민주성이 강화되어야 함을 지적하기도 하는데 다층제가 민주성을 담보한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도의회를 대폭 강화시켰던 점을 상고해볼 필요도 있다.

네 번째, 지방분권 지방자치는 국가 단위에서 하위 단위일 수밖에 없다. 단, 민주정신에 입각해서 지방자치제도를 통해 우리의 삶은 우리가 챙기도록 하는 원칙 하에 지방에 정치적 리더들을 우리 도민들이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 수준의 삶은 국방이나 외교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지원과 협력이 없이는 불가능해진다.

돌이켜보면 우리 제주도에 각별했던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역대 이런 대통령이 있었기에 제주의 오늘날과 같은 발전의 기반을 다져 놓을 수 있었다고 본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제주특별자치도 구상은 순풍에 돛을 단듯 했지만 그 이후에 중앙정부의 지원이나 자구적인 노력은 탁월한 수준이 아니었다고 필자는 돌아보고 있다.

5000여건에 달하는 중앙의 권한을 이양받기 위해서 말단 공무원에서 도지사까지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이제 그 권한들이 도민들을 위해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영향평가를 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도 않고 무작정 행정체제 개편을 단행해서 중앙과의 약속을 무산시켰을 때 올 수 있는 다양한 손실에 대한 이야기는 설명이 필요한 것이다.

다섯째, 오늘날 행정체제 개편이 중요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 미래를 담보할 비전을 강화하고 그 비전 실현을 위한 어떤 시스템이 우선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지금 시점에서 국제자유도시는 완성된 것인지, 실패한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그리고 행정체제 개편만 하면 될 것인가. 인구는 줄어들고 관광객도 점차 감소하고, 1차 산업에 대한 경쟁력도 점차 힘을 잃고 있다면 이런 문제들부터 미래를 지향하는 관점에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모두가 필자의 기우일 수도 있다.

행정체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분들 입장에서 보면 불필요한 걱정이라고 일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이상 과거 암흑의 시대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상당한 지혜가 있어서 옳고 그름을 상정해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그런 의미에서 우선필자가 제기한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한 소상한 설명이 전제가 되어야 하고, 그 이후에 행정체제 개편 문제에 대한 의견 청취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럽에 있는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바로셀로나 도시는 아무것도 없는 도시였다. 그러나 가우디라는 건축가 한 사람이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건축물을 지난 140여년에 걸처 지어지면서 유럽 제일의 인문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통해 역사 부흥을 진전시켰다는 사례는 빈약하다.

중세 르네상스는 이탈이라 피렌체에 메디치 금융 가문에서 싹이 터서 세계에 문화역사 조류를 바꾸었다.

우리에게는 국제자유도시라는 도화지에 어떤 창조적인 역사, 인문자원을 채워 넣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 우리의 과제가 아닌가 싶다.

역사는 누구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강물이 흐르듯 이어지면서 초석을 다질 때 든든한 미래는 현실이 되고 우리의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고경실 전 제주시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고경실 전 제주시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필자는 도민들에게 지혜롭고 현명한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보지만 소상한 정보와 당위성 그리고 역사 앞에 공정하고 투명한 자세로 임할 때 더 많은 도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한때 임명직 시장을 지냈던 필자는 생각한다. 과연 권한은 무엇을 위해 필요한 것인가? 시민과 도민의 행복을 위해 헌신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면 어떠한 제도보다는 행정을 맡고 있는 분들의 진정한 봉사 자세가 더 필요한 것은 아닌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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