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80) 관용에 관한 편지, 존 로크(공진성 역), 책세상, 2021

/ 사진=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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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에 대한 논의는 서구 종교전쟁의 시대에 대거 등장했다. 이때 써진 책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텍스트는 로크(John Locke, 1632-1705)의 ‘관용에 관한 편지’다. 존 로크는 오늘날에는 다른 맥락에서 여전히 중요성을 지니는 ‘관용’을 그 당시 가장 험악한 종교분쟁의 시대적 배경에서 ‘편지’라는 형식으로 담아냈다. 

로크는 관용이야말로 참된 교회를 구별하는 가장 분명한 기준이라고 보았다. 종교를 핑계 삼아 다른 사람을 박해하고, 고문하여 사지를 절단하고, 재산을 약탈하고, 죽이는 자들에게, 그들이 정말 그 일을 우호적이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행하는지 그들의 양심에 물었다.  

로크는 종교적인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관용하는 것이 복음과 이성에 일치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들을 박해하고 잔혹하게 대하는 것을 공화국에 대한 걱정과 법의 준수로 미화해서는 안 되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에 관한 것과 종교에 관한 것을 구분할 것을 제안했다.  

국가와 종교의 분리

로크는 ‘관용에 관한 편지’에서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국가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했다. 국가에 관한 것과 종교에 관한 것은 구분되어야 하고, 교회와 공화국 사이의 경계는 제대로 정해져야 한다. 세속 권력의 모든 권리와 지배는 세속적 재산의 보호와 증진에 국한되며, 영혼의 구원에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확장해서는 안 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성직자들은 평화롭고 겸손하게 영혼의 구원에 전념해야 한다. 교회와 공화국이 각자의 경계 안에 머문다면, 교회는 영혼의 구원에 몰두하고 공화국은 현세적 재산의 보호에 집중한다면, 양자 간의 부조화는 존재할 수 없다. 이처럼 로크는 교회와 공화국이 다루는 영역이 다르며,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교와 정치가 결탁하여 타종교를 탄압하고 핍박하는 종교전쟁의 시대에 로크는 종교와 정치를 분리시켜 타종교도 함께 공존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자 했다. 타종교에 대한 불관용을 넘어 탄압과 전쟁까지 정당화됐던 그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매우 급진적인 주장이었다. 

관용의 의무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종교 진리가 상대방의 종교를 탄압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종교전쟁의 현실이 로크와 볼테르 등 사상가들이 관용에 대해 설파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로크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다음 문장에 담겨 있다.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생겨난 종교에 관한 대부분의 소송과 전쟁을 (실제로) 만들어낸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인 의견의 다양함이 아니라, (얼마든지) 허용될 수 있는 것인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관용의 부정입니다. 
- ‘관용에 관한 편지’ 중에서

또 다른 ‘관용론’의 저자 볼테르(Voltaire, 1694-1778)는 그의 책 ‘관용론’(볼테르 지음, 송기형·임미경 역, 한길사, 2001)에서 관용은 절대 전란을 초래한 적이 없고, 종교의 시대에 불관용이 파괴와 살육을 일으켰음을 책 전체에 걸쳐 상세하게 언급했다. 볼테르의 ‘관용론’은 1762년에 일어난 ‘칼라스 사건’을 계기로 쓰였는데, 여기서 볼테르는 중세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불관용을 고대 그리스, 로마, 유대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기초한 관용과 비교하면서 비판했다. 볼테르는 불관용은 자연법일 수 없으며, 종교의 자유는 위험한 것이 아님을 설파했다. 

관용의 의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으로, 로크는 교회의 법에 반하여 죄를 범한 사람에게 관용의 이름으로 품어 안아야 할 의무는 없다고 하면서도, 쫓겨나는 사람의 신체나 재산에 그 어떤 방식으로든 상처를 입히거나 아프게 하는 말과 폭력적 행동이 출교 결정에 덧붙여지지 않기를 요청했다.  

자신의 종교와 예배 방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가 누리는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엄숙하게 보존하며, 그리스도교도이건 이교도이건 모든 무력과 불의로부터 보호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교회들 가운데 어느 한 교회가 종교에 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이 정통 교회에 (정통이 아닌) 다른 교회를 파괴할 권력을 주지 않는다고 보았다. 자신의 것을 가지고서 무엇이 자신에게 적합한지를 고려하고 그 판단에 따라서 최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각자의 소관이기 때문이다. (이상 ‘관용에 관한 편지’ 문장을 인용함) 

신앙의 자유

로크는 자신의 구원에 관해서는 각자에게 최고이자 최종적인 판단이 있다고 보았다. 결론에서 로크는 이교도는 물론 이슬람교도나 유대교도 역시 종교적인 이유로 공화국으로부터 배제되어서는 안 되며, 다른 시민들에게 허락된 권리를 소수 종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허락할 것을 요청한다. 하나님을 로마 가톨릭 방식으로 섬기는 것이 허락된다면, 제네바(칼뱅주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 역시 허락하자고 주장했다. 지금은 당연하게 인정되는 것이지만, 종교전쟁 당시에는 타종교에 대한 신앙의 자유는 금지된 것이었다.   

종교가 공동의 것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것이기도 한 점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유대교 공동체에서 파문당한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1632-1677)도 종교 공동체에 의한 정치 질서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정치질서를 꿈꿨고, 이는 관용의 원리에 입각한 근대적인 통찰이었다. (참고로 스피노자와 로크, 또 한 명의 사상가 푸펜도르프는 모두 1632년생이다.)

근대 이전에는 인간의 존엄에 기초하여 모든 인간에게 평등한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천부인권의 사상은 찾을 수 없었다. 근대에 이르러야 ‘인간의 존엄’ 사상이 비로소 등장했다. 하지만 ‘천부인권’의 사상은 현실에서 즉시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현실에서 하나하나 시민권으로 쟁취되어야 했다. 대표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그렇다. 

‘그의 지역에 그의 종교’라는 원칙을 적용해 가톨릭과 루터파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제후에게 부여한 1555년 아우구스부르크 평화조약은 가톨릭 외에 루터파를 공인함으로써 관용의 역사에서 한발을 내딛었다. 여전히 박해의 대상이던 칼뱅파는 30년 전쟁 이후에야 공인되었고,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가톨릭, 루터파, 칼뱅파가 공존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그럼에도 현실은 여전히 암담했다. 프랑스에서는 1589년 낭트칙령으로 칼뱅파에게 예배의 자유가 부여됐지만, 이후 1685년 낭트칙령은 폐기되고 퐁텐블로칙령에 의해 가톨릭 이외의 종교가 금지되었다. 낭트칙령의 폐지는 로크가 ‘관용에 관한 편지’를 쓰게 되는 계기가 된다.  

종교가 군주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다가 이후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변화되면서 차츰 개인의 자연권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나마도 개인이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약자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강자의 관용이 필요했다. 강자가 인정하지 않으면 개인은 권리를 쟁취해 내야 했다. 강자가 약자의 자연권을 인정하지 않거나 이를 관용하지 않으면 이나마도 지켜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약자의 투쟁이 요구되었다. 시민권의 역사는 약자의 투쟁에 의해 성취되는 자연권의 역사였다. 

나가며  

오늘날 관용의 주된 무대는 종교의 문제에서 정체성의 문제로 옮겨졌다. 종교는 관용의 대상이 아니라 개인의 기본권이 되었고, 종교적 관용은 자유주의 질서의 기본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오늘날 관용 담론은 예전과는 다른 차원에서 제기된다. 

한 사회의 주류 문화와 다른 정체성을 띤 문화가 공존해야 하는 다문화 사회로 변모했다. ‘종교사회에서의 관용’이 ‘다문화사회의 관용’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민과 노동자 이주에 따라 이민자와 이주자의 종교가 부각되지만, 이는 오늘날 종교나 믿음의 문제보다 ‘통합과 정체성(Integration and Identity)’의 문제로 다뤄진다. 

절대주의 시대에서 상대주의 시대로, 동질성에 기초한 사회에서 이질성에 기초한 사회로 변모하면서 관용이 실질적으로 행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관용이 행해지지 않고, 불관용이 혐오와 증오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목도한다. 

필자는 로크의 ‘관용에 관한 편지’를 현대의 관점에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당연시되는 ‘국가와 종교의 분리’와 ‘신앙의 자유’를 다루고 있어 현 시대를 다루는 흥미진진함은 떨어지지만, 오늘날 문제되는 사안에 적용한다면 재해석될 여지는 충분하다.


#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려대 법학과 졸업,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법학박사.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철학/법사회학 전공).

블로그: blog.naver.com/gojuraph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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