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기후위기, 플라스틱, 방사능...세대 간 분배정의 우선돼야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인디언의 한 부족은 약초를 캘 때 처음 발견하는 일곱 개는 손대지 않았다고 한다. 계속 번성하여 7세대 후손들도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 사진=픽사베이
인디언의 한 부족은 약초를 캘 때 처음 발견하는 일곱 개는 손대지 않았다고 한다. 계속 번성하여 7세대 후손들도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 사진=픽사베이

매년 이맘때가 되면 연일 폭염과 폭우 경보가 발령되고, 해마다 그 기록이 경신되고 있다.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우리는 기록적인 폭우로 수많은 생명을 잃었고, 우리나라 전역에서 밤에도 30℃를 웃도는 초열대야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 해안 바닷물 온도가 체온보다 높은 38℃를 넘어섰고, 남극에선 눈보라 쳐야 할 겨울에 비가 내리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27일 “지구온난화 시대는 끝나고, 지구열대화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선언했다. 이제 기후변화와 기후위기를 넘어서 기후재앙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

최근 덴마크 연구팀에 따르면, 극지방 얼음이 녹으면서 지구의 기후와 해양생태계를 조절하던 해수순환이 붕괴될 위기에 있다. 연구팀은 현재 온실가스 배출 계획대로라면, 해수순환이 2039~2070년에 붕괴할 가능성이 매우 크고, 빠르면 2025년에 붕괴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표에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전문가들은 해수순환이 멈추는 시점이 빠르게 앞당겨지고 있다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해수순환이 멈추게 되면, 영화 <투모로우>처럼 급속한 빙하기로 접어들어 인류생존 자체가 어려워진다. 

또 다른 우울한 이야기도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인류가 지금까지 생산한 플라스틱 양은 83억 톤에 이르고, 지금도 매년 3억8000만 톤이 생산되고 있다. 미세 플라스틱은 우리가 매일 쓰는 치약, 화장품, 물티슈, 티백 등에 들어 있고, 비닐, 페트병, 스티로폼, 합성섬유 같은 플라스틱 제품이 햇볕과 바람과 물에 잘게 부서지면서 생겨난다. 미세 플라스틱은 동식물의 생체에서뿐만 아니라 높은 산과 깊은 바다에 이르기까지 지구상 모든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미세 플라스틱은 인간에게 호흡기와 심혈관 질환을 유발하고, 호르몬 작용과 생식기능에 문제를 일으키며, DNA를 손상하거나 암을 초래할 수도 있다.

방사능은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원전이 저렴한 에너지원이라 하지만, 방사능폐기물 대책이 근본적으로 없다 보니, 원전 가동 과정에서 생겨난 방사능 오염물질을 처리하려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리고 원전 사고라도 나는 날이면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원전은 현 세대가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서 미래세대에게 불행을 떠넘기는 것이나 다름없는 정책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생겨나는 방사능 오염수 134만톤을 30년간 바다에 버리겠다고 한다. 자신들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이웃나라는 물론 미래세대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참으로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 즉 손주를 본 인간과 손주를 보지 못한 인간이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손주가 있는 이들 가운데 십중팔구는 그 말에 수긍한다. 그리고 그들은 손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다고 한다. 피붙이에 대한 본능이 그만큼 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는 그러한 본능을 누르는 특이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젊은이들이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겠다는 것이다. 2022년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국가단위 출산율이 0.7명대로 진입하였다. 우리는 지방 소멸을 걱정하는데, 외국에서는 대한민국이 소멸하는 게 아니냐고 걱정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얼마나 살기에 팍팍하면 그런 선택을 하는지 기성세대는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미래세대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다. 특히 기후재앙,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는 미래세대에게 너무나 많은 고통을 안겨줄 것이 분명하다. 미래세대가 겪게 될 고통은 지금 우리가 겪는 고통과는 비교가 안 될 것이다. 이들 문제가 개인으로서도 어찌할 수 없고, 국가나 지방정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다고 손을 놓아서는 안 될 일이다. 

지금 경제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오천년 우리 역사에서 이 시대가 가장 풍요로운 시대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미래세대의 안녕을 위해 힘쓸 수 있는 여력을 가진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우리는 미래세대를 위해 기후재앙,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를 막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지방정부나 국가는 미래세대에 고통과 불행을 떠넘기는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당장 이익을 위해 미래세대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것은 세대 간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우리가 미래세대를 볼 수 없기에 그들을 배려하지 않겠다는 것은 지극히 유아론(唯我論)적 사고이다. 미래세대도 현세대와 마찬가지로 고통과 불행을 피하고, 즐거움과 행복을 추구하며, 쾌적한 환경에서 살기를 원한다. 그들도 살아가려면 오염되지 않은 물과 공기가 필요하며, 극단적 추위나 더위에 노출되어서는 안 되고, 유해물질과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미래세대도 현세대와 함께하는 도덕 공동체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보전이냐 개발이냐 하는 현안들을 미래세대도 배려하며 풀어야 하고 세대 간 정의의 차원에서 결정해야 한다. 현세대 행복을 위해서 미래세대에게 고통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어떤 정책이 우리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더라도 미래세대에 엄청난 고통을 안겨줄 게 확실하다면, 그것은 세대 간 분배정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어떤 정책이 미래세대가 살아갈 환경을 심각하게 악화시킬 것이 예상된다면 시행해서는 안 된다.

인디언의 한 부족은 약초를 캘 때 처음 발견하는 일곱 개는 손대지 않았다고 한다. 계속 번성하여 7세대 후손들도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오늘날 7세대 앞을 내다보면서 자원을 보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미래세대에 극심한 고통을 가져올 일을 멈춰야 한다. 우리에게 미래세대가 살아갈 환경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여력이 있다면, 그러한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된다. 우리가 그러한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미래세대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 윤용택 논설위원, 제주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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