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창작오페라 ‘순이삼촌’

오페라 순이삼촌이 4.3 대표작이 되면 안되는 이유

제주, 경기, 서울, 그리고 올해 부산까지. 2020년 제주에서 첫 선을 보인 창작 오페라 ‘순이삼촌’은 “국내 창작 오페라 가운데 가장 많이 재공연한 작품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전국 곳곳의 관객과 만나고 있다.

“오페라 ‘순이삼촌’은 오페라 특유의 힘으로 4.3사건에 대한 기억과 반성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작품”
- 음악평론가 이민희

“창작 오페라에 대한 오해를 일소하고 군더더기 없는 음악으로 초보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법을 구사했다.”
- 음악평론가 김종섭

오페라 ‘순이삼촌’에 대한 평가는 각종 매체와 예술인들을 통해 수 없이 오르내렸다. 많은 호평과 찬사가 이어졌지만, 작품을 제주 예술계의 현실과 4.3 예술의 흐름과 맞물려 바라보는 시도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올해 오페라 ‘순이삼촌’은 제주아트센터가 4억5000만원, 4.3평화재단이 1억3000만원을 제작비로 투입했다. 제주, 부산에서 총 3회 공연에 5억8000만원. 2020년 초연부터 두 기관은 예산을 점차 늘려왔다.

그런데 주목할 지점은 제주아트센터의 올해 기획공연 예산이 4억5000만원이다. ‘순이삼촌’까지 포함하면 총 9억원. 제주아트센터는 공공·민간을 포함해 제주에서 가장 큰 공연장이다. 그곳에서 한 해 동안 자체 기획하는데 사용할 예산이 한 작품에 쓰이는 셈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1994년 ‘제1회 제주4.3예술제’에서 태동하면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4.3전야제, 올해로 30년째 이어오면서 전국 작가들이 참여하는 4.3미술제 등 제주에서 열리는 모든 4.3 예술 행사들을 하나씩 살펴봐도 예산은 오페라 ‘순이삼촌’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물론, 단순히 지원액으로만 따지는 건 액수를 최우선으로 평가하는 ‘자본적’ 판단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오페라가 종합 예술로서 필연적으로 많은 비용이 수반된다는 이유도 뒤따를 수 있다. 그럼에도 오페라 ‘순이삼촌’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원작 소설을 발표한 45년 전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4.3에 대해서도 다방면으로 문화적 재현작업이 이루어져왔다. 사실적 재현도 있었고, 상징적 재현도 있었다. 사건 자체를 재현시켜보려는 노력도 있었고, 그것에 관한 개인적 심상이나 사회적 기억을 투영시키는 방식의 재현도 있었다. 주로 문학·미술분야에서의 개인적 재현행위들이 적지 않았지만, 1990년대 와서는 집단적, 조직적인 재현활동이 대종을 이루었다.”
- ‘기억 투쟁과 문화운동의 전개’(2004, 공저) 가운데 김영범

1978년 등장한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삼촌’은 분출되는 4.3 진상규명 요구가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막힌 시대 상황 속에서 뚫고 나온 작품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4.3을 기억하는 예술 창작도 4.3의 과제와 시대 변화에 발맞추기 시작했다. 

삶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오늘 날 청년들에게 경종을 울리고(연극 ‘4통3반 복층사건’), 뮤지션들의 독창적인 감각으로 옛 노래를 재해석하며(앨범 ‘산 들 바다의 노래’), 오키나와·대만·강정·미얀마까지 다른 시공간의 비슷한 아픔과 연대하려 노력했으며(4.3미술제), 그때 제주 청년들은 어떤 꿈을 꾸었고, 왜 산에 오를 수밖에 없었는지(뮤지컬 ‘사월’) 등 많은 예술이 오늘의 시선으로 4.3을 바라보며 ‘비참한 희생’ 이상의 가치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또 노력하고 있다.

“당시 희생자들을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렁이’로, 그저 영문도 모른 채 ‘무고하게 희생당한’ 불쌍한 피해자로만 바라보는 것은 오히려 4.3의 의미를 축소하는 일”
- ‘4·3, 19470301-19540921 - 기나긴 침묵 밖으로’(2023, 허호준) 가운데

‘순이삼촌’의 저자 현기영도 “나의 마지막 4.3 작품”으로서 최근 발표한 장편 소설 ‘제주도우다’(2023)를 통해 4.3의 항쟁성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이렇게 4.3 예술이 조금씩 4.3의 의의를 넓히고 있는데, 오페라 ‘순이삼촌’은 과거에 머무른 시선이라는 비판을 받기 마련이다. 작품 안에서도 이러한 ‘머무름’은 여실히 드러난다. 가사처럼 “무고한 죽음”과 “필요한 죽음”이라는 시선만이 존재할 뿐이다. “망각을 일깨운 콘텐츠”라는 찬사가 육지에서 나오지만, 정작 4.3의 역사가 서린 제주에서 온도차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런 배경에 근거한다. 

앞서 언급했듯 제주 예술계에 뿌려지는 한정적인 공공 지원 여건에 비춰본다면,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19일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린 4.3 창작 오페라 '순이삼촌' 무대 인사 모습.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19일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린 4.3 창작 오페라 '순이삼촌' 무대 인사 모습.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오페라 순이삼촌이 계속 관객과 만나야 하는 이유

“어머니,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이렇게 무대에서 보니 너무 마음이 아프고 눈물도 났다. 보고 나니 더욱 (4.3에 대해) 공감이 간다”
- 제주 구좌읍 하도리 출신 강순덕(부산 영도구, 1954년생)

“17살에 부산으로 와서 지금까지 살았는데, 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로부터 4.3에 대해 많이 들었다. 오페라 ‘순이삼촌’을 너무나 감명 깊게 봤다. 제주가 고향인 사람이라면 한 번은 꼭 볼 만한 작품이다.”
- 제주 한경면 고산리 출신 김순자(부산 영도구, 1957년생)

19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오페라 ‘순이삼촌’의 막이 내리자, 1417석 좌석을 꽉 채운 관객들은 박수갈채를 아낌없이 쏟아냈다. 이번 부산 공연은 경기아트센터(2021), 서울 세종문화회관(2022)처럼 티켓이 조기 매진될 만큼 많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부산 공연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부산 지역의 연주자들과 협업하는 시도에 나섰기 때문이다. 부산시립청소년교향악단과 부산시립소년소녀합창단은 오페라 ‘순이삼촌’에서 연주를 맡았다. 뿐만 아니라 전·현직 부산시립합창단원들로 구성된 부산오페라합창단까지 함께 했다.

부산문예회관 관계자는 “부산 공연팀의 ‘순이삼촌’ 연습은 공연 전 2달 전부터 개인 연습, 1달 전 부터는 단체 연습으로 진행했다. 연습 전 소책자 ‘4.3이 머우꽈?’를 전체 출연진에게 배포하면서 4.3에 대해 기본적으로 이해를 하고 작품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타 지역 오페라 작품을 부산 시립 예술단원들이 출연해 제작하는 경우는 ‘순이삼촌’이 처음”이라면서 “정치적인 잣대가 아닌 예술성과 작품성, 그리고 누구나 공감할 아픈 역사라는 점에 주목했다”고 강조했다.

부산시립청소년교향악단 호른 연주자 김성민(23)은 “제주4.3을 이야기로만 들어봤지 지금까지 자세한 내용은 몰랐다. 오페라를 준비하면서 이전 보다 조금 더 깊이 알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면서 “이런 사건이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느꼈다”고 참여 소감을 밝혔다.

오페라 ‘순이삼촌’ 부산 공연에는 부산 시민, 바다 건너온 제주도민 뿐만 아니라 특별한 인사들도 함께 했다. 주한멕시코대사, 주한나이지리아대사, 주한볼리비아대사 대리 등 해외 인사들도 초청해 공연을 관람했다.

하루에 1만명 이상 제주를 찾는 관광객 가운데 ‘제주4.3’을 얼마나 알까? 4.3 희생자의 숫자를 얼마나 알까? 자신들을 태운 비행기가 내린 활주로 아스팔트 아래 제주 사람들이 묻혀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알까.

오페라 ‘순이삼촌’의 작곡가 최정훈은 “이 작품은 4.3을 알리는데 목적을 두고 만들어졌다”고 강조한다. 제주 안에서는 ‘언제 나온 순이삼촌이야’라고 힐난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4.3을 접하지 못하고, 4.3의 피해를 모르고 있는 상황은 분명한 현실이다. 때마다 4월이면 4.3을 만나는 섬 안에서는 이런 사실을 자칫 간과하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오페라 '순이삼촌' 시작 전, 부산문화회관 로비에 설치된 4.3 홍보 자료를 관객들이 살펴보고 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오페라 '순이삼촌' 시작 전, 부산문화회관 로비에 설치된 4.3 홍보 자료를 관객들이 살펴보고 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음악으로, 군인과 주민들로 분한 배우들의 연기로, 드로잉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자막으로, 회화로, 시(詩)로, 북촌 너븐숭이 학살 명단까지. 오페라 ‘순이삼촌’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난을 전달하는데 집중한다. 그렇기에 때로는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4.3을 말하는데 빠뜨릴 수 없는 희생을 깊이 있게 보여준다.

오페라 ‘순이삼촌’은 음악, 연극, 춤, 소리, 퍼포먼스 등 공연 예술로 표현되는 여러 장르를 한데 모으면서, ‘오페라’를 낯설게 느낄 관객의 문턱을 낮췄다. 2020년부터 4년째 공연을 이어오면서 완성도를 채운 노력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공연 후반 등장하는 안무는, 보다 자유로운 창작으로 새롭게 구성해야 할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오페라 ‘순이삼촌’이 지금까지 올 수 있던 가장 큰 동력 가운데 하나는 성악가 강혜명이다. 부산 공연도 강혜명이 올해 1월 부산문화회관을 찾아 정식 면담으로 협업을 제안했고, 부산문화회관 이정필 대표이사 등이 제주 공연을 직접 관람한 뒤 부산 공연을 확정지었다. 해외 대사 초청 역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때로는 지나친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존재하나, ‘순이삼촌’에 대한 진심어린 태도는 인정해야 마땅하다. 

문학적으로는 큰 성과를 인정받았으나, 공연 장르로의 변환은 시행착오를 벗어나지 못한 소설 ‘순이삼촌’과 원작자의 명예-존경을 세우는 측면에서도 오페라 ‘순이삼촌’은 나름 존재감을 가진다.

고희범 4.3평화재단 이사장은 부산 공연이 끝나고 열린 내빈 초청 리셉션에서, “오페라 ‘순이삼촌’을 내년에도 다른 지역에서 공연하고, 내후년에는 일본에서 공연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여전히 많은 재일제주인들이 4.3을 기억하고 있기에, 일본 공연은 시도할 만 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오페라 ‘순이삼촌’의 미래는 밝다고만 볼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예산 문제로 인해 제주시는 내년 ‘순이삼촌’에서 사실상 손을 뗄 방침이다. 규모와 상징성을 고려할 때 제주시가 아닌 제주도(혹은 제주도문예회관)가 주최하는 방법 등 여러 의견이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명확한 대안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오페라 ‘순이삼촌’이 4.3 대표작이 되면 안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아직 4.3은 발굴해야 할 가치가 많이 남아있다. 4.3에 대한 방향이 피해, 희생에만 머무를 순 없다. 

그럼에도 오페라 ‘순이삼촌’이 관객과 계속 만나야 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대중성·인지도·예술성 등을 골고루 갖추면서, 4.3을 모르는 많은 이들에게 4.3을 알리는 선봉장으로서 가치는 충분하다.  

오페라 ‘순이삼촌’이 제주 안과 밖 모두에게 박수를 받으며 인정받는 작품으로 이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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