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81) 박일환, ‘귀를 접다’, 청색종이, 2023.

박일환, ‘귀를 접다’, 청색종이, 2023. / 사진=교보문고
박일환, ‘귀를 접다’, 청색종이, 2023. / 사진=교보문고

1.
흔히들 시집 맨앞에 자리한 ‘시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심드렁히 여기고는 곧바로 시집의 시편들을 읽지만, 어떤 시집을 읽다보면 ‘시인의 말’에 자꾸만 시선이 붙잡힐 때가 간혹 있다. 내 경우 박일환의 시집 『귀를 접다』가 여기에 속한다. 

젊어서는 커다란 바윗덩어리를 굴리려고 했다/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돌아보니/겨우 옆으로 살짝 밀어놨을 뿐이다
— 「시인의 말」 중에서

‘시인의 말’이 한 편의 시라 해도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이 말이 딱히 시인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지금‑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그것이 지닌 삶의 성찰로 다가온다. 각자 자신의 인생 길에서 자신이 깜냥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바윗덩어리를 굴리려고” 안간힘을 쏟아부었으나 “돌아보니/겨우 옆으로 살짝 밀어놨을 뿐” 바윗덩어리의 위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인의 시적 성찰은 쉼 없이 벼려지고 있는 게 아닐까. 이 무모한 행위를 시인은, 아니 우리는 무엇 때문에 하고 있는 것인지, ‘겨우’라는 부사가 최근 이토록 시리게 저며들어온 적이 없다. 

2.
『귀를 접다』의 첫 시는 매우 강렬한 심상을 보인다.

지금, 피 묻은 칼날을 자기 혀로 핥고 있는 늑대는 누굴까? 피 묻은 칼을 꽂아두고 간 자는 언제나 보이지 않고, 피의 향내가 주는 유혹은 강렬해서 자기도 모르게 긴 혓바닥을 내밀곤 하지 탐욕스러운 혓바닥부터 뽑아버려야 하는데 그럴 수 있어? 낄낄거리며 조롱하는 소리 환청처럼 들려오는 동안에도 칼날 곁을 떠나지 못하는 혓바닥의 저 성실한 노동이라니!
― 「늑대와 칼」 부분

에스키모의 늑대 사냥법을 시인은 비관주의적 풍자로 성찰한다. 에스키모는 늑대를 사냥하기 위해 피 묻은 칼을 거꾸로 땅에 꽂아놓는다고 한다. 그러면 피 냄새를 맡은 늑대는 그 칼을 자신의 혀로 핥는다. 이제 칼날에 묻은 피는 더욱 검붉은 점액질의 싱싱한 피로 변하듯, 슴벅슴벅 베인 늑대의 혓바닥에서 흘러내리는 자신의 피맛에 취한 채 늑대의 생목숨은 서서히 꺼져들어갈 터이다. 그 강렬하고 황홀한 피의 향내와 맛에 중독된 채 늑대의 삶은 죽음으로 이행한다. 시인은 이 늑대의 죽음을 “칼날 곁을 떠나지 못하는 혓바닥의 저 성실한 노동”으로 인식한다. 기실, 이것은 우리의 삶과 다를 바 없다. 자본주의적 근대의 악무한의 삶은 어쩌면 늑대의 이러한 자기소멸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비유컨대, 자본주의적 근대가 맹신하는 경제지상주의의 칼에 우리의 혀는 속절없이 베이고 또 베이는 그 악순환의 과정을 ‘성실한 노동’으로 자위하는 동안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산죽음’이란 모순형용적 존재의 삶을 우리는 ‘겨우’ 살고 있다. 따라서 시인에게 에스키모의 늑대 사냥은 흡사 우리의 ‘산죽음’의 적나라한 모습에 대한 비관주의적 풍자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까지 ‘산죽음’의 “저 성실한 노동”을 지속해야 하는가.
여기서, 시인의 비관주의적 풍자가 비판적 성찰을 수행하는 것임을 강조해두고 싶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조선소 하청노동자의 항변은/공중을 선회하는 경찰 헬리콥터 소리에 묻혔다//자본과 국가의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파업을 푼 뒤/동료들이 철장 속 사내를 꺼내주었다//뒤이어 47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가 날아드는 걸/다른 철장 안에 갇힌 노란봉투법이 보고 있었다//혼자 힘으로는 걸어 나올 수 없는/노란봉투법은 누가 꺼내줄 것인가?
―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부분

21세기의 노동현실은 신자유주의 정치경제 논리를 기반으로 한 고용시장의 노동의 유연성에 따라 중간착취의 지옥도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하청노동이다. 위 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청노동자의 항변이 어처구니없게도 “47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의 경제적 억압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조선소의 중각착취의 지옥도를 견디지 못하고 그것의 구조악(構造惡)과 행태악(行態惡)에 맞서 저항한 노동자의 진실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그것의 합리적 해결책을 강구하기는커녕 그 하청노동자가 사측의 생산활동에 방해가 되었으므로 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과연, 이 막가파식 언어도단의 노동현장의 모순을 없애기 위한 노란봉투법은 법적 실효성을 이룰 수 있을까. 따라서 하청노동자의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의 절규는 시인의 비관주의적 풍자가 수행하는 비판적 성찰의 목소리다. 이 목소리가 갖는 수행성은 한진중공업 용접공으로서 해고된 노동자 김진숙이 37년 간의 복직투쟁을 하면서 마침내 명예 복직과 퇴직에 이르는 가운데 그가 “가장 좋아하는 구호처럼/웃으면서 걷는 하루/끝까지 걷는 하루/함께 걷는 하루”(「하루」)의 실천적 힘이다.

3.
물론, 우리는 알고 있다. 그토록 염원하던 김진숙의 명예 복직과 퇴직을 목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노동현장의 예의 문제점들은 되풀이되고 있다. 그렇다고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동현실의 제반 문제점들에 대한 제도적 해결책을 강구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각종 노동의 현안에 대한 체념과 방관과 침묵으로부터 벗어나 적극적 관심을 갖고 서로의 상처와 희망을 공유하는 삶을 살고 있다. 풀의 생태가 주는 시적 깨우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의 모든 싸움은/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지지 않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는 걸/바람을 대하는 풀들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풀 내음은 비릿하면서도 싱그럽다/비애와 불굴의 의지가 섞여 있어 그렇다는 걸/당신도 언젠가는 알게 될 날이 오리라 믿는다
― 「풀밭이 장엄한 이유」 부분

시적 깨우침은 그리 거창한 게 아니라 아주 사소하면서 통념적인 것을 보란 듯이 뒤집어버리는 데 있다. 흔히들 싸움의 속성을 이기고 지는 양가성에서 찾는다. 이기지 않으면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인은 싸움의 이 양가성에서 비껴나 있는바, “지지 않기 위해서” 싸운다는 것이다. 얼핏 볼 때 싸우는 일이 지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이기는 것을 최상의 목적으로 간주하기 십상이지만, 시적 진실의 차원에서는 이기는 것보다 지지 않기 위한 것이야말로 싸움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을 두고 우리는 버티어 대든다는 사전적 의미의 ‘길항(拮抗)’에 근접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고, 이길 수 없는 대상에 대해 온힘을 내 맞서 ‘저항’한다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속절없이 패배하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 싸우는 내적 실천의 힘을 지닌 시적 주체의 수행성 그 시적 진실이다. 그리하여 시인에게 책장의 귀를 접는 행위는 독서 습관 중 하나의 행태를 넘어 “삶은 읽으면서 동시에 쓰는 거라는 걸/앞서간 이들로부터 진작 배우긴 했으나/책을 읽다 귀를 접는 건/읽는 힘이 쓰는 힘을 불러오기 때문”(「귀를 접다」)이라는, 즉 ‘읽기-쓰기’의 수행성을 실천하도록 한다. 

4.
이처럼 박일환 시인이 득의(得意)한 시적 수행성으로서의 시적 진실은 「설화」의 절창을 낳는다. 한겨울 깊고 먼 곳으로부터 천천히 내리는 눈이 애절한 그리움의 감응력을 미치는 가운데 어디로부터 무슨 곡절인지 심신에 상처가 깊게 패인 손님이 찾아오더니 그 손님은 또 다른 상처입은 자들을 기꺼이 마주하면서 그들을 신묘하게도 어루만진다. 그런데 이 한밤의 한겨울 눈 속 치유의 이야기는 지상의 아침을 맞아 더욱 경이로운 시적 수행의 노래로 우리의 삶 속 시나브로 번져간다. 우리의 상처받은 삶의 치유도 이 시적 수행으로 치유되길…….

눈은 먼 데서 온다//천천히, 천천히 온다//그래서 반가운 것이다//내가 지금 여기서 출발한다면//너에게 언제 당도할지 모르는 일//기다림의 시간을 생각하는 동안//저기 저 너머에서//먼저 채비를 마친 발걸음 있었을 것이다//손님은 먼 데서, 천천히 온다//고단한 몸으로 찾아온 손닙이//고단한 사람을 어루만져줄 줄 안다//얼비친 눈송이 하나//뒤이어 두세두세 따라오는 발걸음들//예까지 찾아오느라 애썼구나 싶어//가만히 손 내밀어보는 지상의 아침이다
― 「설화」 전문


# 고명철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세계문학, 그 너머》, 《문학의 중력》,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