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지도자의 거짓말에 관한 경고 / 김봉현 이사·논설주간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br>

국제정치학의 석학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왜 리더는 거짓말을 하는가?>라는 책에서 세계 지도자들의 거짓말을 흥미롭게 분석했다. 지도자들의 거짓말이 비난받아 마땅한 빗나간 행동인지, 아니면 유용한 국정 운영의 수단인지를 독창적으로 해석해 주목받은 책이다. 

전쟁을 더는 일으키지 않겠다고 했던 히틀러의 거짓말, 1960년대 핵 개발 프로젝트에 관한 이스라엘의 거짓말,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벌였던 소련과의 비밀 협상과 대국민 거짓말, 미국의 베트남전 전면 개입을 위한 통킹만 조작 사건, 2003년 이라크전 강행을 위한 부시 행정부의 속임수 캠페인, … 이런 사건들이 예시됐다. 

존 교수는 이 책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국가 간에 오가는 거짓말은 의외로 적고 지도자가 자국민에게 행하는 거짓말이 더 많다. 이런 거짓말의 유혹은 전체주의국가보다 민주주의국가 지도자들에게 더 많다”라고. 형식은 고백이었으나 세계 지도자들에게 보낸 ‘거짓말에 관한’ 경고다. 

분명한 것은 지도자의 거짓말은 대중들을 불편한 진실 속에 갇히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 지도자의 거짓말이라면 무게는 더 달라진다. 백성을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 시절과 대선후보 시절에 이런 류의 어록(?)을 남겼다. 국민의 선택을 받았던 가장 큰 밑천이기도 하다. 

그러나 윤정부 출범후 1년이 지난 지금, 그 밑천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반전'의 연출력은 마치 잘 만들어낸 끝장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다. 군주를 떠받들듯 윤 대통령 주변엔 온통 사람에 충성하는 이들로 들끓는다.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은 대통령실 주변에만 가면 아득해진다.

법 위에 윤(尹), 공정보다 윤(尹), 오직 사람에 충성하길 원하는 정치가 윤석열 정부의 공정과 상식의 실체라는 날 선 지적이 심상치 않다. 

여실히 드러나는 가짜 공정, 가짜 정의의 민낯이 여기에 또 있다. 스무 살 청춘이 어이없는 죽음을 맞았다. 호우 실종자 수색 중 숨진 대한민국 해병대 故 채 아무개 상병이다. 그는 폭우 실종자 수색 작전에 투입됐다가 숨졌다. 

허리 넘어 가슴팍까지 물살이 후려치는 하천에서 구명조끼도 없이 실종자를 수색하다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성과주의에 사로잡힌 '상의 적색 해병대 체육복'을 고집한 사단장의 수색복장 지침에 따라, 어린 청춘을 쌓아둔 구명조끼도 입히지 않고 급류로 떠민 결과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순직 애도 메시지에서 “정부는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유족에 약속했다. 그러나 그 지시를 적극 수명해 원인을 철저히 조사한 해병대 수사단장은 보직해임되고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됐다. 

사단장을 수사 대상에서 제외시키기 위해 법도 상식도 안중에 없는 최고 권력자의 격노와 전화 한통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는 오늘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조금은 불편한 풍경이 어제 펼쳐졌다. 내년 4월 총선에 서귀포시 선거구 출마가 유력한 고기철 전 제주경찰청장이 29일 창립한 ‘제주제2공항추진범시민포럼’의 명예대표로 추대, 정치 행보를 본격화했다. 

고 전 청장의 총선 출마가 불편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제주 제2공항은 도민이 원했던 24시간 이착륙 가능한 항공인프라 확충 모델이 아니다. 국내선 50%만 뜨고 내릴 ‘반쪽짜리’ 공항에 불과하다. 

그런 ‘제2공항 추진’을 제주도민 다수가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역적 찬성 여론에 기반한 서귀포 표심만을 업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에 당선되려는 고 전 청장의 얄팍한 선거 전략이 불편하다는 말이다. 정치신인다운 참신한 기운을 기대했었기에 불편한 마음은 더 크다. 

제주도지사 시절에 제2공항을 주도했던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2015년 11월 제주 항공 인프라확충 타당성용역 발표 직후, “제2공항은 에어시티와 연계해 24시간 운항에 문제없도록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br>

그러나 국토부는 당시부터 제2공항 용역은 24시간 운항을 전제로 진행되지 않았고, 국내선 50%만 운항할 계획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원 전 지사가 국토부 장관이 된 현재까지도 국토부 입장이 변한 것은 없다. 그 흔한 정치인의 거짓말이 이런 것이다.  

일본의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해병대 채아무개 상병 사망, 김건희 일가 특혜 논란 양평 고속도로 , 수백억 은행 잔고 위조 윤 대통령 장모 구속 등등… 거슬러 가면 갈수록 뉴스 뒤에 숨은 지도자들의 거짓과 위선이 우리 사회를 성근 데 없이 도배하고 있음을 마주한다. 국민을 봉건사회의 천한 아랫것쯤으로 여기지 마시라. 반드시 심판이 기다린다. / 김봉현 이사·논설주간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