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97) 공공부문의 초단시간 꼼수 계약 중단돼야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에는 많은 요소가 있다. 생존을 위해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임금 등 노동조건은 우선 조건이지만, 노동의 과정을 통해 나의 삶을 살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직업 선택의 가장 높은 기준이 반드시 노동 조건이 아닌 경우도 있다. 

필자의 고등학교 친구는 서울 모 사립대학의 언어교육원 한국어 강사였다.

당시에는 한류가 막 시작되고 있을 무렵이었고, 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으로 유학 오기 시작한 때였다. 친구는 강의를 준비함에 있어 사소한 것 하나에도 온 신경을 다 쏟았다. 강의를 위한 교육 준비는 기본으로 하려니와 옷을 입는 것 하나, 표정 하나, 본인의 컨디션 관리 하나에도 신경을 썼다. 대학의 정식 과목은 아니지만 유학생들이 처음으로 한국을 배우기 시작하는 과정의 선생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에 대한 첫인상을 좋게 주어야 한다고 하며 본인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임하는 친구였다. 

당시 친구의 근로 형태는 시간급이었는데, 동네 입시 학원에서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마저도 매 학기마다 계약을 갱신해야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한국어 학당 강사직을 10여년 이상 유지했고 여러 상황상 지금은 떠났지만 현재도 그 때의 시간에 자부심을 갖고 지낸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친구는 한국어 학당과 초단시간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었다. 

8월 30일 민주노총 전국대학노조 국공립대본부가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8월 30일 민주노총 전국대학노조 국공립대본부가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초단시간 노동자란?

일하는 노동자의 노동 조건의 최저 기준이 되는 ‘근로기준법’은 차별 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돼야 할 테지만, 아직도 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있다. 그 중 한 형태가 4주 동안을 평균해 1주 동안의 소정근로시간을 15시간 미만으로 정한 소위 ‘초단시간 노동자’가 그러하다. 초단시간 노동자의 경우는 통상의 근무 형태가 아닌 예외적인 경우인데, 이러한 경우 근로기준법을 그대로 적용하게 되었을 때 사업주의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각종 의무사항을 면제하고 있는 것이다.

주 15시간이라는 기준은 초단시간 노동자의 노동 조건을 후퇴시키고 있다. 초단시간 노동자에게는 근로기준법상의 휴일 및 휴가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사업주는 1주 개근하는 경우 주어야 하는 주휴일(주휴수당) 제공의 의무가 면제되며, 5인 이상 사업장에 모두 적용되는 공휴일 조항도 적용되지 않는다. 산재보험을 제외한 4대 보험의 의무가입대상에서도 벗어난다. (단, 3개월 이상 근무하는 경우 의무보험가입대상) 

1년 이상 계속근로를 하더라도 퇴직급여보장법상 퇴직연금이나 퇴직금제도 적용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초단시간 노동자의 경우 기간제법의 적용예외에 해당돼 계속근로가 2년 이상 성립 되더라도 정규직(무기계약직) 전환이 되지 않는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놓이게 된다. 제도가 이러하다 보니 통상의 근무가 필요한 경우에도 초단시간으로 쪼개기 계약을 하며 악용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공공부문의 초단시간 꼼수계약 사례

질 좋은 일자리를 제공해야 할 공공 부문의 경우에도 초단시간을 악용하여 꼼수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있다. 2017년 서울고등법원은 주 14시간으로 소정근로계약을 체결한 경기도교육청 소속 초등보육전담사가 제기한 소송과정에서 해당 근로계약은 ‘꼼수’ 계약임을 확인했다. 초등학교에서 주 5일 동안 매일 3시간씩 돌봄교실을 운영하면서, 교육청이 주 15시간 이상의 계약을 피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화요일만 2시간의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실질적으로는 매일 같은 시간대의 돌봄교실을 운영해온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대학의 한국어 강사의 사례도 존재한다. 강원대학교에서 한국어강사로 일하던 노동자 A씨는 2019년 해고를 통보받은 후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과정에서 근로계약은 형식적으로 주 14시간 미만으로 체결했지만, 주 14시간은 수업 시간만 해당될 뿐이지 그에 부수되는 각종 교육행정업무는 포함되지 않았음이 인정됐다. 

즉, 계약의 형식은 주 14시간 미만이지만, 업무의 실질은 주 15시간 이상에 해당되므로 2년을 초과하여 일한 경우 이미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단이었다. 소송 과정에서 한국어강사의 강의시간 외 업무로 인정된 시간은 주당 숙제검사 3시간, 각종 피드백 시간 3.7시간, 회의시간 2.7시간, 상담시간 1시간, 시험출제 및 검토 1시간, 상담일지 및 현황표 작성 0.5시간, 시험지 채점 및 종강보고 작성 1.2시간 등이었다. 대학의 한국어 강사 운영이 전국적으로 비슷한 형태라  많은 대학에서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한국어 강사와 대화에 나서야

제주대학교에도 21명의 한국어 강사가 있다. 이들의 수업시수는 주 6시간부터 주 14시간까지 학기별로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유학생이 줄어든 지난 몇 년간은 학교에서 휴식학기제를 운영하여 강사들이 번갈아가며 무급휴직을 하면서 고용을 유지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유학생 수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 수가 없다는 이유로 이번 가을학기 2명의 한국어 강사에게 돌연 사실상의 해고 통보를 해왔다고 한다. 강사들은 학생 수가 회복되지 않았으니 휴식학기제를 연장해 운영하거나 수업시수를 나눠서라도 고용을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학교와 대화하는 것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들은 적게는 5년, 많게는 15년 동안 제주대학교의 한국어 강사로 일 해왔다. 초단시간 노동자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투잡, 쓰리잡을 하면서도 강사직을 유지했던 것은 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와의 대화를 촉구하며 지난달 30일 열린 기자회견은 그간의 설움을 눈물로 쏟으며 진행됐다. 

노동자는 쓰고 버리는 존재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제주대학교는 대화에 나서 한국어 강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경희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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