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주연구원 부연구위원 윤원수

2006년 7월 제주는 일반적인 도에 부여된 권한과 달리 지역의 여건과 특성이 부합되는 고도의 자치권이 보장되는 특별자치도로 출범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국제자유도시의 성공적 추진과 우리나라의 지방분권을 선도한다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2004년 당시 제주발전연구원에서 수립한 ‘제주특별자치도 기본방향 및 실천 전략’을 살펴보더라도 제주특별자치도의 비전으로 제주 차원과 국가 차원을 제시하고 있는데 제주 차원의 비전은 풍요로운 제주를 창출하는 것이고, 국가 차원의 비전은 한국지방자치 선도를 제시하고 있다. 

보고서에서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실천전략을 크게 3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지방분권 특례 적용(자치단체 위상 확립, 자치입법권 확대, 자치조직·인사권 강화, 자치재정권 확보), 둘째, 시범적 분권 선도(시범적 자치경찰제 도입, 교육자치제 시범적 개선, 특별행정기관 통합 운영), 셋째, 역량과 혁신 강화(제주형 자치계층제 구축, 지방의 제도 개혁, 도민주도 참여자치 실현)를 제시하고 있다.

특별자치도 출범 17년이 경과하는 현시점에서 실천전략을 살펴보면 많은 부분이 현실화되고 지역성장의 동력이 되었고 성공적 추진으로 타 시도 확산이 된 성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유독 한 가지가 출범과 함께 현재까지도 제주지역의 뜨거운 쟁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제주형 자치계층제 구축’이다.

제주는 2005년 7월 27일 제주의 자치모형 결정을 위한 ‘혁신적 대안(단일광역자치)’과 ‘점진적 대안(4개 시군 유지)’에 대한 주민투표가 전국 최초로 실시됐다. 당시 주민투표법 제8조 제1항의 규정에 근거한 국가정책에 관한 주민투표였고 주민투표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투표(2022년 4분의 1로 개정)와 유효투표수 과반수의 득표로 결정하는 것이었다. 투표결과 전체 투표인수는 40만2003명이며, 투표수는 14만7656명으로 36.7%의 투표율로 4개 시군을 폐지하는 혁신안이 결정됐다.

그러나 주민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기초자치단체를 폐지하는 주민투표에 63.3%인 25만4347명이 투표에 응하지 않았다. 주민투표 특성상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투표율이 높지는 않지만 당시의 도민사회 분위기는 제주형 자치모형 결정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투표율 36.7% 중 57%(8만2919명)만이 혁신적 대안에 찬성했다는 것과 현재의 제주시인 제주시+북제주군은 혁신적 대안 선택이 높았고 서귀포시인 서귀포시+남제주군은 점진적 대안 선택이 높았다는 점은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내내 갈등의 불씨가 됐다.

이후 제주는 매 선거마다 행정체제 개편이 공약으로 제시됐고 두 차례에 걸쳐 제주의 새로운 행정체제를 모색하기 위한 ‘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구성돼 운영됐다. ‘행정체제개편위원회’의 최종 권고안은 기초의회 미구성 행정시장 직선제였으며, 중앙정부 제출 결과 불수용 상태로 현재까지 오게 됐다. 중앙정부의 불수용 사유는 고도의 자치권이 보장되는 특별자치도 설립 취지에 위배되는 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10년 가까이 중앙정부 설득을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은 길이었다. 행정과 도민의 피로도도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행정시 체제는 도민의 불편을 해소하기 어렵고 경쟁을 통한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어려운 구조이다. 계속 지속이 된다면 미래에도 같을 것이다. 그 이유가 행정시는 도정의 업무를 보조하기 위한 하부행정기관이다. 어떤 형태로 변화되든 하부행정기관은 도지사의 견제 세력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현재 논의가 마지막이 아니고 또 다른 논쟁의 시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지난해 지방선거 시 오영훈 지사는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1호 공약으로 제시했다. 제왕적으로 표현되는 지위와 권한을 스스로 내려놓겠다는 것이고 기초자치단체 도입으로 지역발전을 위한 건전한 경쟁과 권력을 도민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오영훈 지사가 후보 시절에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위한 주민투표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면 ‘법안은 모법(주민투표법)에도 충돌되며, 단층적인 행정시스템을 도입해 고도의 자치권을 가지고 자치행정을 펼칠 수 있도록 한 제주특별자치도의 취지에도 역행한다’고 했다. 현행 주민투표법상 절충을 위한 논의 필요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17년 전 제주의 시·군 폐지가 특별자치도 취지에 역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지난 6월 18개 시·군을 유지한 채 출범한 강원특별자치도와 내년 1월 14개 시·군을 유지한 채 특별자치도 출범 예정인 전라북도를 보면 제주는 왜 불가능한가? 2023년 6월 개정된 지방자치법 제3조(지방자치단체의 법인격과 관할) 제2항을 살펴보면 ‘시는 도 또는 특별자치도의 관할 구역 안에, 군은 광역시·도 또는 특별자치도의 관할 구역 안에 두며, 자치구는 특별시와 광역시의 관할 구역 안에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5항 ‘시 또는 군을 두지 아니하는 특별자치도의 하부행정기관에 관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라고 의미적으로 제주를 명시하고 있지만 지방자치법에서 특별자치도도 시·군을 둘 수 있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와 전라북도가 제주와 다른 의원입법으로 출범과 출범 예정이지만 두 지역이 가고자 방향은 제주가 보유하고 있는 지위와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다. 현재는 출범을 목적으로 촉박하게 추진했고 추진하고 있지만 결국 제주의 장점을 모두 가져가기 위해 끊임없는 방법 모색과 정부 설득을 위한 논리를 만들어 갈 것이다. 어쩌면 제주보다 더 쉬울 것이다. 제주는 선행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고군분투하며 개척했지만 두 지역에는 너무나 좋은 모델 제주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원특별자치도의 국회의원 수는 8명, 전라북도의 국회의원 수는 10명이다.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도 강할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제주의 기초자치단체 도입이 특별자치도 출범 취지에 역행한다는 것에 대한 것이다. 2005년 제주가 행정체제 모형 결정을 위한 주민투표는 시·군 폐지라는 단일안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한 것이 아니었다. 두 가지의 선택지였다. 즉, 시군을 폐지하는 혁신적 대안이 선택되든, 시군을 유지하는 점진적 대안이 선택되든 어떤 것이 주민에 의해 결정되더라도 특별자치도 출범이 전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시군폐지가 전제조건이었다면 주민투표의 선택지는 시군폐지 찬반 하나였어야 되고, 이에 대해 반대가 높았다면 특별자치도 출범 불가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점진적 대안이 최종 선택되었더라도 특별자치도 운영 과정의 변화는 있을 수 있지만 출범 취지와 지위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지금도 같은 조건이다. 제주가 기초자치단체를 도입한다면 17년 전 점진적 대안에 대한 도민의 결정인 것이다. 기초자치단체 도입이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위를 훼손하는 것도 아니며, 제주특별자치도의 출범 취지를 역행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앙정부와 국회는 시군폐지로 인한 도민의 자기희생을 검토해 주기를 바란다. 

8월 5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된 ‘제주형 행정체제 도입공론화를 위한 도민참여단 숙의토론 최종 설문조사(800명)’에서 기초자치단체 설치 필요성에 대해 55.4%(443명)가 필요하다고 응답했고, 이 중 적합 모형에 대해서 56.7%(251명)가 ‘시군구 가초자치단체’가 적합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제주는 기초자치단체 도입으로 특별자치도의 정신을 계승하며, 도민이 원하고 우리에게 맞는 모형을 찾아가는 것이다.

현재 제주사회에서는 제주형 행정체제개편이 뜨거운 이슈다. 지방자치단체의 건전한 발전과 우리 모두가 주인임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이슈는 매우 바람직하다. 특히, 각계각층에서 제시하고 제안하는 의견은 다시 한번 우리가 제주의 기초자치단체 도입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할 수 있는 고견이다. 

그리고 지난 17년여간 제주는 7번의 제도개선 과정을 통해 4690여건에 이르는 중앙의 권한을 이양받아 운영하며, 제주의 성장과 발전을 이끌어 왔다. 그리고 32년 만에 개정된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 시 제주특별법이 큰 역할을 했고, 중앙정부의 자치분권 전국 확대 기조에 제도적 방향 제시 역할과 강원특별자치도를 비롯한 특별자치도 출범 예정 지역의 청사진을 제공했다. 즉, 제주특별자치도는 대한민국 자치분권을 선도하는 특별자치 최고의 지역이다. 그 누구도 제주특별자치도 성과에 대해 부정하기 어렵다.

윤원수. ⓒ제주의소리
윤원수. ⓒ제주의소리

다만, 특별자치도를 구성하는 요소인 행정의 민주성, 제주지역 내 불균형 문제, 경쟁과 특색이 없는 지역발전, 지역간 공동체 의식 부족 등의 문제가 있으니 이 부문만 핀셋 개선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논란을 종식시키자는 것이다. 어려운 과제가 산적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과 방향이 갈등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자발적인 도민 모두의 숙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잊지 말자. / 제주연구원 부연구위원 윤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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