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석의 칼럼과 에세이 사이] (21) 유배인들에게서 배워야 할 ‘고독력’

나이가 들어서는 고독력을 키우는 공부가 중요한 것 같다. 과거 조선조 유배 지식인들은 적막과 좌절로 점철되었던 유폐의 시간을 고독력을 키우면서 버텼다. / 사진=픽사베이<br>
나이가 들어서는 고독력을 키우는 공부가 중요한 것 같다. 과거 조선조 유배 지식인들은 적막과 좌절로 점철되었던 유폐의 시간을 고독력을 키우면서 버텼다. / 사진=픽사베이

어느 당나라 시인이 저녁 무렵 울적한 마음으로 언덕에 올라 ‘석양은 저리도 고운데 아쉽게도 황혼이 오는구나’라는 시를 남겼다고 한다. 황혼을 맞는 것이 어디 자연뿐이겠는가? 정신 차려보니 나의 인생에도 어느새 황혼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우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탄식했던가. 인생이란 ‘이렇게 왔다 이렇게 가는 것을(thus I come and thus I go)’. 석양처럼 지는 인생의 덧없음에 서글픔이 나의 마음을 적신다. 테니슨(Alfred Tennyson)의 시 ‘가을’에 나오는 시구처럼 ‘행복스러운 가을의 들판을 바라보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지난날(In looking happy autumn fields, And thinking of days that are more)’들을 회억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간 살아오는 길에 많은 난관이 있었다. 그나마 위로가 된 것은 산다는 것은 나름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이다.

오십을 바라보던 나이엔 정신적 방황을 많이 했다. 50이 낼모렌데 그간 무엇을 이루었는가? 왜 더 잘 살지 못했는가… 등 실존적 물음을 나에게 많이 던졌다. 씁쓸하고 애잔함만 가슴을 후비었다. 그러나 그때는 체력도, 열정도 충만했던 젊은 때였다. 실패하면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세속적인 출세든 꿈이든, 희망을 현실로 바꾸는데 요구되는 시간이라는 큰 자산이 있었다.

젊었을 때는 70이란 나이가 나에게 오리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러나 어느새 내 나이 칠순에 접어들었고, 이제 와서 느끼는 감정은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50세는 역동적인 삶을 기약할 수 있는 나이다. 그러나 70대는 그럴 수 없는 나이다. 엄습한 한계들을 운명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시간대다. 40대 후반쯤이었던 것 같다. 행정학과 선배 교수였던 부만근 교수(제주대 6대 총장)가 어느 날 “고 선생은 늙을 줄 몰랐는데 인제 보니 고 선생도 늙어 가는구나”라는 농담을 건넸던 적이 있다. 육체적으로 늙어가는 것을 두고 한 말인지 좌충우돌했던 내 젊음도 세풍에 많이 깎여 온순해졌다고 하는 것인지를 알 길은 없다. 부만근 총장은 워낙 조심스러운 성격을 가진 분이라 두 가지 뜻을 다 내포한 농담이 아니었나 짐작할 뿐이다. 

카이로스(kairos)라는 개념은 세월을 각자의 시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무정하게 흘러 나에게도 늙음이 구체적 실체로 다가왔다. 생애주기에서 70대는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매우 어려운 시기이다. 그 나이에 이르면 문득 죽음도 생각하게 마련이다. 클래식 음악보다 ‘뽕짝’이 더 가슴에 와 닿는 감성 변화가 크게 일어난다. 가을의 황량한 들판만 봐도 왠지 모르게 서글픔이 밀려온다. 눈이 내리는 어느 겨울날,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에서도 원인 모를 한기를 느끼는 나이다. 연극의 막이 내리고 만장했던 관람객이 다 떠난 후, 텅 빈 객석에 홀로 앉아 있는 기분이라면 지나친 허탈감의 표현일까! 육체적으로도 건강의 적신호가 여기저기서 감지되는 나이이기도 하다.

70세 이후는 정신을 단단히 붙잡고 있지 않으면 인생의 여러 가지 어려움이 영혼을 갉아먹는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이 가장 높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넘듯이 가난한 70대는 정말로 견디기 어려운 인생의 언덕을 넘어야 한다. 70 이후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상심과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일이다. 공자는 이러한 마음의 상태를 종심이라 했다. 어떻게 종심을 유지할 것인가? 매우 어려운 일임이 틀림없다. 별다른 해결책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마음의 근육(힘)을 튼튼히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본다. 열심히 공부하듯이 정신력을 단련시켜야 한다. 지식 쌓는 공부보다 마음의 조련사가 되기 위한 공부가 훨씬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마음공부라고 하지 않던가.

다산 정약용이 유배 시절, 문하생 중에 출신이 미천하고 머리도 별반 뛰어나지 않은 황상이라는 제자가 있었다고 한다. 다산은 그 제자를 매우 아꼈다. 그가 황상에게 내린 계율이 삼근계(三勤戒)다.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라는 뜻이다. 그런 가르침에 힘입어 학문에 정진한 그 제자는 후에, 크게 성공한 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마음공부도 삼근계를 생활의 규율로 삼고 노력하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다른 방도가 있을 리 없다. 참 지난한 일이다.

지식이 많다고 마음의 근육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조선조는 주자 성리학을 통해서 모든 백성을 군자로 만드는 것이 교육 목표였다. 그러나 실천적 의미에서 군자가 된 사람은 거의 극소수다. 지식과 삶이 따로 노는 이중인격자들만 양산했다. 3.1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 중 충(忠)을 정신적 기반으로 한 유림의 대표는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참 난감한 일이다.

몇 년 전의 일이다. ‘웃음 치유를 통한 행복론’을 설파하고 다녔던 행복 전도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해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행복에 관한 지식이 많다고 그것에 비례해 행복의 강도도 높아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행복에 관한 지식과 그의 삶은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어떻든 인간이란 복잡한 존재다. 나도 인간에 관한 공부를 했다면 꽤 했다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주로 조직과 인간 문제를 강의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감정 관리가 잘 안된다. 다만 감정을 잘 다스리려고 노력할 뿐이다. 아직도 눈물도 많고 감격도 잘하고 분노도 불같이 일어난다. 이 나이가 되어도 감정의 격랑이 파고처럼 일곤 한다. 마음의 근육이 매우 허약함을 절감한다.

이 나이가 되어도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잘 모르겠다. 그간 수많은 인간과 교류하면서 상처도 받았고 도움도 받았다. 대학에 있을 때는 오랜 기간 다양한 보직 경험도 했고 두 번의 총장선거도 치러봤다. 지금 와서 얻은 결론은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퍼즐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다. 확실한 것은 니체의 이야기처럼 인간은 짐승과 초인(성인) 사이에서 줄을 타는 곡예사라는 사실이다. 짐승에 가까운 존재냐 성인에 가까운 존재냐가 있을 뿐이다. 인간은 욕망덩어리다. 그 욕망의 근원은 성, 돈, 권력 같은 것이다. 사회생활을 통해 얻은 결론은 인간에게 있어 대체로 돈과 권력에 대한 욕구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돈이나 권력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지식인 중에서도 돈과 감투에 대한 욕구가 천박하리만치 강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그러면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욕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그 욕망을 적절히 관리하고 잘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다. 특히 이런 지혜는 늙어가는 사람에게 더 중요한 생활덕목인 것 같다. 늙은 사람이라고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적절히 관리하고 최소화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본래 욕망덩어리인 인간을 존경하거나 우상화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서 낙관적 신앙이 무너진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하면 잘 알 수 있는가. 확실한 답은 없지만 괜찮은 가설은 추론할 수 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인간은 같이 일을 해봐야 제대로 알 수 있다’. 남녀문제도 마찬가지다. 옛사람들이 이르기를 남녀란 살 섞고 같이 살아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했다. 참 의미 있는 이야기다. 이런 점에서 나는 경험주의 신봉자다. 30여 년 전 강의 시간에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프랑스식의 혼전 동거가 좋은 제도라고 했다가 제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프랑스의 최고 지성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 결혼이 화제가 된 즈음이었다.

나는 요새처럼 이혼율이 증가할수록 혼전 동거는 설득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혼전 동거 경험을 통해 평생 같이 살아도 괜찮다는 확신이 설 때 혼인도 하고 자녀를 갖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미 육체적 정조는 유치한 서사로 간주돼 박물관에 가 있는 지 오래되었지 않은가. 행복을 기약하며 수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고 결혼해도 이혼율은 점점 늘고 있다. 이혼으로 지급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이만저만 아니다. 당사자는 물론이고 아이가 받는 정신적 상처, 양육비, 이혼 자녀들의 교육 문제 등 골치 아픈 문제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오래전에 어느 일본 작가가 선거운동을 해보면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의미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돼 무릎을 쳤었다. 나는 선거에 후보로 나서 봐야, 그것도 떨어져 봐야 인간의 참모습을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는 불후의 명작이다. 나는 그 작품성보다 그림이 주는 의미에 더 관심이 간다. 그 그림은 추사가 제자 이상적에게 선물한 그림이라고 알려져 있다. 통역관이었던 이상적은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마다 귀한 서적을 구해 제주에 유배 중인 스승에게 보내주었다. 요새처럼 이해관계가 우선시 되는 세상에 이상적 같은 제자를 가진 스승이 몇이나 될까!

추사는 어렵사리 제자가 구한 책을 권세가에게 바쳤다면 출세가 보장될 터인데 어찌 이리 힘없는 나에게 보내느냐며 감사의 뜻으로 그림을 선물했다고 한다. 그 그림이 세한도다. 절해고도 제주 섬에 유배당해 비참한 생활을 하는 추사 자신의 처지와 세상의 인심, 그 와중에도 끝까지 의리를 지킨 제자 이상적의 덕목을 그림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상적은 한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와 잣나무 같은 인품의 소유자라고 말이다. 유배지 제주에서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절규했던 추사의 외침이 나에게도 공명을 일으킨다. 어디 유배인 추사뿐이겠는가. 아! 이 나이가 돼서도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하물며 인간이란 존재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래도 인간에 관한 공부만큼은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이가 들어서는 고독력을 키우는 공부가 중요한 것 같다. 과거 조선조 유배 지식인들은 적막과 좌절로 점철되었던 유폐의 시간을 고독력을 키우면서 버텼다. 막강한 권력 상층부에 있다가 어느 날 처절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위무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았을까. 그들이 자주 암송했던 좌우명이 독립불구 둔세무민(獨立不懼 遯世無憫)이다. ‘혼자 있는 것이 조금도 두렵지 않고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근심이 없다’는 뜻이다. 유배 지식인이 아니더라도 일상을 사는 노년의 세대들이 유념해야 할 말이다. 노년은 자기 인생으로부터 유배된 처지가 아닌가!


# 고충석

現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제7대 제주대학교 총장, 제주국제대학교 초대 총장, 제주발전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제주를 대표하는 원로학자로서 칼럼과 에세이를 넘나드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조언을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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