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교육春秋] (41) 홍범도와 제주4.3, 그리고 4.3명예교사를 생각한다

홍범도 장군 흉상 / 사진=오마이뉴스
홍범도 장군 흉상 / 사진=오마이뉴스

한국 사회가 철 지난 이념 논쟁으로 뜨겁다. 철 지난 이념 논쟁은 진영 논리로 귀착된다. 역사적 사실을 진영 논리로 평가하는 일은 군부 독재 시절 정권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활용된 바 있다. 이승만을 국부로 칭송하며 반공과 용공이라는 이분법으로 반공은 칭송하고 용공은 억압하며, 자신의 반대 세력을 용공 세력으로 몰아 고문과 사형을 공권력의 이름으로 행해온 역사가 우리 현대사의 어두운 모습이다. 

그들에게는 광주민주화운동도 북한의 소행이었고, 제주4.3도 북한 소행이었다. 냉전 체제가 낳은 반인륜적 행위는 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작용했지만, 역사는 이를 국가 범죄, 국가 폭력으로 반성과 용서의 대상으로 정의했다. 이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할 냉전 시대 역사로 자리매김 됐다.

그런데 2023년 한국 사회에 다시 냉전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155년 전에 태어나 80년 전에 세상을 떠난 홍범도 장군이 느닷없이 호명되더니, 독립을 위해 평생을 살다가 간 그가 졸지에 반체제 인사가 됐다.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던 시기, 일본 정부는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을 반체제 인사로 탄압하고 고문했다. 사회주의자든 아니든 조선의 독립을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 싸웠던 역사에 갑자기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1945년 8월 어렵게 독립된 한반도에 미 군정이 들어왔고 친일파는 청산의 대상이었지만 미군은 그들을 중용했다. 독립투사를 고문하던 순사가 빨갱이를 색출하는 경찰이 됐다. 미 군정이 세워야 할 한국에는 그들에게 충성할 세력이 필요했고 그들은 빨갱이를 때려잡는다는 대의로 뭉쳤다. 일본이 쫓겨나고 한반도에 세워질 새로운 국가의 모습을 상상하던 이들에게 미국은 자신들이 원하는 청사진을 던졌다. 그런데 가만히 따라오지 않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본보기가 필요했다. 제주에서 들려오는 자치의 소리를 미국은 빨갱이로 규정했다. 이승만은 정부를 구성한 후 여기에 한술 더 떠 섬에 사는 이들은 모조리 죽여도 좋다고 했고, 그렇게 제국 일본보다 더한 모습으로 자국의 국민을 학살한 사건이 제주 4.3이다. 역사적 평가가 끝난 철 지난 이념 논쟁을 느닷없이 들고 나온 윤석열 정부의 행보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윤석열 정부의 행보를 보며 지난 4월 3일을 전후해 제주도 전역에 붙은 극우 세력의 현수막이 떠오른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4.3희생자 결정을 중단하고 심지어 희생자로 인정된 이들을 재심을 통해 4.3평화공원에 새겨진 이름조차 지워버렸다. 홍범도 이념 논란이 제주4.3과 무관하지 않은 이유이고 앞으로 반복될 아픔이 우려되는 까닭이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념 논쟁은 체제 경쟁을 불러왔고 소련이나 중국과 달리 자본주의 체제는 사회주의 이념의 긍정적인 부분들을 복지 체제로 받아들였다. 한국에서의 무상 급식이나 무상 교육, 어린이집 정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을 입안한 이들을 빨갱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제도들을 흡수해 자본주의의 안정성을 강화해왔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기반에서 발전해왔다. 우리가 역사 평가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공산주의가 지닌 비민주성이다. 민주주의의 상식을 부정하고 다양성을 부정한다면 그것이 우리가 우려해야 할 정치다.

우연한 기회에 4.3명예교사로 활동하는 유족 분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그중에 한 분이 김광수 교육감이 들어오면서 명예교사 제도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오히려 숫자를 더 늘려서 놀랐고 고맙다는 얘기를 했다. 이분들의 불안감이 여전하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명예교사 분들은 대부분 어린 나이에 제주4.3을 겪고 평생을 낙인 찍혀 살아온 분들이다. 당신들이 세상을 떠나면 생생한 소리를 전해줄 수 없다며 누구보다도 자신의 삶과 경험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어 하신다. 이들에게 이념의 옷은 이미 철 지난 옷이다.

여전히 수형인 재심이 이뤄지고 있다. 제주의 시간은 아직도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흐르고 있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벗어버려야 할 옷은 벗고 평가하지 못했던 그 시간을 오롯이 바라보고 나가자는 것이다. 이념의 굴레에 갇혀서 제주 4.3을 빨갱이 색출의 역사로 바라보며 제주4.3을 가두어 둘 것이 아니라, 구시대적인 이념의 옷을 벗고 45년 해방 공간에서 제주도민들이 살고 싶었던 나라를 다시 그려보고 그들의 희망을 노래하고 토론하는 시간으로 나가야 공격하고 방어하는 소모적인 논쟁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민주주의의 역사다.


#안재홍

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KBS제주 TV 시사프로 '집중진단' 진행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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