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채식문화원 고용석 공동대표

파리기후변화협약 이후에도 온실가스 배출은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세계의 각국이 2050년까지 넷제로(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을 같도록 해 순 배출을 0으로 만드는 것)를 선언했지만 실제로 이행 여부는 미지수다. 넷제로를 위해서는 각 나라가 매년 7% 이상의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지만 이에 관한 소식은 없고 온실가스가 오히려 더 증가했다는 보도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합의가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란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고 할까. 그 사이 기후위기는 더 악화해 이미 문제 해결에 불가능한 지점 즉 ‘되돌릴 수 없는 임계점’에 임박했다는 진단이 힘을 받고 있다. 30년 전부터 지구온난화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폭로하고 20년간 국가 간 기후협상을 진행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 행동 변화와 해결의 기미가 없는 이유는 뭘까.

부산서 열린 유엔의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서비스에 관한 정부 간 회의(IPBES)’에서 유엔과 환경부의 협조로 각국 대표들이 간식 시간에 비건 리플렛과 함께 제공된 비건 햄버거를 즐기고 있다.(사진=한국 채식문화원 제공)
부산서 열린 유엔의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서비스에 관한 정부 간 회의(IPBES)’에서 유엔과 환경부의 협조로 각국 대표들이 간식 시간에 비건 리플렛과 함께 제공된 비건 햄버거를 즐기고 있다. (사진=한국 채식문화원 제공)

첫째, 전 세계 인구 중 가장 부유한 1%의 탄소 배출량은 가장 가난한 50%의 두 배에 달한다. 반면 기후피해로 인한 고통은 대부분 가난한 50%의 몫이다. 세계화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이 선진국 중산층과 같은 생활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한 욕구다. 선진국들이 풍족하게 잘 살 수 있는 건 가난한 나라에서 탄소 배출 등 많은 것들을 빼앗고 전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진국이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적 발전 모델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기후 해결을 위해서는 선진국이 세계 인구의 70%인 비선진국을 위해 탄소 배출과 에너지 소비량 등 생활 수준을 반감할 수 있을 정도의 자세와 대안을 보여주어야 한다. 과연 선진국 내부 정치인들 가운데 누가 이런 담대한 주장을 할 수 있을까. 선거에서 지는 게 뻔한 데 말이다.

둘째, 온난화를 2℃ 이내로 억제하는 과정에서 GDP에 미치는 영향은 많이 봐야 2%가량이고 1.5℃로 억제하는 경우엔 2.9% 정도다. 즉 2.9%의 비용을 부담하면 충분히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처럼 세계적 이점이 세계적 비용을 넘어서는데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행동에 옮기지 못한다. 세계적 편익을 국가나 개인의 편익과 연결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국제 정치 체제가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침공’에서 보듯 주권 국가의 범주와 여전히 야만적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기후변화와 핵 등 지구적 아젠다를 다룬 경험도 없는 데다가 소비주의와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나’라는 자아와 개인주의 또한 공공의 이익이나 연대와는 배치되는 협소하고 과격한 특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후가 공유재라 다들 남들이 먼저하고 거기에 무임승차하길 원하는 심리도 작용할 것이다.

셋째, 기후위기는 기후만이 아니라 우리 몸의 면역체계 같은 ‘지구 복원력’과도 연관된다. 지구 과학의 발달에 따른 ‘지구위험 한계선’ 이란 개념이 그것이다. 세계의 과학자들이 ‘지구위험 한계선’ 개념을 8개 지표로 정량화해 지구의 ‘건강 상태’를 측정했더니 기후, 생물 다양성, 토지이용, 지표수, 지하수, 질소 오염, 인 오염, 대기 오염 등 8개 지표 가운데 대기 오염만 제외한 7개가 이미 '위험 구역'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이 나왔다. 문제는 ‘지구 시스템’ 안의 이들 지표가 하나라도 임계점을 벗어나면, 도미노가 무너지듯 연쇄 효과로 결국엔 인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는 얘기다. 지구 시스템은 상호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면 다른 지표들도 경계 내에서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는 뜻이다.

‘비건채식으로 지구를 살립시다’ 등 구호를 외치며 ‘2023 세계 비건채식 기후 행진’을 하는 국내 2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비건채식인들. 이러한 캠페인은 선진국 곳곳에서 대규모로 벌어지고 있다. (사진=한국 채식문화원 제공)
‘비건채식으로 지구를 살립시다’ 등 구호를 외치며 ‘2023 세계 비건채식 기후 행진’을 하는 국내 2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비건채식인들. 이러한 캠페인은 선진국 곳곳에서 대규모로 벌어지고 있다. (사진=한국 채식문화원 제공)

비건채식이 기후위기 대응의 ‘히든카드’인 이유

비건채식이 무엇보다 파국으로 치닫는 기후위기에서 온실가스 감축과 지구 복원력 회복을 위한 유일한 전략적 해결책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구위험 한계선’의 8개 지표 모두를 상당하게 줄일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일 뿐 아니라 메탄 감축이 넷제로를 위한 에너지 전환의 시간을 상당 부분 벌어주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메탄은 이산화탄소에 비해 20년을 기준으로 할 때 86배 더 센 초강력 온실가스로, 방출 후 잔류기간이 훨씬 짧아 단기간에 감축 효과를 볼 수 있으며 바로 실천할 수 있고 비용도 저렴하다. 메탄은 목축 60%·화석연료 40% 발생하고 사육 ‘소·양의 트림’이 주 배출원이다. 세계가 메탄의 이러한 전략적 효용성 때문에 ‘메탄 감축 협정’을 맺었음에도 핵심인 식습관이 빠져 사실상 실질 효과가 없는 데다 협정 이후 오히려 메탄이 증가했다.

또한 현재 개발단계에 있는 불확실한 탄소 포집 및 제거 기술에 의존하는 것보다 비건채식을 통해 사료 재배로 인한 과도한 삼림파괴와 해양자원 남용을 줄여 숲과 토양, 해양 생태계를 복원하면 온실가스를 가장 확실하고 안전하게 흡수할 수 있다. 특히 기후재앙의 극적인 악화를 예견하는 현재로부터 5년 이내에 산림회복과 식목만이 현재 절실한 대규모 탄소 흡수능력을 증가시킬 수 있는 유일하고 검증된 방법이다. 축산업은 세계 농지의 80% 사용할 뿐 아니라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의 91% 그리고 해양 오염과 해양 생태계 파괴의 주요 원인이다.

그리고 분명 알아야 할 사실은 비건채식이 온실가스 감축뿐 아니라 ‘적응’ 면에서도 핵심적이고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인류가 기후 붕괴 전에 비건채식에로 전환에 성공한다면 다행이지만, 고기 생산에 세계 식량의 40%와 엄청난 물의 낭비 등 세계 자원에 주는 어마어마한 부담을 고려할 때, 기후 붕괴 뒤에는 고기를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상황일 뿐 아니라 육식을 받아들이지 못할 행위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비건 세상’이라는 지구적 식습관 전환은 불가피하다.

기후위기로 인한 폭염과 가뭄, 태풍 등으로 지구 환경이 위기에 직면한 현재, 인간만을 법적 주체로 규정한 현재의 법체계를 넘어 동식물의 권리를 규정한 '지구법'을 대안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그 핵심은 지구상의 비인간 존재에게도 ‘존재할 권리, 거주(서식)할 권리, 진화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즈음, 주요국가 대표들이 브레턴우즈에 모여 세계의 경제 및 전후 복구에 관한 몇 가지 새로운 원칙에 합의하고 70년대 초까지 그 원칙에 따른 규정과 제도, 자금이 사실상 세계를 번영으로 이끌었던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만약 기후 붕괴로 인한 파멸에 가까운 인류의 경험 전후(이는 전쟁보다 더 참혹한 상황일 지도 모른다) 인류가 회복하거나 정상화하려면 지금의 유엔이나 G10+ 같은 주요 협의체에서 지구법 원칙을 합의하고 그 원칙에 각 나라 헌법의 상위법에 상당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도 있을 법한 일이다. 부디 기후 붕괴로 인한 기후 지옥이 되기 전에 인류가 깨어나 문제 해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고용석
1994년, 환경·시민·종교단체가 총망라된 국내 최초의 국제 채식 심포지엄 ‘채식이 지구를 살립니다’와 미래진단 세미나 '퓨쳐비젼'을 비롯하여 3차례 세계를 연결하는 지구온난화 글로벌 컨퍼런스 등 창의적이고 선구적인 프로그램들을 기획해왔다. 세계 NGO대회와 유엔 사막화와 생물다양성, 기후변화 총회 등에 참여하며 방한 종교 및 환경 지도자들의 통역 일과 컬럼리스트와 자유기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서울시 채식관련 자문위원과 부산 식생활교육 국민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 채식문화원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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