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수 전 성공회대 교수

김순관 화백이 생애 8회 차 개인전 ‘아리랑 이야기―참된 나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열었다. 40년 교직자 생활을 정리한 뒤 벌써 두 번째이다. 

필자는 하얀 종이위에 점 하나를 찍고 글 한자를 쓰는 것도 두려워하는 편이다. 그러니 필자는 김 화백의 그림을 마냥 경이에 찬 시선으로 볼 수밖에 신기하고 놀랍기만 할 따름이다. 더욱이 이 위기의 시대에 나를 찾아가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진짜 나를 찾아가는 일을 즐겁게 하자’고 김 화백이 선언했으니 얼마나 공을 들이고 신경을 썼을 것인가 생각하기만 해도 괄목상대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지구 온난화 정도가 아니라 지구 열탕화라고 부를 만큼 엄청난 기후 위기 앞에 서 있다. 인류의 불안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기만 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는 이행기 불의와 국민 불복 시대를 견뎌내고 있다. 서양 민주주의를 발명한 고대 그리스에서조차 민주화 이후 대반동의 독재 시대를 거쳤다고 한다.

특히 검찰 및 경찰 공무원인 학부모로부터 시달리던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참사가 일어났다. 이를 추모하고 교권을 주장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교사 시위가 이어져 교육계 안팎이 논란 그 자체이다. 누가 누구에게 잘못을 따지고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 일일까?  

이처럼 엄중하고 무서운 시대 조류 앞에서 이처럼 진지하고 엄숙한 구도의 자세로 그려진 손노동의 성과는 나의 타성과 태만을 꾸짖고 있는 듯하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몸을 씻고 마음을 가다듬어 붓을 잡고 그림을 그려 왔단다. 말 그대로 심산유곡 고처에 놓인 암자에서 면벽 수도하는 자세 그 자체이다.

굵은 선과 짙은 색, 화려한 그림 속에 오히려 평범하고 친밀하고 은근한 주제가 놓여 있다. ‘연륜’(100호), 무슨 사연이 있는 계절인지 알 수 없으나 ‘2022년 10월’(100호)이라는 제호의 그림이 걸려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랑’, ‘보금자리’(60호), ‘삶의 무게’(20호), ‘그리움’(15호) 역시 너무나 익숙하고 정겨운 호칭들이다.

지난 시기에 우리 모두가 겪은 코로나19 펜데믹은 서로를 떨어지게 하고 만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김 화백은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그림판 앞에서 수도승처럼 하루하루 시간을 아끼며 빛과 어둠, 점과 선과 면을 물감으로 채워나갔던 모양이다. 그러니 이제 그런 고난의 시대를 넘어 참된 나를 찾아가는 일조차 즐겁고 유쾌하고 흥겹게 치러보자고 선언하고픈 모양이다. 

거짓과 은폐, 왜곡의 늪을 벗어나 가짜로부터 진짜를 가려내는 일은 진짜를 바로세우는 일만큼 어렵고 힘들고 시간을 많이 드려야 얻어낼 수 있는 일이다. 매사가 재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시대이고 24시간 불이 켜져 있어 잠조차 편하게 잘 수 없는 불편한 시대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여기에서 마음만 한번 돌려먹는다면 경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하게 시간을 지배하는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진짜 나를 찾아가는 일을 즐겁게 하려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전환해 보는 게 올바른 순서라고 판단해보면 어떨까? 빨리 그려내어 큰 그림을 그려내고 고가로 팔려나가기를 바라는 헛된 꿈을 꾸느니 이제부터라도 올바른 방향을 잡고 진득하게 알찬 시간을 가꾸어 내는 게 가짜모습의 나를 벗어나는 정도라고 설정해 보자. 그러니 쉽지 않을 방향을 제대로 잡았으면 일로 용맹정진할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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