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개정 역사교과서 4.3기술 포럼 개최...“2021년 4.3특별법 개정 포함 필요”

제주도민 탄압·학살에 앞장선 ‘서북청년회’의 이름을 내건 세력이 올해 4.3추념식에 기웃거리며 제주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항일 독립운동과 일본군 위안부를 폄훼·왜곡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역사 부정 세력이 속속 고개를 쳐드는 오늘날, 제주도교육청(이하 교육청)이 확고한 자체 4.3교육 ‘마스터플랜(master plan)’을 세워 장기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제주도교육청은 18일 제주학생문화원 소극장에서 ‘2022 개정교육과정 역사 교과서 4.3 기술 명시를 위한 평화·인권교육 발전 방안 포럼’(이하 역사교과서 4.3 포럼)을 개최했다.

교육부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이은 ‘2022 개정 교육과정’을 2022년 12월 22일 확정-발표했다. 정부의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초-중-고교 단계별로 학교에서 배워야 할 내용을 정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출판사는 바뀐 교육과정에 따라 새로운 교과서 개발에 착수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2024년부터 초등학교 1~2학년, 2025년부터는 중·고등학교에 연차 적용된다.

4.3은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학습요소에 포함된 바 있다. 학습요소는 교과서에 들어가도록 정해놓은 필수 항목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교육부는 지난해 말, 2022 개정 교육과정을 행정예고하면서 모든 학습요소를 삭제했다. 삭제 이유는 ‘자율성 강화’를 들었다. 학습요소가 없으면 출판사 별로 각자 교과서를 기술하면서, 4.3을 기술할 근거가 제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교육청은 시도교육감협의회 총회 공동대응 협조 요청,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 면담, 교육부 방문 등을 통해 2022 개정 교육과정에 제주4.3을 명시해달라고 정부에 강력히 요청했다. 노력에 힘입어 국가교육위원회는 “제주4.3사건은 추후 교과서 편찬 시 반영한다”고 수정 의결했다.  그리고 올해 1월 27일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검정도서 개발을 위한 편찬준거에 제주4.3을 학습요소로 반영했다.

이번 역사교과서 4.3 포럼은 ‘학습요소 삭제’ 경험을 반추하며, 국내 역사교과서 안에 4.3 관련 내용을 올바르게 포함시키기 위한 방안을 고민했다. 

주진오 명예교수는 “교육청은 이벤트성 행사를 지양하고 장기 지속적인 마스터플랜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주진오 명예교수는 “교육청은 이벤트성 행사를 지양하고 장기 지속적인 마스터플랜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주진오 “포럼 너무 늦었다...장기 지속적인 마스터플랜 마련해야”

이날 역사교과서 4.3 포럼은 2022 개정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4.3 교육 방향까지 함께 논의했다. 

주제 발표자로 나선 상명대 주진오 명예교수는 “학습요소에 여러 사건을 나열하는 것에 대해서 역사교육계에서 끊임없이 문제제기가 있었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특정 사건을 포함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며 지난해 학습요소 삭제 논란을 바라봤다. 

그러면서 “제주4.3 사건을 제외하는 교과서 집필자는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제주4.3 사건이 역사 교과서에서 분명히 기술돼야 하는 것은, 이미 상식적인 이야기가 됐기 때문”이라며 “어떻게 잘 기술되도록 교육청 차원에서 최선을 다할 것인가의 차원이 더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주진오 명예교수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 안에 현대사 비중이 극히 적은 문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초등학교 역사 교과서에도 당연히 4.3이 기술돼야 한다고 밝혔다. 올해부터 초등 검정 교과서 11종 가운데 4종이 4.3을 서술했지만, 채택률이 가장 높은 교과서에는 아직 포함되지 않은 상태다.

주진오 명예교수는 “지금부터라도 교육청 차원에서 각 출판사 별로 초등학교 검정 교과서 편집자 및 집필자들과의 소통이 필요하다”라며 “교육청 차원에서 계기교육의 자료를 충실하게 제작하는 것도 필요하다. 집필자들이 위축되지 않고, 교사들이 마음 편하게 가르칠 수 있는 반박 자료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과제를 제시했다.

더불어 “4.3의 전국화와 세계화에 앞서 제주화를 위해, 교육청 차원에서 표준 강의자료가 초·중·고 별로 마련돼야 한다”면서 “강의자료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육지 역사교육자의 참여가 필요하다. 그래야 4.3의 객관화와 전국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한 ▲기본적인 4.3 지식은 온라인, 체험과 답사는 대면으로 진행 ▲중·고등학교 수학여행 시 다크투어 제시 ▲4.3특별법 개정 등 2018년 이후 상황도 새 교과서에 반영 ▲교육청 내 TF팀 구성해 교과서 모니터링 작업, 도내 교사들에게 정보 공유 등의 과제들도 덧붙였다.

주진오 명예교수는 “2022 개정 교육과정 교과서는 12월까지 표지가 없는 백표지본 교과서를 검정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그렇기에 지금은 집필이 거의 끝난 상태다. 가쇄본까지 나온 출판사도 많다. 오늘 같은 포럼은 너무 늦었다”면서 “그러나 판형을 바꾸지 않는 범위에서 수정의 기회는 있다. 교육청은 계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교육청은 이벤트성 행사를 지양하고 장기 지속적인 마스터플랜을 마련해야 한다”며 “4.3은 한국현재사와 공공역사라는 관점에서 접근돼야 한다. 한국현재사는 현대사와 달리 어떤 시대의 역사라 할지라도 현재의 관점에서 이해되고 현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역사다. 공공역사는 대중이 함께 역사 지식을 생성하고 소비하며 공유하는 것”이라고 4.3 교육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개념을 밝혔다.

주진오 명예교수는 “학생들을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지식을 생산하고 활용하는 대중으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교육청은 교사들의 공공역사가로서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간섭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진오 명예교수는 ‘백만개의 목소리가 나오려고 아우성 친다(million voices clamoring to get out)’는 문장을 소개하면서, “수많은 희생자들이 각자 무슨 사연이 있어서 죽음을 당했는지, 그들은 가진 꿈은 무엇이었는지,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섬 곳곳에서 아우성치고 있다. 우리가 듣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연구는 학자들의 역할이고 나는 학생들에게 전달하면 된다’는 태도에 그치지 않고,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내가 직접 들어보겠다는 마음가짐이야 말로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제대로 4.3을 가르치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현직 교사들이 느끼는 4.3 교육의 어려움은?

이날 포럼에는 현직 교사들도 참여해 학생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느낀 점들을 공유했다. 서귀포여자고등학교 고동민 교사는 주제 발표에서 “4.3 교수·학습 자료를 만들면서 가장 크게 고민했던 건 두 가지다. 첫 번째는 4.3 교육만을 위한 수업 시수 확보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교육과정 안에서 4.3을 가르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두 번째는 방대한 4.3의 역사에서 어떤 역사적 사실을 중요하게 가르쳐야 할까를 고민했다”고 밝혔다.

특히 “두 번째 고민과 관련해서 내용이 너무 많으면 수많은 역사적 사실에 질려서 학생들이 쉽게 4.3에 대한 이해를 포기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내용이 너무 적으면 학생들이 4.3에 대한 맥락을 이해하지 못할까 염려했다”고 고민을 전했다.

고동민 교사는 “탐구 활동 중 본문 외 자료에서 과거사 진상규명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지, 과거사 정리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돼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묻는 발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4.3으로 인한 피해 규모는 대부분의 출판사가 본문에 ‘수많은’, ‘다수의’ 주민이 희생됐다고 언급하고 추가 자료로 구체적인 피해 규모를 서술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이 교과서를 읽을 때 본문 내용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걸 생각하면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른 구체적인 피해 규모를 본문에 서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청은 18일 제주학생문화원 소극장에서 ‘2022 개정교육과정 역사 교과서 4.3 기술 명시를 위한 평화·인권교육 발전 방안 포럼’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교육청은 18일 제주학생문화원 소극장에서 ‘2022 개정교육과정 역사 교과서 4.3 기술 명시를 위한 평화·인권교육 발전 방안 포럼’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창현고등학교 조한준 교사는 토론에서 “2022 개정 교육과정 역사교과서에는 2021년 개정 4.3 특별법의 내용이 반영돼야 한다. 정부 차원의 추가 진상조사와 6.25 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 학살 사건에 대한 첫 입법적 보상이라는 의의 등 잊힐 과거사가 아니라 앞으로 기억되고 기념되도록 서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제주도교육청 차원에서 초·중·고별로 표준 강의자료 마련, 5분·10분·15분 분량의 수업용 동영상 제작, 감동을 줄 수 있는 콘텐츠 개발, 디지털 아카이브 확대, 원격 연수 다양화 등이 필요하다”면서 “제주4.3과 이후 4.3진상규명 운동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제주4.3을 표현할 수 있도록 교육돼야 ‘역사 부정’ 세력과 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 양성주 부회장은 토론에서 ▲4.3교육과정이 ‘해방 후 시기’에 계속 포함 필요 ▲4.3 교육 자료에 군사재판 수형인 내용 추가 ▲70년 전 언어 체계에 대한 교육 자료 마련 ▲다양한 체험 학습 지향 등을 조언했다.

특히 “4.3 당시 각종 자료에 ‘인민’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학생들이 매우 생소해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용어에 대한 사전 설명자료가 필요하다. 실제로 현장에서 4.3에 대한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인민위원회’라고 하니 북한과 관련된 조직으로 이해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박찬식 관장은 토론에서 “교과서의 4.3은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되 평가는 학생들의 안목과 인식에 맡기는 개방적인 내용으로 일관되게 기술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최근 현기영 선생의 소설 ‘제주도우다’를 읽었다. 장편소설을 통해 조천리 마을공동체의 일제강점 말기로부터 해방, 저항과 4.3대참살까지 역사를 사실적이면서도 정서적으로 그려나간 한 편의 파노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4.3 교육도 이렇듯 한 가족과 한 마을 주민들의 삶을 통해서 학생들의 심성과 정서를 울리고 미래의 희망 세상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최근 트렌드인 미세하면서도 감성적인 부분을 섬세하게 재구성해주는 교안 작성과 가르침 또한 역사교사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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