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3영화제’가 매달 마지막 주 주말에 도민들을 만나고 있다. 9월엔 특별한 영화를 선보인다. 이케다 에리코 감독의 ‘곤도하지메의 증언’이 9월 22일(금)~23일(토) 제주CGV에서 상영된다. 

4.3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의미가 더 크다. 영화를 꼭 보기를 추천한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전쟁의 기억을 전쟁처럼’ 찍었다. 

영화 화면은 조악하고 거칠다. 초점이 맞지 않은 장면도 있다. 편집도 엉성하다. 영화의 단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이다. 

곤도하지메씨는 일본 군인으로 태평양 전쟁에 참가했다. 전쟁이 끝난 뒤 자신의 가해 경험을 죽기 전까지 증언했다. 

학살과 원초적 감정의 배설이 난무한 전쟁터. 그곳에서 얻은 기억을 어떻게 하면 진짜 전쟁의 기억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전쟁처럼’ 찍어야 한다. 실제로 영화는 캠코더 하나만 들고 곤도하지메씨와 동행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필사적으로 증언을 담았다. 

전쟁처럼 거칠게 밀어붙이듯이 찍었다. 투박하고 조악하고 초점이 흔들린 화면에서 시야를 뒤덮은 포탄의 연기가 떠오른다. 가해의 증언이 군인들과 피해자들의 울부짖음으로 들린다. 

둘째, ‘가해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최근 4.3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가해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물론 피해자의 서사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는 피해자를 타자화할 우려가 있다. 희생의 서사를 신화로 포장하거나 신파적인 감정으로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곤도하지메의 증언’은 가해자가 극을 이끌어 간다. 가해자의 시점으로 전쟁의 서사를 새롭게 펼친다. 

관객들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영화 보는 내내 가해자와 동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도 어쩔 수 없이 가해자의 시선을 따라 가해의 현장을 체험해야 한다. 

이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나 자신도 전쟁의 한복판에서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이를 확인했을 때, 가해자에 대한 선택과 행동이 달라진다. 가해자를 향한 맹목적인 비난과 처벌을 유예하게 된다. 가해자도 국가 폭력의 시대에서 같은 피해자였음을 인정하게 된다. 

영화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목소리를 함께 들을 때, 전쟁의 끔찍함을 근본적으로 체험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손잡고 눈물 흘릴 때, 평화와 화해, 인권의 진정한 의미가 다가온다. 

셋째, ‘침묵의 미학’이다. 

곤도하지메씨의 ‘얼굴’은 영화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메라는 증언하는 곤도하지메씨의 얼굴을 계속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이는 기존 다큐멘터리와 다른 문법이다. 

문법대로라면 카메라는 증언을 듣는 사람들의 표정을 비춰야 한다. 충격받은 얼굴,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얼굴, 회한에 젖은 얼굴 등. 증언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흔히 청중의 리액션을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곤도하지메의 증언’은 다른 길을 간다. 곤도하지메씨의 얼굴을 찍는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는다. 나아가 곤도하지메씨의 ‘침묵’도 클로즈업으로 찍는다. 

증언이 사라진 공백의 시간, 우리는 곤도하지메씨의 ‘침묵’을 마냥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이는 놀라운 체험이다. 동시에 구술사가 던지는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끔찍하고 무거운 기억을 말이 아닌 침묵으로 이야기할 때, 우리는 침묵을 어떻게 기록하고 해석해야 할까. 침묵하는 대상과 어떻게 대화하며 역사의 입체성을 구현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을 남긴 채 영화는 침묵의 미학이 빛나는 순간을 만든다. 곤도하지메씨와 위안부 피해자들이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위로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진정한 평화는 침묵으로 정치적 언어를 비워낼 때 완성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 4.3영화제 이정원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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