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학연구센터 20일 제주학대회 학술대회 개최
“제주도 자체 기록원 설립부터 시작” 제안

제주학연구센터는 20일 제주문학관에서 ‘제7회 제주학대회 전국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제주학연구센터는 20일 제주문학관에서 ‘제7회 제주학대회 전국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만에 하나 발생할 국가적 위기 상황에 대비하면서, 동시에 제주관광을 고려한 ‘국가기록원 제주 아카이브스 겸 기록전시관’을 제주에 설립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제주학연구센터는 20일 제주문학관에서 ‘제7회 제주학대회 전국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 주제는 ‘제주의 기억과 기록 그리고 아카이브’로 정했다. 

기조발표자로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장을 지낸 김재순 전 관장을 초청했다. 김재순 전 관장은 국가 차원의 기록 관리 흐름을 살피면서, 제주의 새로운 기록 인프라 조성을 제안했다.

“제주만의 온·오프라인 기록 인프라 필요해”

김재순 전 원장은 1992년 정부기록보존소(현 국가기록원) 연구직 1호로 입사해 2022년 퇴임할 때까지 국가기록원의 역사를 몸소 겪은 인물이다. 제주도민들에게는 1998년 12월 정부기록보존소 부산지소에서 ‘제주4.3수형인 명단’을 발견해 세상에 알린 인물로 알려졌다. 

김재순 전 원장은 인류 문명 발전을 위한 3대 문화창조 기관으로 박물관, 도서관, 그리고 기록관을 꼽았다. 기록관은 “국민주권에 입각해 대통령이나 도지사 등 위정자들의 공적 활동에 관한 기록물들을 철저히 보존하고 사후 공개하는 일을 수행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1980년 광주 민주항쟁과 당시 군사정권이 남기지 않은 근거, 기록들은 체계적인 기록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생생한 사례다.

김재순 전 원장은 공공기록물법을 시행한 2000년 1월 1일부터 대한민국의 정부 기록 관리가 보다 제도적으로 이뤄졌다고 봤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까지, 국가 기록물의 관점에서 볼 때 새로운 정부가 등장하면서 꾸준히 발전한했지만 동시에 매 정부마다 문제점도 발생했다.

김재순 전 원장은 “우리나라 기록관리 발전을 가로막은 핵심 요인은 국가기록원의 기관 위상이 낮다는 점”이라면서 “아카이브스 시설과 전산관리시스템 등 인프라는 어느 선진국 못지 않은 수준”이라면서 국가 차원의 기록관리 개혁 과제를 제안했다.

김재순 전 나라기록관장.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김재순 전 나라기록관장.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국가기록원 위상을 미국 등 선진 사례처럼 독립기관으로 강화 ▲문재인 정부에서 분리시킨 대통령기록관을 국가기록원과 다시 통합 ▲공식 결재문서는 비밀 등으로 관리, 지정기록물 대상은 자유로운 토론, 중간 검토 등 과정상에서 생산된 기록물로 제한 ▲노무현 정부 상태에 머물러 있는 공공기관의 기록 관리체계를 선진모델로 발전 ▲국가기록원과 각급 기관 기록관의 조직 및 인사배치 기준을 제도화 ▲기록물관리 전문요원 제도 개선 등을 제시했다.

김재순 전 원장은 2015년 제주에 국가기록원 시설을 설치하는 계획을 실무자로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실현까지 진전시키지 못했다. 

김재순 전 원장은 “현행 공공기록물법상 제주도권역에는 중앙정부 소속인 국가기록원 분원과 제주도청 소속 아카이브스가 설립돼야 한다”면서 “지금도 제주도권역 중앙정부 소속기관들은 국가기록원으로 기록을 이관하고, 제주도청 등 지자체 정부기관에서 생산하는 기록은 제주도 기록관 등에 산재돼 있다. 박근혜 정부 시기에 이런 구조적 문제점을 극복하고 남북한 긴장관계 등을 고려해 제주도에 국가기록원의 권역별 아카이브스 시설을 설치하려는 계획을 추진한 바 있다. 핵전쟁 등에 대비해 안전한 최첨단 보존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실시했다. 이 시설과 함께 연간 약 1000만명 이상 국내외 관광객이 제주도를 방문하는 것을 고려해 국제수준 전시관도 설치할 것을 검토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15년에서 멈춘 연구용역을 실천하는 동시에 제주도청 소속 기록관에서 제주도에 관한 주제별 디지털 컬렉션 구축 작업을 연례 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서울시, 경상남도, 청주시 등 자체 기록원을 구축한 타 지자체 사례를 들며 제주만의 온·오프라인 기록 인프라를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고문헌 속 제주, 구술 기록, 영상으로 담은 제주인

주제 발표자로 나선 한국학중앙연구원 전경목 명예교수는 “조선시대에는 제주를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이러한 점은 특히 고문서에 잘 드러나 있다. 우선 섬에 출입하는 선박과 사람을 통제하는 것이 안전하게 다스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각 포구마다 관리를 둬 왕래하는 선박과 사람을 단속했다”고 옛 자료를 통해 설명했다.

특히 “1629년(인조 7) 조정에서는 제주민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출륙 금지령이 내렸다. 그 후 약 200년 간 지속되면서 제주인들은 더욱 고립됐고, 섬 고유의 언어, 풍속, 문화 등은 그 독자적 특색이 더욱 강해졌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이를 특색으로 인정하지 않고 미개화 혹은 미문명화 상태를 강고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파악해 어떻게든 유교화하려 강제했다”면서 탐라순력도 속 ‘건포배은’에 등장하는 신당 철거를 예로 들었다.

전경목 명예교수는 “고문헌을 살펴볼 때 한자로 기록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이미 당시 신분을 통해 취득된 것이고, 한자로 단순하게 사실을 기록한다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이미 지배층의 시각이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것”이라며 “(고문헌) 연구를 하기 전에 시각의 교정과 보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화여자대학교 정연경 교수는 “구술사는 사료로서 진실 찾기라는 본래 목적 이외에 문화 콘텐츠 창작, 트라우마 치료 등에도 활용 가능하다”라며 “구술은 그저 말을 함으로써 새로운 진실을 만나게 되고 때로는 고통을 치유하는데 힘이 되기도 한다”고 구술의 힘을 강조했다.

정연경 교수는 “구술사는 사람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엘리트 뿐만 아니라 다수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을 세상에 드러나게 할 수 있다”면서 “구술 자료가 수집만이 아니라 활용 및 보존까지 통합적으로 관리돼 세대를 넘어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스토리 AHN 안현미 대표는 영상 기록 ‘제주여성 생애사 ― 제주여성 허스토리’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안현미 대표는 “1900년대 초반에 태어나 일제강점기, 제주4.3, 민주화 운동, 국제자유도시, 특별자치도 지정 등 바람 타는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온 제주 어르신들은 그들의 삶 자체가 하나의 작은 박물관”이라며 “한 사람의 시간은 영상기록으로 역사가 된다”고 남겼다.

제주학연구센터 조정현 전문연구위원은 “제주에 산재돼 있는 제주학 관련 아카이브와 네트워크를 통합해 제주학 포털 아카이브 사이트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전문가와 시민 참여를 확대하는 오픈 아카이브를 활성화하고, 시민 아키비스트 양성 과정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아카이브 자료를 스토리뱅크나 문화산업 분야와 효과적으로 연계하는 ‘콘텐츠화’도 모색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학술대회 참가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학술대회 참가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인구 10만명 공주시 보다 못한 제주 아카이브

종합 토론에서 공주대학교 박지훈 교수는 “공주학연구원의 아카이브 사업은 국립 공주대학교의 인적 자원과 공주시의 경제적 지원으로 운영된다”면서 “공주학연구원은 시민활동가를 임명해 활동을 독려하고, 공주대학교 교수들을 포함해 문화유산대학원의 지원, 시민운동단체인 공주향토문화연구회의 왕성한 활동에 도움을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공주시 아카이브는 현재 수집 기록물이 약 8만4679건인데, 제주학 아카이브는 5만3000여건에 불과하다. 지역의 소도시인 공주시에 비해 6배 이상의 인구를 보유한 제주의 아카이브 수집 자료 건수가 적다”고 꼬집었다.

제주대학교 김치완 교수는 “제주도정의 교체와 관계없이 제주학연구센터의 가치중립적인 시행이 이뤄지려면, 제주학연구센터의 독립성 확보 뿐만 아니 그동안 지역학 연구성과를 축적하고 있는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제주학회 등과의 협력 강화가 선결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김나영 학예연구사는 “제주지역 각 기관마다 생산된 아카이브를 제공하고 있지만 제공 시스템 별 차이를 보인다. 아카이브 전문 인력이 부재하고 예산·장비도 부족하다. 생산물 특성상 용량이 크기에 전문 데이터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고, 생산된 기록물이 단순히 제공-열람에 그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자료 이용 시 혼선을 주는 복잡한 절차도 해결 과제”라고 꼽았다.

제주대학교 정용복 언론미디어 팀장은 ▲제주 사회의 기록 연구자 양성 ▲아카이브 운영 기관 공식화 ▲아카이브에서 더 큰 상생 공동체로의 확장 ▲아카이브를 지역민의 플랫폼으로 확장 ▲지역 저널리즘의 아카이브 활성화 등을 제시했다.

연합뉴스 변지철 기자는 “흩어져 있던 문화요소들을 많은 사람들이 쉽고 흥미있게 알 수 있도록 재미있는 스토리를 가미해 영상기록 또는 언론기사, 동화책, 소설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많은 연구자, 기자, 학생 등이 참고할 수 있도록 제주학 아카이브 시스템 개선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제주학연구센터 김미진 전문연구위원은 “구술 조사 자료를 아카이브화 하는 과정에서는 ▲객관성과 신뢰성의 문제 ▲원천 자료의 보관과 공개의 문제 ▲영상 기록과 문자 기록의 문제 등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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