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김동현, 북콘서트 성황리 개최
“4.3은 명사가 아닌 동사, 오늘의 4.3 찾아야” 강조

제주문학학교는 22일 오후 7시 제주문학관 대강당에서 김동현 평론가 초청 북토크 ‘기억되지 못한 말들’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제주문학학교는 22일 오후 7시 제주문학관 대강당에서 김동현 평론가 초청 북토크 ‘기억되지 못한 말들’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제주에서 활동하는 문학평론가 겸 문화운동가 김동현(제주민예총 이사장)의 솔직한 매력과 신념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제주문학학교는 22일 오후 7시 제주문학관 대강당에서 김동현 평론가 초청 북토크 ‘기억되지 못한 말들’을 개최했다. 이날 북토크는 김동현 평론가의 최신 저서 ‘기억이 되지 못한 말들’(2023, 소명출판)을 소개하면서, 인간 김동현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눴다. 진행은 경희대학교 일본어학과 손지연 교수(글로벌 류큐오키나와연구소장)이 맡았다.

평론집 ‘기억이 되지 못한 말들’은 오키나와, 김시종·김석범 작가 등 재일제주인, 1991년 제주 등을 통해 제주와 4.3의 다양한 모습을 곱씹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은 자기 고백과 같은 책이라 더욱 애착이 간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초고를 고치면서 계획했던 발표 시기보다 1년 가량 시간이 더 걸렸다. 출판사 사장에게 혼나기는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시간이 더 소요된 만큼 “글을 다시 쓰고 자료를 읽다보면서 내가 4.3에 대해 알고 있다는 생각이 오산이자 오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들추는 것 뿐만 아니라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들추는 일이 필요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4.3을 알게 되면서 제주는 말을 빼앗긴 땅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 말이었다. ‘빨갱이’라는 낙인은 이념적 폭력만이 아니었다. ‘말하는 입’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채찍이며, 말의 기억을 빼앗는 약탈이었다. 제주의 말은 고통을 기억하는 제주 사람들의 몸이었다.”

- ‘기억이 되지 못한 말들’ 가운데

김동현은 4.3과 제주 개발이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제주시 애월읍 한담리에는 지역에서 계속 살았던 주민이 한 명도 없다. 카페나 빈 공터일 뿐이다. 살았던 기억이 사라지는 건 장소를 잃어버리는 일과 다를 바 없다”면서 “4.3이 물리적 폭력이었다면 그 이후 국가 주도 개발은 은폐된 폭력이었다. 모습은 다르지만 폭력의 구조는 똑같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통 4.3에 대해 75년 전 시간을 오롯이 기억하고 재현하는데 관심을 두는데, 우리가 진짜 던져야 할 질문은 오늘의 4.3은 무엇일까, 구조적 폭력이 우리에게 작동된다면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라며 “이런 개발의 구조는 제주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1972년 일본에 반환된 이후 ‘부흥’이라는 국가 주도 개발이 이어진 오키나와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제주는 특수한 사례가 아닌 냉전 체제 속에 반복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동현(왼쪽), 손지연.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김동현(왼쪽), 손지연.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김동현은 “내가 만약 오키나와 작가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4.3과 제주를) 협소하고 단순하게 바라봤을 것”이라며 “오키나와 그리고 제주는 각자가 처한 현실을 겹쳐보면서 질문을 해야 한다. 이 시대에 국가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시종, 김석범 등 재일제주인들의 문학에 대해 “문학 연구자로서 그분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분들의 작품을 이야기할 수 있어, 난 행복한 사람”이라며 “두 사람의 문학은 과거의 문학이 아닌 지금의 문학이고, 여전히 살아있는 질문이라고 본다. 김석범 선생이 1925년인데 지금도 글을 쓴다. 두 분의 문학은 일본어라는 언어적 장벽이 있어서 한국 문학에 뒤늦게 도착한 편지와도 같다. 이제는 답장할 때가 됐다. 여러분들도 각각 답장한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충만한 책 읽기가 될 것”이라고 추천했다.

“법-제도’에 기대어 말하는 제주 4.3이 우리가 말하는 ‘4.3의 완전한 해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여전히 ‘법-외부’에 남아있는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이 ‘법-제도’의 내부만을 지향할 때 4.3은 ‘법-제도’로 축소되고 왜소화될 수밖에 없다. 4.3이 형해화된 조문으로만 남는다면 그것이야말로 ‘4.3의 실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법의 이름만 남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4.3의 진실’은 아닐 것이다.”

- ‘기억이 되지 못한 말들’ 가운데

김동현은 “4.3은 명사가 아닌 동사”라고 규정했다. “이전에 자기가 썼던 글들이 지금도 좋아 보이면 퇴보한 것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4.3도 ‘이만하면’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퇴보할 수밖에 없다”면서 “4.3 희생자가 3만명이라고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삶은 그 자체로 무겁다. 4.3의 비극을 상징하는 인물을 여럿 이야기 하는데,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는 그 시절에 살았던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여전히 말하지 못하는,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을 이제는 역사가 품어야 할 때가 아닌가. 때론 과오도 있다. 불완전한 인간들의 불완전한 혁명을 꿈꾼 시간이 있었지만 그들의 과오를 오늘의 잣대로 가혹하게 재단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들을 기억하는 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몫”이라고 밝혔다.

“그리하여, 1991년을 말하기 위해, 1991년 5월을 그리기 위해, 그 스물의 낯선 불안과 두려움을 다시 생각한다. 오래 묵혀두었던 고백처럼, 다시 기형도를 꺼내 읽으며 알약처럼 쏟아졌던 오월의 청춘들을 부른다. 강경대, 박승희, 김영균, 천세용, 김귀정, 그리고 제주의 양용찬. 죽어서 열사가 되었던 그들과 살아서 비겁했던 우리와, 분분했던 청춘의 낙화와 그리고, 또 그리고…, 이제는 사라져 버린 스물의 시간들을…. 눈물과 울분과, 취중을 핑계로 내질렀던 고함들과, 비겁하고 비겁해져서 살아남은 모두의 나날들을…. 남아있는 사람들의 눈으로 달려와 가슴에 박혀버린 오월의 불꽃들을….”

- ‘기억이 되지 못한 말들’ 가운데

김동현.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김동현.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그는 책에서 밝힌 1991년 5월의 기억을 “언젠가는 꼭 말하고 싶었던 기억”이라고 어렵게 풀어냈다. “1991년 학번인데, 3월에 입학하고 4월 29일 경찰에 잡혔다. 강경대 열사 기일이라서 입학하자마자 추모시를 썼는데, 시를 낭송하고 그날 바로 잡혀갔다. 아버지가 도청 버스 담당 주무관으로 계셨는데, 경찰에 빌려줬던 그 (도청) 버스에 실려서 경찰서로 끌려갔다”고 밝혔다.

김동현은 “무서웠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때라서 그때 받았던 경험이 내겐 오랫동안 트라우마였다. 무서워서 도망 다녔다. 그래서 미안했다. 제주대학교 운동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기억”이라며 “1991년 5월의 시간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제주에서 어떻게든 ‘공부’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 시간을 복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야 지금 우리의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나름의 아픈 기억을 끄집어냈다.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의 역사와 문학을 배우며 누구보다도 4.3을 비롯한 제주의 비극과 역사를 깊고 치열하게 응시해온 김동현은 여전히 고향 제주에 살며 이 산문들을 썼다. 

- ‘기억이 되지 못한 말들’ 권성우 문학평론가 추천사 중에서

김동현은 이날 북토크에서 “매번 다른 작가 북토크의 사회를 보다가 이런 자리에 서니 굉장히 떨린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겠다” 등 긴장감과 흥분감을 내내 감추지 않았다. 행사 장소인 제주문학관 대강당은 좌석이 가득 찰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현장에 참석한 4.3중앙위원회 김종민 위원은 “언론사 기자로서 김동현을 처음 만났다. 내가 잠깐 서울에 있었을 때였는데, 김동현 기자의 글을 보기 위해 제민일보 홈페이지에 들어갈 정도로 문장이 참 좋았다”면서 “개인적으로 기자 출신 가운데 문장력으로 손에 꼽는 세 사람이라면 ‘오름나그네’의 저자 김종철, 문학평론가 송상일, 그리고 김동현”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북토크 현장 모습.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북토크 현장 모습.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김동현 역시 ‘가장 좋아하는 소설, 소설가, 인물’을 묻는 진행자 질문에 “오키나와 작가 오시로 다쓰히로의 ‘신의 섬’, 김석범, 김종민”이라고 화답했다.

김동현은 “팔자에도 없는 평론에 TV, 방송까지 나가면서 저를 날카롭고 까질하다고 보실 수 있겠지만, 저 가정적이고 부드러운 남자다.(일동 웃음) 딸이 좋아하는 스파게티에 등뼈찜, 칵테일도 잘 만든다”고 쾌활하게 이야기했다.

진행을 맡은 손지연 교수는 “김동현의 글은 에두르지 않고 기교를 부리지 않고 가슴으로 쓰는 글이다. 그래서 내가 좋아한다”고 강조했다.

김동현은 “요즘 별명이 자판기다. 각종 성명서에 기획안, 심지어 뮤지컬 대본까지 쓰면서 별명이 붙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이 재미있다”면서 “오늘 찾아오신 분들은 내가 잘 살아와서 온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똑바로 살아보라는 격려로서 왔다고 생각한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단도리 하면서 살겠다. 언젠가 뭐가 되든 (나만의 문학을) 써보겠다”고 소감을 남겼다.

김동현 평론가와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김동현 평론가와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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