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45) 친척은 옷 위의 바람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궨당 : 권당(眷黨). 친족과 외가 친척으로서 이종과 고종을 통틀어 일컫는 말.
* 우잇 : 위의 

크고 작은 선거 때면 한바탕 ‘궨당 보름’이 분다. / 사진=제주MBC 다큐멘터리 영상 갈무리
크고 작은 선거 때면 한바탕 ‘궨당 보름’이 분다. / 사진=제주MBC 다큐멘터리 영상 갈무리

“그 집 보라. 잔치나 상을 당거나 집을 지을 때민 이디저디서 와랑시랑 돌려왕 폴 거더붙영덜 일허는 거. 우리고치 친척이 어성 고적헌 집은 눈 떵 보지 못헌다.(저 집 보라. 잔치나 상을 당하거나 집을 지을 때면 여기저기서 떼거리로 몰려와 팔 걷어뭍여서들 일하는 거. 우리같이 친척이 없어서 고적한 집은 눈 떠서 보지 못한다.)”

권당은 이를테면 벌족(閥族)이다, 자손이 번창해 밖으로 당당하게 세(勢)를 내세우는 싱싱한 가문(집안)이다.

‘옷 우잇 보름’이란 사람들 앞에서 옷자락을 흔들며 위세(威勢)를 떠는 모습을 시늉함이다. ‘우리 집안은 이렇소’ 해서 거드름께나 피우는 것이다. 옷이 날개란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바람에 흔들어 태깔을 뽐내게도 되는 게 사람의 심성이 아닌가.

크고 작은 선거 때면 한바탕 ‘궨당 보름’이 분다. 김해 김씨, 제주 고씨, 군위 오씨 하며 씨족들이 하나로 뭉친다. 이게 결코 소소한 일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당락을 좌우할 만큼 영향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이 당 저 당 해도 궨당이 제일이여’란 구호가 나왔겠는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논리인가.

지연, 학연 위에 혈연이 군림하기도 한다. 종씨가 하나의 조직으로 구체화되면서 우리 성씨가 당선돼야 한다고 일어서기 십상팔구다. 공감대가 형성되면 위력을 발휘한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 대선 때만 해도, 입후보자의 성씨들이 대놓고 운동에 나선다. 족보가 유용하게 활용될지도 모른다.

당선되면 궨당이니, ‘옷 우잇 보름’이라 흐뭇해 할 게 아닌가. 가문이 그만한 위세를 떨치게 됐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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