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극단 사자자리 이광호, 최성연

지난 6월 1일부터 6일까지 제주 소극장 세이레아트센터에서 열린 공연 ‘아무 것도 아닌 일로’는 여러모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제주 신생 극단 ‘사자자리’의 창단을 알리는 공연이면서, 동시에 프랑스의 작가 나탈리 사로트(Nathalie Sarraute, 1900~1999)의 대표 동명 희곡을 제주 뿐만 아니라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연극 ‘아무 것도 아닌 일로’는 공연 자체의 규모나 서사의 크기는 소박하다고 볼 수 있는, 일상 이야기에 가까운 작품이다. 무대 위 두 사람은 친구 관계다. 그런데 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무언가 불만이 있는 듯, 썩 유쾌하지 않은 분위기로 극은 시작한다. 속마음을 드러낼 듯 드러내지 않으면서 표면적인 이유에서 시작해 종국에는 각자의 깊은 속마음까지 끄집어내며 폭발하는 과정은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남녀노소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나, 늘 인간관계를 신경 쓰기 마련이다. ‘아무 것도 아닌 일로’는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고민하고 신경 쓰는 부분들을 짚으며, 공감대가 높은 작품으로 기억에 남는다. 중의적인 느낌이 강한 원작과 달리, 다소 구체적인 설정까지 부여하면서 각색은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언어유희로, 인형 소품과 영상을 사용한 과감한 연출로, 관객과 함께 하는 구성 등으로 웃음을 강조한 부분도 눈에 띈다. 사자자리 공연 덕분에 ‘아무 것도 아닌 일로’ 극본은 정식으로 번역돼 최근 발간됐다.

극단 사자자리 창단 작품 ‘아무 것도 아닌 일로’ 공연 모습. / 사진=사자자리
극단 사자자리 창단 작품 ‘아무 것도 아닌 일로’ 공연 모습. / 사진=사자자리
극단 사자자리 창단 작품 ‘아무 것도 아닌 일로’ 공연 모습. / 사진=사자자리
극단 사자자리 창단 작품 ‘아무 것도 아닌 일로’ 공연 모습. / 사진=사자자리
극단 사자자리 창단 작품 ‘아무 것도 아닌 일로’ 공연 모습. / 사진=사자자리
극단 사자자리 창단 작품 ‘아무 것도 아닌 일로’ 공연 모습. / 사진=사자자리

사자자리는 연극인 이광호(52), 최성연(53) 부부가 함께 만들고 운영하는 극단이다. 두 사람은 연극 예술인이라는 공통점 이외에 타 지역 출신으로 제주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공통분모를 가진다. [제주의소리]는 추석을 앞두고 이광호, 최성연 부부를 만나 제주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환경에서 연극을 체득하면서 다른 예술관을 형성했지만, 서로가 지니지 못한 부분을 존중하고 있었다. 흡사 톱니바퀴 같은 관계는 예술관뿐만 아니라 각각의 인격체로서도 서로를 보완하고 채워주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제주다움이나 소재에 구애 받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제주에 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새로운 것을 찾으면 그것이 나의 제주 연극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제주 정착 연극인 부부 최성연(왼쪽), 이광호. / 이하 사진=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제주 정착 연극인 부부 최성연(왼쪽), 이광호. / 이하 사진=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다음은 인터뷰 전문

Q. 두 분 모두 각각 연극 예술을 학문으로 또 현장에서 체득해왔는데, 제주에 온 계기와 과정이 궁금하다.

A. 이광호
1999년부터 2012년까지 프랑스에서 연극 유학 생활을 보냈다. 솔직히 말하면 귀국 후에 원하는 만큼 일이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볼까’라는 생각으로 궁리를 하다가 2014년 제주에 왔다. 그 이전에 제주는 여행 삼아 몇 번 왔다 갔다 했었고, ‘제주에서 한 번 살아봐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서울과 거리가 멀어서 부모님의 잔소리도 피할 수 있었다.(웃음) 연극을 하려고 제주에 온 건 아니었는데, 살 궁리를 하다 보니 다시 연극을 하게 됐다. 처음에 제주국제대학교에서 강의를 맡았고 이후 제주 연극인들과 하나 둘 인연을 맺으면서 다시 연극을 시작했다. 마치 자연스러운 순리처럼 말이다.

A. 최성연
외국에 나가는 걸 좋아하고, 성격상으로도 정체돼 있는 것을 뒤집고 또 새로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글 쓰는 일 이외에 요가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데, 요가를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그런데 마침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해외로 가질 못하니, 국내 어디라도 가서 독학이라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찾다가 연극 후배의 제안으로 제주로 떠난 시기가 2020년 늦가을이다. 후배가 ‘제주에 선배(이광호)가 사는 집이 있다’고 말해줬는데 그 집이 바로 지금 사는 집이다. 남자가 사는 집 치고는 깔끔했고 방도 따로 있어서 두 달 동안 지내면서 남편을 처음 만났다. 

Q. 두 분이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된 과정은 어떤가.

A. 최성연
내 경험이지만, 예술인 가운데는 자기 생활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 중에서도 과음으로 벌어지는 행동들에 무척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술은 안 마신다. 체질적으로도 그렇고 술을 마시고 나서 불필요하게 감정이 생겨나고 인식하는 것에 대해 싫다고 하더라. 자기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 내게 큰 점수였다.(웃음) 여기에 대화를 많이 하다보면서 느꼈는데, 뭐랄까 담백하면서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는 면도 좋아보였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좋아졌다.

A. 이광호
제주에 혼자 살면서 가끔 친구들이 놀러오면, 특별히 대접할 거리는 없지만 알아서 청소하면서 집에서 지내라고 했었다. 그렇기에 누가 오더라도 부담은 가지지 않았다. 이 사람과 만날 때 역시 후배가 어떤 친구랑 같이 온다고 해서 별 생각 없었다. 그런데 제주에 오자마자 두 달 살이를 한다고 하길래 흔치 않아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알고 보니 예전에 서울 대학로에서 이 사람이 쓰고 연출한 연극을 봤었다. 그 작품명이 ‘안녕 피아노’였는데, 속됨과 고귀감이 대비되는 내용이다. 내가 원래부터 상반되는 것들이 등장하는 작품을 좋아했는데, ‘그때 그걸 쓰고 만든 사람이었구나’라고 새롭게 관심을 가졌다. 그 다음에 제주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 무척 많았다. 그러면서 내가 부족한 것들을 전혀 문제로 삼지 않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받아주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2021년 1월부터 함께 살기 시작했고, 그해 9월 9일에 혼인 신고를 했다. 비둘기처럼 잘 살자는 마음과 외우기 쉽게 9월 9일로 정했다. (웃음)

Q. 제주에도 함께 연극 활동하는 부부들이 있다. 같은 예술인으로서 부부 사이는 어떤가?

A. 최성연

최성연. ⓒ제주의소리
최성연. ⓒ제주의소리

나는 2004년에 신춘문예에 당선돼 희곡작가로 등단했다. 그렇지만 작품을 쓰면서 좌절을 꽤 겪었다. 스스로는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대중들이 좋아해주지 않고, 내 희곡을 연극으로 잘 표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정작 연출이 내 작품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예술이 대중의 기호에 맞추기 보다는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새로운 감각에 눈을 뜨게 해주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점점 자기 세계가 넓어진다. 어쨌거나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니 희곡 대신 소설도 써봤지만, 공모에 떨어지고 하고 마음에 상처도 입으면서 연극에 염증까지 느꼈다. 요가를 만나는 시기도 그즈음이다. 요가는 미련과 집착을 없애는 방향을 기본으로 수련한다. ‘그래, 연극으로 꼭 성공할 필요가 있나? 인정받지 못해도 괜찮아’라는 마음을 가졌고, 요가를 더 공부하고자 제주에 왔다. 이 사람은 나보다 연극을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대중적이다. 대중의 눈높이를 생각하면서, 일단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자는 마음으로 접근한다. 그런 점에서 …… 서로가 보완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이번 ‘아무 것도 아닌 일로’를 공연할 때도 광호 씨는 ‘관객은 한번 스쳐 들을 때 모든 것을 캐치하지 못한다’고 강조하면서 관객 입장에서 생각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관객이 조금 더 명확하게 받아들이게, 작품을 만들지를 나보다 더 많이 고민하더라. 

A. 이광호 

이광호. ⓒ제주의소리
이광호. ⓒ제주의소리

이번 작품을 하면서 많이 충돌했다.(웃음) 프랑스 유학 시절, 초창기에는 공부가 너무 어려웠다. 그 이유가 모두 ‘언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어를 다 잊어버려도 좋으니 프랑스어를 익히고 싶다는 마음까지 가졌었다. 그런 상황에서 탈 언어화된 연극이 마음에 들었다. 와이프는 문학성이 살아야 하는 연극에 초점을 맞춘다면, 나는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할 때 문학에서 탈피한 연극까지 바라보는 입장이다. 관객은 준비된 상태로 작품을 만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관객 자체도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창작자가 잘못하면 ‘이게 뭔 소리지’, ‘지금이 무슨 상황이지’라고 의문을 가지고 놓쳐 지나가기 마련이다. 나는 그럴 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런 이유에서 난 선구가적인 교육적 연극을 좋아하지 않는다. 관객의 수준과 똑같은 위치에서 연극을 만드는 게 관객과 예술가가 함께 가는 것이 아닐까? 물론 너무 평이하게 일반화, 단순화되면 안 된다는 고뇌도 있다. ‘아무 것도 아닌 일로’를 와이프랑 함께 작업 할 때는 ‘왜 이걸 못 알아듣냐’면서 화가 나기도 했다. 올해 크리스마스에 두 번째 작품으로 낭독극을 준비 중인데 역시나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웃음) 결과적으로는 좋게 나오리라 생각한다. 

Q. 2021년에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올해 추석은 제주에서 맞는 세 번째 추석이다. 어떻게 보낼 예정인가?

A. 이광호
유학을 더해서 혼자 살았던 시간이 길다. 그래서 모르고 넘어간 것들도 많았다. 프랑스 유학 때는 추석을 모르고 지낸 적도 있다. 그때는 인터넷도 핸드폰도 지금 같지 않았으니 말이다. 결혼을 하고 나니 예전처럼 하면 안되는 것들을 알게 되는 계기가 바로 명절이다. 예전에는 굳이 명절이 아니고 전후에 부모님을 만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것에 특별히 신경을 쓰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그런 부분을 와이프가 옆에서 잘 이야기해준다. 그러면 나는 ‘그래야 되는구나’ 생각한다. ‘뉴스를 보니 사람들이 이동하는 구나’, ‘올해도 비행기를 타고 가야하는 구나’ 이런 식이다.(웃음) 오랜 시간 무디게 살았는데 결혼 후에 달라졌다. 

A. 최성연
늘 서울에서 살았고 가족도 가까운 곳에 있으니 명절에 고향이라는 느낌으로 찾아가본 경험이 없었다. 명절날, 가족을 만나기 위해 멀리 이동한 적도 당연히 없고. 그런데 제주에 와 있으니 남들이 많이 하는 귀성을 나도 하는구나 체감한다. 

Q. 앞으로 두 분의 활동, 극단 사자자리의 활동이 궁금하다. 제주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포부도 듣고 싶다.

A. 최성연
솔직히 연극에 대해 크게 미련이 없었는데 광호 씨가 연극에 열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같이 해봐야겠다 싶어서 극단을 창단했다. 제주에서 연극하는 극단이니 제주다운 것을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일종의 강박이 지역 예술가들에게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물론, 작가로서 제주에서 글을 쓴다는 건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신화, 해녀, 역사 등의 멋진 소재가 많이 있다. 다만, 내가 그쪽에 강점이 있진 않기에, 자연스럽게 제주에 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그것이 나의 제주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제주다운 것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찾고 모색하고자 한다. 언젠가는 제주에 대해 글로 쓰고 싶은 마음도 있다.

A. 이광호
BTS가 한국의 전통예술, 전통음악 안에 있지 않지만 누구나 한국의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제주에 살면서 느끼고 생활하면서 받는 감정으로 연극을 선정하고 만드는 자체가 제주의 것이라고 폭넓게 볼 수 있지 않을까. 기존에 존재하는 제주 소재를 굳이 끌고 와야 한다는 의무감은 없다. 와이프가 최근에 쓰는 작품 가운데 ‘섬’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제주 배경으로 쓴 건 아니지만 섬사람들의 순박함 등을 다룬다. 그것도 제주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일단 다음 작품은 크리스마스 즈음으로 잡혀 있다. 폴란드 동화 원작을 각색한 가족극이다. 장사하기는 참 안 좋은 작품이 될 것 같은데(웃음), 가족들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광호(오른쪽), 최성연 부부. ⓒ제주의소리
이광호(오른쪽), 최성연 부부. ⓒ제주의소리

#이광호
서울예술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 렌 2 대학에서 연극학 학사,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파리 10 대학에서 연극학 준박사 과정(DEA)을 마쳤다. 청강문화산업대학, 제주국제대학에 출강했고 현재는 제주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극단 사자자리 대표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를 2023년 6월에 제작, 연출해 공연했다.

#최성연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대학원을 졸업, 연극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4년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 작가로 등단했으며, 극작, 연출, 연기를 병행하며 활동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2012년 서울연극제 대상, 희곡상을 수상한 ‘그리고 또 하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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