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46) 글 타박은 양반 자식, 음식 타령은 후레자식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구승 : 타박, (불평불만으로)투덜거림
* 것 : 음식, 먹을거리

자라면서 무엇을 보고 듣고 행하느냐가 한 사람의 인생행로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 사진=픽사베이
자라면서 무엇을 보고 듣고 행하느냐가 한 사람의 인생행로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 사진=픽사베이

사람의 언행은 행동거지에 이르기까지 그가 처해 있는 환경이나 계층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선천적으로 타고난 품성이 없지 않겠으나, 어릴 적부터 성장하면서 보고 듣고 배우는 후천적인 환경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게 마련이다.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나머지 자식을 데리고 세 번씩이나 삶의 환경을 바꿨던 ‘맹모삼천지교’의 교훈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조석으로 경을 읽는 집에서 자란 아이는 성현의 가르침을 따라 예도를 실천 궁행(躬行)하면서 삶의 정도(正道)를 걸을 것이로되, 배우지 못한 집안에서 자란 아이는 사람의 도리를 익히고 행함에는 뜻이 없고 먹는 것만을 탐해 좋다 궂다 타령을 일삼는다 함이다.

자라면서 무엇을 보고 듣고 행하느냐가 한 사람의 인생행로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책(교과서)만 학습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말과 행동뿐이 아니라, 이를테면 입고 있는 옷차림이며 집에 오고 가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자라는 아이에겐 소중한 ‘교육과정’ 아닌 게 없다. 

바로 이것이다. 책을 멀리 한 채 만날 먹는 것이나 탐해 개돼지를 잡아먹으며 술판이나 벌인다면, 그 집 아이가 올바르게 자라 훌륭한 동량재가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글 구승은 양반자식, 것 구승은 호로자식’

‘글 구승, 양반 자식과 것 구승, 호로 자식’으로 말의 구성이 극한적으로 대립한다. 글엔 눈도 주지 않아 책장이라고는 넘길 줄 모르는 호로 자식은, 오랑캐 자식을 뜻하는 비속어이면서 배운 데 없이 제풀로 막되게 자란 사람, 곧 교양은커녕 버릇이 없는 사람을 뜻한다.

개천에서 용난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이룩한 귀한 성공일 뿐, 호박이 넝쿨째 굴러오겠는가.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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