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7돌 한글날] 온라인 타고 누비는 밈(meme) 문화
소멸 위기 제주어에 미치는 영향은?

제주어 보존이 한글을 지키는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제주어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 한글 고유의 형태를 가장 많이 간직한 언어다. 최근 맞춤법에 어긋난 밈(meme) 문화가 극심한 소멸 위기에 놓인 제주어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한글날 제577돌을 맞아 밈 문화를 소개하며 제주어 보존 필요성을 되짚는다. [편집자 주]

각종 밈의 파도 속에 제도적으로 제주어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보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제주의소리 이동건 기자
각종 밈의 파도 속에 제도적으로 제주어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보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제주의소리 이동건 기자

‘밈(Meme).’ 

이 낯선 영단어는 오늘날 국내외를 가릴 것 없이 온라인 문화를 상징하는 단어다. 보통 모방을 통해 유행하는 창작물을 일컫는데, 밈이란 단어 뜻은 몰라도 그 사례들은 한번쯤은 접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을 비롯한 국회의원, 도지사 등 정치인들의 발언과 행동은 밈으로 재해석돼 온라인 커뮤니티에 등장하곤 한다. 최근에는 정부 등 공공기관에서도 밈을 통한 재치 있는 정책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표 주자로는 충주시가 꼽힌다. 충주시 공식 유튜브의 구독자는 43만3000명에 달한다. ▲서울시(18만9000명) ▲대구시(9만3700명) ▲경기도(6만700명) ▲부산시(4만1000명) ▲제주도(2만7000명) 등 국내 지자체와 비교해도 압도적인 구독자 수를 자랑한다.

충주시 유튜브는 1분 내외의 짧은 영상들이 다수 올라와 있다. 조회수는 수십만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영상은 무려 893만회 조회수를 자랑한다. 2020년 5월에 올라온 최다 인기 영상은 코로나19 거리두기와 ‘관짝밈’을 묶고 엉성한 연기까지 더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렇게 충주시 유튜브의 상당수 영상은 국내외 가리지 않고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밈들을 실제 공무원들이 재치 있게 따라하는 방식이다. 

특히 짧지만 밈의 핵심을 찌르는 센스와 함께, 시시각각 밈의 유행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반응하는 모습은 ‘탈 공무원’이라는 호평이 나올 정도다. 영상 담당자 격인 충주시 공무원 김선태 씨는 공중파에도 출연하는 등 이미 명성이 자자하다.

충주시 유튜브 영상 목록. / 사진=충주시 유튜브 갈무리
충주시 유튜브 영상 목록. / 사진=충주시 유튜브 갈무리
제주도 공식 유튜브에서도 등장하는 밈. / 사진=제주도 유튜브 갈무리
제주도 공식 유튜브에서도 등장하는 밈. / 사진=제주도 유튜브 갈무리

제주도 공식 유튜브 채널인 ‘빛나는제주TV’ 역시 이러한 밈을 활용한 영상이 눈에 띈다. ‘문신 돼지’, ‘중꺾마’, ‘다나카’ 등 온라인 상에 회자된 밈들을 영상 제목 등에 활용했다.

밈의 학문적 바탕은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 내놓은 ‘이기적 유전자’에 근거한다. 

그는 밈이 모방을 통해 한 사람의 뇌에서 다른 사람의 뇌로 복제된다고 주장했다. 생식으로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유전자와 달리 언어, 사상, 태도, 유행과 같이 모방으로 정보를 전파한다는 설명이다. 밈의 어원은 ‘복제’라는 뜻의 그리스 단어 ‘mimema’을 ‘유전자(gene)’ 단어처럼 축약해 탄생했다는 설명도 있다. 

한글 파괴? 언어유희? ‘찐 제주 사투리’ 밈 유행

즐거움과 웃음을 준다는 평가와 함께, 다른 한편에서는 언어적 밈으로 한글이 파괴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예를 들어 ‘외않되(왜 안돼?)’, ‘승모(숙모)’ 등 밈들이 시시각각 생겨나고 있다. 

이렇게 잘못된 맞춤법 표기가 이뤄져도 대화가 가능하면서, 세대가 지날수록 맞춤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맞춤법을 제대로 인지하는 사람들에게 한글 밈은 유희적 요소로 머무르지만, 맞춤법을 잘 알지 못하는 세대가 접하는 한글 밈은 한글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덧붙여 갈수록 낮아지는 문해력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반대로 이 같은 밈 문화가 되레 한글의 위대함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잘못된 표기법임에도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만들어진 언어라는 해석이다. ‘밥 먹었삼?(밥 먹었어?)’ 등 초창기 한글 파괴가 유행했을 때도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단시간 유행으로 끝나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

제주와 관련해서는 ‘오리지널’에 가까운 제주 사투리가 밈으로 주목 받았다. 어르신들의 정겨운 제주어를 듣고도 그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밈으로 만들었다.

태풍 피해를 입은 제주 할머니의 제주 사투리가 화제가 됐다. / 사진=유튜브 갈무리
태풍 피해를 입은 제주 할머니의 제주 사투리가 화제가 됐다. / 사진=유튜브 갈무리

태풍 피해를 겪은 제주 할머니 뉴스에 표준어 자막을 삽입한 영상은 큰 주목을 끌었다. 이 할머니 영상에 음악을 넣어 ‘랩’처럼 편집하는 다른 영상까지 등장하면서 밈으로 쓰였다. 또한, 연예인이나 유튜버를 포함한 인터넷 방송인들이 제주어가 ‘외계어’처럼 들린다며 기괴하게 따라하는 모습이 회자됐지만, 잘못된 제주어 표기법 등이 정답인 것처럼 퍼져나가기도 했다. 

한 예로 ‘밥 먹으 맨(밥 먹고 있다)’을 들 수 있다. ‘~하고 있다’를 모두 ‘맨’으로 대체하면 된다거나 ‘~했어→핸’, ‘~있어→인’, ‘~없어→언’으로 모두 대체할 수 있다는 등의 잘못된 해석이 퍼지면서 ‘밥 먹언 맨?’ 같은 기괴한 표기법으로 바뀌어 유행하기도 했다.  

재미도 좋지만, 튼튼한 뿌리처럼 한글·제주어 자리 잡아야

제주어는 국제기구 유네스코가 인정한 ‘심각한 소멸 위기’ 언어다. 언어는 문화를 담는 그릇이라는 인식에 비춰 볼 때, 제주어는 제주 문화, 나아가 공동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제주어 밈을 유쾌하게 보면서, 마냥 즐겁게 볼 수만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주학연구센터 김순자 센터장은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밈으로 표현되는 유행어들은 이제는 확산 속도가 매우 빨라졌는데, 재미있고 좋은 의미도 있지만 부정적인 경우도 상당히 많다”면서 “유행어로 인해 세대가 단절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무엇보다 기존 어휘를 크게 훼손시키는 부분이 우려된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제주어를 지키는 것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방언으로서의 가치, 사회적인 가치, 그리고 국어학적으로의 가치를 모두 아우른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순자 센터장은 “요즘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제주어 어휘는 윗세대와 비교해도 많이 차이를 보이는, 제주어로 구분 지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제도적으로 제주어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보존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제주학연구센터도 제주어 종합 상담실을 운영하면서 올바른 제주어 활용을 돕고 있는데, 무엇보다 공교육 차원에서 제주어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 사회교육팀=한형진, 이동건, 원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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