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국의 시와 시작 노트] (41) 그리고 꽃잎이 지면

 

그리고 꽃잎이 지면

가을에 눈을 뜨고 
한겨울에 몸을 여는

고향 동백꽃은 
바닷바람을 사랑했지

그리고 나도 덩달아 
그 바람을 품었지

바람이 꽃 속에 들면 
이미 바람이 아니었네

그곳에 숨을 죽이면 
그건 곧 사랑이었네

그리고 꽃잎이 지면 
다시 바람이었네

/ 2013년 고정국 詩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시작노트

고향 남원읍 위미에는 동백 숲은 물론 동백에 관련된 사연이나 시들이 많습니다. 

그날 총소리에 뚝뚝 지던 송이송이
외삼촌 눈감던 날도
성城 안팎에 눈이 와서
겨우내 응달에 흘린
피 자욱이 서러운 꽃

사람도 임종 때면 저만한 마음일까
꽃 피고 꽃 지는 일…,
아 섬을 덮는 바람소리
떨어져 더 진한 송이
뜰을 쓸지
못하네. – 「동백꽃 중」

이처럼 저의 「동백꽃」들은 거의 서사적인 쪽에 피어 아픔을 대변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발표되는 「그리고 꽃잎이 지면」에 등장하는 동백꽃은 서정, 특히 사랑을 그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꽃과 사람 그리고 바람은 언제 어디서나 묘한 삼각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주 바람의 야성을 닮은 듯, 굴하지 않는 자존심과 자신만의 고유한 성정을 곧게 지켜가는 것이 고정국 시인의 삶과 시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타자 지향의 윤리학을 지닌 시인이다. 
그리움의 정서를 지닌 시어들이 그 윤리학의 결에 배어있다. 
고정국 시인은 동백과 바람의 만남과 헤어짐을 그림으로써 한 편의 색다르고 빼어난 사랑의 시를 빚어낸다. <중략>
시인이라면 누구나 노래할 만한 소재가 꽃과 바람이 아니던가? 
꽃이 바람을 머물게 하고 꽃 속에 머물던 바람이 꽃 지자 다시 바람의 본성을 회복하여 어디론가 불려간다는 단순하고도 당연한 서사가 텍스트 전체를 추동推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정국 시인이 그려내는 동백꽃과 바람은 다른 시인의 꽃과 바람과는 견주기가 어렵다. 
그는 예사로운 사연을 풀어내면서, 결코 예사로울 수 없은 삶의 기미를 포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기미는 은밀한 무늬처럼 스며 있다. 결코 눈에 띄는, 선명하게 돌출된 무늬가 아니다. 
단순한 듯한데 단순하지 않으며 예사로운 듯한데 예사롭지 않다. 
가장 소박한 언술을 흉내 내며 결코 그처럼 소박하거나 간단하지 않은 전언을 그 언술 속에 감추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평론가 박진임 교수는 이 작품도 마다하지 않고 작품 행간의 구석구석에 감추어진 
카잔차키스의 대작 『희랍인 조르바』의 생존율까지 들춰내고 있었습니다.


#고정국

▲ 1947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 출생
▲ 1972~1974년 일본 시즈오카 과수전문대학 본과 연구과 졸업
▲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 저서: 시집 『서울은 가짜다』 외 8권, 시조선집 『그리운 나주평야』.  고향사투리 서사시조집 『지만울단 장쿨레기』, 시조로 노래하는 스토리텔링 『난쟁이 휘파람소리』, 관찰 산문집 『고개 숙인 날들의 기록』, 체험적 창작론 『助詞에게 길을 묻다』, 전원에세이 『손!』 외 감귤기술전문서적 『온주밀감』, 『고품질 시대의 전정기술』 등
▲ 수상: 제1회 남제주군 으뜸군민상(산업, 문화부문),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유심작품상, 이호우 문학상, 현대불교 문학상, 한국동서 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등
▲ 활동: 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도지회장 역임. 월간 《감귤과 농업정보》발행인(2001~2006), 월간 《시조갤러리》(2008~2018) 발행인. 한국작가회의 회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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