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47) 호밋자루 잡을 줄 알아야 살림이 넉넉한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골갱잇자록 : 호밋자루
* 심을 줄 : 잡을 줄
* 알아사 : 알아야
* 노고록헌다 : 넉넉한다

1971년 8월~10월에 촬영한 서사라사거리 제주시오일장의 철물 좌판. / 사진=제주학아카이브, 이토 아비토
1971년 8월~10월에 촬영한 서사라사거리 제주시오일장의 철물 좌판. / 사진=제주학아카이브, 이토 아비토

골갱이는 밭에서 검질(잡초)을 맬 때, 곧 김맬 때 쓰는 도구다. ‘골갱잇자록 심을 줄 알아사’는 한마디로 농사지은 밭에 김맬 줄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농사일 가운데 밭 갈고 씨 뿌리고 거름 주는 일도 힘들지만, 그중 가장 고된 것이 김매는 일이다. 잡초가 돋아나 자라기 시작하면 그것들을 뽑는 데 여간 힘들지 않다. 잡초란 게 얼마나 모질고 그악스러운지 쉽게 물러서질 않는다. 

뽑고 돌아앉으면 또 돋아난다는 게 잡초다. 쇠비름, 제완지(바랭이), 괭이밥 할 것 없이 다들 극성스러운 것들이다.

특히 한여름 조밭에 끝없이 돋아나는 녀석들을 매느라 땡볕 아래 농부들은 구슬땀을 흘려야만 한다. 더군다나 조밭 검질(조밭 김매기)는 한 번으로 안된다. 두 불 혹은 세 불(벌)을 매야 한다. 행여 한 불만 맸다가는 잡초가 조보다 더 무성하게 자라나 농사를 망쳐놓을 것은 불 보듯 한 일이다.

그러니 김매는 호밋자루를 잡을 줄 알아야 비로소 살림이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농촌에서 살아가려면 밭의 김매기는 필수라는 것을 강조함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평생 가난한 신세를 벗어날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보면 좋다. 

‘노고록헌다’는 말은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모자람이 없이 삶이 편안한 모습을, 마치 그림으로 그려 내보이듯이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골갱잇자록 심을 줄 알아사 살림이 노로곡헌다.’

농촌에 살면서 빼놓을 수 없는 김매는 일을 해야만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음을 직설적으로 대놓고 말했다. 요즘을 불볕에 밭에 앉아 김매는 풍경을 보기 힘들다. 잡초를 제초제를 살포해 제거한다. 

농촌도 옛날의 농촌이 아니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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