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동상 광화문광장 건립 추진위원회 회장 맡아
“1999년 4.3특별법 발의자의 자기 모순” 지적

ⓒ제주의소리
변정일 전 국회의원이 이승만 동상 광화문광장 건립 추진위원회 회장을 맡아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4.3 진상규명에 일조한 제주 출신 변정일 전 국회의원이, ‘4.3 학살 책임자’로 평가 받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 건립에 ‘총대’를 매고 나서 논란이다. 

변정일 전 의원은 최근 ‘건국대통령 이승만 동상 광화문광장 건립 추진위원회(이하 이승만 동상 건립 추진위)’ 회장을 맡고, 18일 오후 2시 서울 프레스센터 20층에서 출범식을 개최했다.

이승만 동상 건립 추진위는 단체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서울 광화문광장에 이승만 동상을 세우기 위해 모인 조직이다. 뉴라이트, 개신교 등 극우-보수계 인사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정일 전 의원은 이날 이승만 동상 건립 추진위 출범식에서 “이승만 박사는 건국대통령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이승만 박사가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이제 늦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에 걸 맞는 동상을 국민운동으로 세워야 할 때가 됐다. 바로 지금 시작돼야 한다. 업적에 걸 맞는 장소는 광화문광장 밖에 없다. 이승만 박사의 동상이 광화문광장에 우뚝 세워질 때 국민통합이 이뤄질 것이다. 거짓을 몰아내고 진실을 되찾아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되돌려놓자”고 피력했다.

18일 열린 ‘건국대통령 이승만 동상 광화문광장 건립 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변정일 전 의원이 출범사를 밝히고 있다. / 사진=유튜브 갈무리
18일 열린 ‘건국대통령 이승만 동상 광화문광장 건립 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변정일 전 의원이 출범사를 밝히고 있다. / 사진=유튜브 갈무리

그러나 이 같은 행태는 ‘자기모순’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변정일 전 의원은 국회의원 재임 당시인 1999년 11월(제15대 국회), 같은 제주 출신 국회의원이었던 양정규, 현경대와 함께 ‘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등에관한특별법안’을 공동 발의한다. 이 법안은 여야 협의로 만든 단일안으로 정리돼 그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1월11일 청와대에서 역사적인 4.3특별법 제정 서명식을 가진다.

앞서 변정일 국회의원은 1994년 2월2일 여야 의원 75명의 서명을 받아 ‘제주도4.3사건 진상규명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4.3 진상규명에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승만은 4.3 당시 대규모 인명 피해를 일으킨 초토화 작전의 원인제공자로 지목된다. 정부 4.3진상조사보고서에는 4.3 과정에서 이승만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실들이 곳곳에 명시돼 있다.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는 “(4.3) 초토화의 책임은 당시 정부와 주한미군사고문단에게 있다고 판단된다. 이승만은 대통령으로서 군 통수권자이며, 미군은 당시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또한 제주4.3추가진상조사보고서Ⅰ에 따르면, 이승만 대통령은 1949년 1월 21일 국무회의를 통해 “미국의 원조를 받기 위해서는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여 제주사건을 발근색원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1991년 11월  ‘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등에관한특별법안’ 대표 발의자에 변정일(노란색) 국회의원의 이름이 명시돼 있다. / 사진=국회 누리집
1991년 11월 ‘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등에관한특별법안’ 대표 발의자에 변정일(노란색) 국회의원의 이름이 명시돼 있다. / 사진=국회 누리집
/ 사진=제주4.3진상조사보고서
4.3 인명 피해의 원인으로 이승만을 지목하는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내용.  / 사진=제주4.3진상조사보고서
/ 사진=제주4.3진상조사보고서
4.3 인명 피해의 원인으로 이승만을 지목하는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내용.  / 사진=제주4.3진상조사보고서

이승만이 ‘4.3 학살의 원흉’이라고 손꼽히는 상황에서, 제주 출신으로 4.3 입법에 참여한 변정일 전 의원이 동상 건립에 나서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4.3 연구에 천착해온 연구자 A씨는 [제주의소리]와 통화에서 “4.3 민간인 희생에 있어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을,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전후 수많은 민간인 희생, 독재로 인한 민주주의 훼손, 4.19혁명의 원인을 제공한 문제적 인물을 수도 서울의 상징적인 공간에 세운다는 발상이 말이 되는지 묻고 싶다”면서 “더욱이 그런 행태를 4.3특별법 제정을 위해 노력한 제주 출신 전 국회의원이 나선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화가 나기 보다 서글픈 감정이 든다”고 혀를 찼다.

다른 연구자 B씨는 익명을 요구한 인터뷰에서 “변정일 의원이 현직 시절 4.3특별법을 발의했다고 하지만,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평가가 높다. 변정일 의원 소속 정당인 한나라당이 경쟁 상대였던 새정치국민회의를 고려해 선거를 앞두고 선수를 쳤다는 것이다. 변정일 의원이 발의한 4.3특별법 안을 보면 4.3에 대해 ‘1948년 4월 3일을 기점으로 제주도 전역에서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2일까지의 진압과정’이라고 규정한다. 이 내용대로라면 1948년 4월 3일 이전까지는 제주에서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갑자기 도민들이 들고 일어나 경찰지서를 습격했다는 해석이다. 그래서 당시에도 4.3 단체 등에서 변정일 안을 강력히 반발했고, 결국 추미애 국회의원이 발의한 4.3특별법 안을 중심으로 정리가 됐다”면서 지금의 행태가 그리 새롭지 않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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