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국의 시와 시작 노트] (42) 강아지풀 이야기

강아지풀 이야기 

동네 떠돌이 개가 일주일째 보이지 않았네
태풍 불던 그 밤, 울담 반쯤 무너진 자리
간간이 피 섞인 울음이 그곳에서 들렸네

태풍 지나가고 타인처럼 아침이 왔네
피 묻은 강아지들이 어미젖을 빨고 있었네
분홍색 새끼 발바닥, 꼬물꼬물 거리며

강아지 눈뜰 무렵에 어미개가 눈을 감았네
하나 둘 강아지들도 빈 젖 문 채 눈을 감았네
먼 동네 날짐승들이 한참 오르내렸네

물 젖은 열하루 달이 젖병 하나를 들고 왔네
주인 없고 어미 없고, 머리 없는 강아지들이 
다투어 그 젖병 앞에 애완용 꼬리를 치고 있었네

/ 2013년 고정국 詩

 

#시조스토리텔링 「강아지풀 이야기」 중에서 

시와 산문의 경계에 대해 질문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쉽게 표현한다면 산문은 말과 글을 사용, ‘설명’을 통해서 내용을 전개해나가는 장르라 한다면
시는 눈빛, 몸짓, 침묵 등 ‘느낌’으로 전하려는 장르이면서 이미지, 리듬, 토운(tone) 등의 음향적, 미적 효과를 드높이려는 장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엔 개나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조차 차별대우가 극심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 충성하다, 결국 사람에게 버림받은 유기견의 한 모습을 「강아지풀 이야기」라는 별도의 제목으로 시조스토리텔링에 담아봤습니다. 

바람의 분량만큼 
허리 굽혀 살아온 그대
묻지 않는 말에 
고분고분 답하는 
그대

아무 일, 아무 일 없다며 
눈물 꾹꾹
삼키는 

그대. 「강아지풀」 전문(2000)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시작노트

온갖 권력이나 외세의 풍파에 흔들리는 연약한 민초들의 모습을 강아지풀의 이름을 빌려 오래 전에 노래했던 단시조입니다. 
강아지풀, 동백꽃, 엉겅퀴, 개망초, 민들레, 삘기꽃, 해바라기, 인동초, 별꽃 등등의 풀꽃들의 이름으로 노래했던 나의 작품들을 보고 어떤 평자는 ‘슬픈 반역의 노래’라 했습니다. 
러시아 저항시인 네크라소프는 “슬픔도 분노도 없는 자는 이미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 “슬픔도 분노도 없는 자는 이미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여 말하고 싶습니다. 
하여, 나의 작품에 ‘슬픈 반역의 노래’라 했던 그 평자야말로 아직도 봉건주의 사상에 젖어있는 슬픈 왕조의 후손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묻지도 않는 말에 고분고분 답하면서도 아무 일 아무 일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눈물을 꾹꾹 삼켜야 했던 우리 이 ‘아랫것들’ 즉 천민賤民의 슬픔이야말로 우리 선조들이 품고 살았던 애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정국

▲ 1947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 출생
▲ 1972~1974년 일본 시즈오카 과수전문대학 본과 연구과 졸업
▲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 저서: 시집 『서울은 가짜다』 외 8권, 시조선집 『그리운 나주평야』.  고향사투리 서사시조집 『지만울단 장쿨레기』, 시조로 노래하는 스토리텔링 『난쟁이 휘파람소리』, 관찰 산문집 『고개 숙인 날들의 기록』, 체험적 창작론 『助詞에게 길을 묻다』, 전원에세이 『손!』 외 감귤기술전문서적 『온주밀감』, 『고품질 시대의 전정기술』 등
▲ 수상: 제1회 남제주군 으뜸군민상(산업, 문화부문),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유심작품상, 이호우 문학상, 현대불교 문학상, 한국동서 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등
▲ 활동: 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도지회장 역임. 월간 《감귤과 농업정보》발행인(2001~2006), 월간 《시조갤러리》(2008~2018) 발행인. 한국작가회의 회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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