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48) 개미 좁쌀 방울 물어 들이듯이 한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개염지 : 개미(일개미)
* 좁쏠 : 좁쌀

미물도 저렇게 바지런히 일하는데 하물며 사람임에랴 하고 한소리한 게 아닌가. / 사진=픽사베이
미물도 저렇게 바지런히 일하는데 하물며 사람임에랴 하고 한소리한 게 아닌가. / 사진=픽사베이

곤충 중애 꿀벌이 일을 많이 한다 하나, 개미 또한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개미 가운데서도 일개미. 쬐끄만 녀석이 제 몸뚱이보다 훨씬 큰 먹잇감을 입에 물고 나른다. 어영차 어영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개미가 먹이를 등에 진 것을 본 적이 없다. 입에다 물고 운반하는 것이 볼수록 신기하기 짝이 없다.

비탈진 흙더미 사이, 길이 없는 걸 미처 몰랐으리라. 새 길을 내며 걷는다. 흙 알갱이들이 쓸려 흘려내려도 다시 고개를 쳐들고 먹잇감을 물고 있다. 억척스레 더 빠르게 길을 재촉할 뿐 포기하는 일이 없다. 

일개미가 좁쌀알 만 한 것을 물고 가는 일의 현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면, 저 미물에게도 엄연한 저들의 삶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새끼가 있고 가족이 있을 게 아닌가.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저 험난한 길을 숨 가쁘게 죽자 사자 헤쳐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한낱 개미가 부지런히 일하고 있는 걸 바라보면서 혀를 차며 칭찬하는 것 아니다. 미물도 저렇게 바지런히 일하는데 하물며 사람임에랴 하고 한소리한 게 아닌가.

그러고 보면, 게으른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일없이 빈둥거리며 소일하는 한량이 적지 않은 세상이다. 모아놓은 재산도 없이, 장년이 되고 노년에 이르도록 밭 뙤미 하나 없어 남의 밭을 빌려 농사짓는 빈털터리, 그런 형편에 다리 뻗고 누울 막살이(조그만 움막 같은 집) 한 칸 있을 턱이 없다.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아이고, 내 팔자야.” 어디 대고 팔자타령하고, 신세 한탄할 일이기나 한가. 

“저걸 눈으로 똑똑히 보아라. 개미는 좁쌀 방울일망정 버리지 않고 물어들인다”고 들이대 놓고, 일장 훈시하고 있는 것만 같다.

찌렁찌렁한 목청이 들리지 않는가.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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