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86) 아다니아 쉬블리, ‘사소한 일’, 전승희 옮김, 강, 2023.

/ 사진=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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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 공격과 이스라엘의 대대적 보복 공격은 해당 지역의 분쟁 차원을 넘어 국제사회의 이해 관계가 개입되는 전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아울러 지구촌은 팔레스타인 대 이스라엘로 나뉜 정치적 대립과 갈등이 첨예화되는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유럽과 미국의 정치권력은 평화와 인도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이스라엘의 파상적 공격을 지지하고 있는 이중잣대를 드러낸다. 그야말로 이스라엘은 서방측 지지 아래 압도적 군사력으로 하마스를 괴멸시킨다고 하면서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대한 무자비한 무력 행사를 벌이고 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모든 유형의 전쟁이 그렇듯 삶과 생명을 한순간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몰고 공포의 사위에 갇혀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존재로 죽어갈 수밖에 없는 가자 지구의 민간인이 겪는 언어절(言語絶)의 현실이다. 

2.
때마침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의 장편 ‘사소한 일’이 번역 출간된 바, 이 작품은 최근 팔레스타인 대 이스라엘 전쟁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건국 무렵(1948) 팔레스타인이 겪었던 역사적 참상을 되짚어가는 과정 속에서 대면하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이 밀도 있게 재현되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빼어난 작품으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독일의 문학단체 리트프롬이 주관한 2023년도 리베라투어상을 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주관 단체는 이 작품이 반유대주의를 표명한다는 이유로 이 상의 수상을 전격적으로 취소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속단할 수 없지만, 이것은 서구 사회에서 이스라엘 건국과 관련하여 오랫동안 내면화된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대한 정치윤리적 성찰이 과잉된 가운데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그 어떤 이성적 비판과 성찰을 수용하지 못하는, 그래서 ‘사소한 일’이 함의한 재현적 진실을 일방적 유대주의로 곡해한 것은 아닐까.

이 작품을 읽으면서, 팔레스타인 문학을 공부할 때 기록해뒀던 메모장을 뒤적여보았다. 팔레스타인 문학은 “팔레스타인들의 초상만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체성을 가진 인간이든 품고 있게 마련인 공포, 고독, 안전과 정의에의 추구, 위엄, 자유와 평화에 대해 노래”를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소한 일’도 예외가 아니다. 

3.
작중화자 ‘나’는 팔레스타인 여성으로 여느 때처럼 이스라엘 군의 검문과 경계를 받으면서 직장에 출근한다.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테러범과 테러조직을 응징한다는 명분 아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검문하고, 건물을 겨냥한 폭격과 총격이 일상 다반사가 된 현실 속에서 ‘나’는 우연히 어떤 기사를 읽는다. 그 기사의 주요 내용은 내가 태어난 사반세기 전 1949년 같은 날 팔레스타인 소녀가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총살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나’를 비롯한 주변의 삶, 특히 이스라엘 점령 지구에서의 팔레스타인의 삶이 폭력과 살상의 복판에 놓여 있음을 상기할 때 아무리 우연의 일치라고 하지만 ‘나’의 출생일과 같은 날 과거에 있었던 팔레스타인 한 소녀의 죽음은 팔레스타인이 겪은 숱한 상처와 고통의 역사에서 지극히 사소한 사건에 불과할 따름이다. 하지만 작가의 퍼스나인 ‘나’는 “사소한 것들에 집중하는 시각을 진실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이자 진실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증거”(88쪽)라고 생각하며, 그 소녀의 죽음과 연루된 진실을 찾아 나선다. 

물론, 그 진실에 닿는 과정은 결코 순탄한 일이 아니다. 우선, 이스라엘 점령 지구의 각 경계를 통과해야 하는 일이 쉽지 않다. 군사 분할 구획에 따라, 서로 다른 구역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은 명목상 인정되는 것이지 실질적으로는 자유 왕래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이렇게 이스라엘 점령 지구에서의 팔레스타인의 삶은 사실상 각 지역의 경계로 분리된 고립적 일상을 살고 있는 셈이다. 이 소설은 이처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사소한 이동 자체가 결코 사소롭지 않은 채 관리와 감시와 경계를 동반한 검문이 일상화된 아주 특별한 일로 간주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이런 난관 속에서 가까스로 “1948년 5월 14일의 이스라엘 국가 수립 공표 이후 이집트군이 최초로 공격한 정착지”(127쪽) 니림을 방문한다. 니림 지역을 소개하는 소책자에는 이스라엘 군인의 활약상과 무운이 기록돼 있고, 어느 기록 사진에는 그 시기 원주민 팔레스타인과 유대인 이민자들 사이의 관계를 보이는 것도 있다. 그 사진은 “양측 사이에 두터운 우정과 깊은 신뢰가 생겼고 베두인 사람들(팔레스타인-인용)은 니림의 청년들(유대인-인용)에게 자기 칼도 맡겼다고. 하지만 그런 관계는 전쟁이 발발하면서 끝났다고 덧붙인다.”(129쪽) 말하자면,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제사회와 영국은 팔레스타인 위임통치 과정 속에서 이스라엘 건국의 바탕을 제공하는 대신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주권 및 토지 소유권을 빼앗는, 그리하여 팔레스타인 원주민에게 나크바(NAKBA)의 대참사를 안겨준다. 이후 팔레스타인은 주변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 세 차례의 중동전쟁을 겪으면서 난민의 처지로 전락하는가 하면, 현재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로 분리된 채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에 있는 팔레스타인 민족 수난사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4.
‘사소한 일’은 예의 역사를 직접 겨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가 팔레스타인 소녀의 죽음의 진실을 찾아가는 길에서 도움을 받기 위해 이스라엘 지도를 펼쳐보는 대목이 있는데, 지도상에서 그 현장 “마을이 표시된 곳을 찾아보지만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이곳이라고 생각되는 지도상의 지역은 텅 빈 황색 공간이 차지하고 있다.”(148쪽)는 것이야말로 그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지를 생각하도록 한다. 이스라엘 건국 후 이스라엘은 점령 지구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주도면밀히 늘려가면서 팔레스타인 원주민의 삶의 터전과 유의미한 장소성을 철저히 소거했듯이, 그 실재가 바로 이스라엘이 만든 해당 지역의 지도다. 즉 유대 이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만이 삶의 장소일 뿐, 팔레스타인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삶의 내력은 사막과 초원을 나타내는 지도의 황색 공간으로만 표기될 뿐이다.

그런데 바로 이 황색 공간의 길 위에서 ‘나’는 경이로운 체험을 한다. 한 노파를 ‘나’의 차에 태우고 가다가 노파는 차에서 내려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구들 속으로 사라”(152쪽)졌는데, 노파가 사라진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는 마을의 흔적은커녕 “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군사훈련 지역이나 사격장 등만을 가리키고 있다.”(153쪽) 바로 그곳은 ‘나’가 그토록 찾고 싶어하던 “사반세기 이후 내 생일과 우연히 일치하게 된 그날의 범죄”(133쪽)가 벌어진 현장일 공산이 매우 크다. 그 현장에는 팔레스타인 소녀를 총살했던 증거인 양 총알 케이스가 있었고, 그때 그곳에서 함께 죽었던 낙타 몇 마리가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이런 것을 보고 기시감(旣視感)이라고 하듯, ‘나’는 사반세기 전 범죄의 현장에 있으면서, 이번에는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속절없이 죽어간다. 무고한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향한 적대적 경계와 무력 행사로 인한 살욕(殺慾)은 사반세기 후에도 반복 재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비극적 죽음은 이렇게 사반세기 전 팔레스타인의 삶의 장소였던 곳과 사반세기 후 이스라엘 점령 지구의 군사 훈련장이 포개진 곳에서 조우한다. 여기서 흡사 데칼코마니적 비극의 죽음의 장소와 관련하여 다음 대목을 눈여겨보자.

특히 이 지역에서 우리의 창조성과 혁신성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북부와 중부 지역에서 그랬듯 우리는 네게브 사막도 번성한 문명 지대로, 교육과 발전과 문화가 꽃피는 번창하는 중심지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다. 지금은 비록 온통 황무지로 보이지만, 우리가 나무를 심고 농업과 공업을 가능하게 한다면, 점차 사막의 크기가 줄고 이곳은 인간의 주거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실현하려면, 우선 이 일대의 가장 포악하고 가장 파괴적인 적들을 무찌르고, 이곳을 최대한 잘 지켜내야 한다.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것 자체가 이런 비전을 완수하기 위한 첫걸음인 것이다.(51쪽)

분명, 작품 속 이스라엘 장교의 이 같은 말은 이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유대인 정착촌을 만들어 이스라엘 국가의 발전과 안녕을 공고히 해왔다. 그리고 이 장교는 작품 속에서 팔레스타인 소녀를 성폭행하고 총살한다. 즉, 장교의 발언이 증명하듯, 타자를 전면 배제하고 파괴하는 폭력을 동원한다. 평화와 공존과 상생의 언어는 증발돼 있다. 황무지를 번성한 문명 지대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그러므로 매우 낯익다. 서구의 근대는 그들만의 근대가 문명이고, 타자의 삶은 미개와 반문명으로 간주하여 계몽의 미명 아래 얼마나 무참한 폭력과 죽음의 향연을 탐닉해왔는가. 그렇다. 그들의 근대는 야만의 언어와 핏빛의 제의(祭儀)가 아니었는가.

 5.
‘사소한 일’을 읽는 내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지옥도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지금 당장,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향한 반문명적 야만의 공격을 멈춰야 한다. 문득, 또 다른 기시감일까. 작품 속 팔레스타인 소녀의 비극적 죽음이 일어난 시기, 1949년 8월 무렵은 제주 4.3사건 초기 군경 토벌대 측이 제주도 전역을 대상으로 한 초토화 작전 이후 죽음으로 점철된 제주의 현실과 공명하고 있지 않은가. 팔레스타인의 수난을 응시하는 이유다.


#고명철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세계문학, 그 너머》, 《문학의 중력》,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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