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시인 나기철은 최근 새 시집 ‘담록빛 물방울’(서정시학)을 펴냈다.

본인의 일곱 번째 시집에서 저자는 4부에 걸쳐 시 작품 50여편을 실었다. 중앙로 지하상가에서, 제주시청 건널목에서, 평화양로원에서,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보고 느낀 것을 자신만의 감성과 언어로 풀어낸다.

어머니
나기철

초겨울 밤
시청 앞 건널목
가로등 옆
늙지 않은 여자
검정 비닐에 싼
밀감, 바나나 네 묶음
앞에 앉아
몰래 울고 있다

밀감, 만 원 내미니
오천 원이라며
바꿔오겠다고
일어서려 한다

쑥부쟁이 하나
피었다


늙은 병사의 말
― 양동윤
나기철

이윽고 캄캄해진 구제주
버스 정류장 앞에서 만났다.

폐암 와 1년 선고받았는데
살아났어. 이제 갈 순 없어서.
이 나이에도 도민연대 매일 나가고
4.3 못 그만두는 것 솔직히 나처럼
할 후배 없어서. 글 쓰는 이들이 현
장에 안와. 20년 전 머무르고 있고.

50년 전 심지다방 판돌이,
30년 한결같은 얼굴.
이제 성자 같다.

책 소개 글을 쓴 문학 평론가 고명철은 “그의 짧은 시의 시적 표현이 자아내는 시적 감응력은 ‘좋은’ 서정시로서 서정적 미의식을 바탕으로 하되, 나기철만의 독창적 개성의 미의식을 잘 벼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아, 살아서 내가 시집을 일곱 권이나 내다니!”라는 짧지만 인상적인 소감을 전했다.

나기철은 1953년 서울 출생으로 12살 때 제주로 이주했다. 1987년 ‘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작은 詩앗·채송화’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시집으로 ▲섬들의 오랜 꿈(1992) ▲남양여인숙(1999) ▲뭉게구름을 뭉개고(2004) ▲올레 끝(2010) ▲젤라의 꽃(2014) ▲지금도 낭낭히(2018) 등을 펴냈다.

풀꽃문학상, 서정시학상을 수상했다.

102쪽, 서정시학,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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