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희곡집 ‘매국노’ 발간...이완용, 고종 등 실존 인물 재해석 눈길

사진=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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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극작가 장일홍이 새 희곡집 ‘매국노’(평민사)를 발간했다.

다섯 편의 희곡 작품을 수록한 새 책에서, 저자는 표제작 ‘매국노’를 통해 일제 합병 직전의 대한제국을 소재로 다뤘다. 1882년부터 1919년까지 대한제국 말기를 주요 인물들과 함께 보여준다.

특히, 을사오적의 한 명으로 대표적 친일(親日)반민족행위자인 대한제국 관료 ‘이완용’을 재해석하는 시도에 나서 눈길을 끈다. 열강이 득세했던 혼돈의 한반도에서 ‘악역을 자처한 인물’이라는 일각의 평가를 염두한 창작 시도로 읽힌다.

저자는 이완용을 친일적 성향이긴 하나 “을사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다면 고칠 수 없는 것을 고치고, 한일병합이 불가피하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자”는 현실주의와 실용주의적 사고를 지닌 인물로 설정했다.

작품 속에서 이완용은 외세의 힘을 빌려 동학군을 제압하는 시도를 반대하고, 러시아 공사의 내정간섭도 거부하면서, 일진회의 한일합방 촉구 성명서에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라고 순종에게 권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면서 “강대국 일본에 의탁해 우리의 국력을 기르고, 언젠가 우리의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이 한일합방 조약의 본문에 “대일본제국은 추후 대한제국이 부강해지면 통치권을 반환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을 넣고, “매국노인 내가 스스로 배를 갈라 민족과 역사 앞에 속죄하려 한다”며 자결하는 상상을 덧붙이며 현실주의자로의 면모를 강조한다.

특히 1919년 독립선언서를 서명·발표한 민족대표 33명에 이완용을 포함시키자는 과감한 설정까지 더한다. 

저자는 이완용을 재해석했듯이 전봉준, 김옥균, 안중근, 고종 등 다른 실존 인물들을 다루면서 고유한 상상을 덧붙인다. 안중근 의사는 감옥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나름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미했다. 고종에 대해서는 여색을 밝히는 군주라는 상상을 입혔다.

이런 점에 대해 저자는 “이 희곡의 궁극적 목적은 이완용이라는 과거의 인물을 통해 현재의 시대 상황을 돌아보고 미래의 한국을 전망하는 데 있다”면서 “미화나 옹호,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이나 분식은 아니”라고 책 속에서 밝혔다.

특히 “이완용은 1894년의 갑오경장으로부터 시작해서 아관파천, 독립협회 활동, 을사조약, 정미 7조약, 한일합방, 식민통치에 이르기까지 우리 근대사의 중요 고비마다 관련되지 않은 곳이 없다”고 가치 평가를 떠나 정부의 핵심 관료였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러면 “망국의 책임이 이완용에게 있다는 것은 기업 경영에 비유하자면, 기업이 망했을 때 오너(회장)와 대주주가 아닌 월급쟁이 사장이나 전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역사적 사건이 전개된 당시의 시대적,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특정인에 대한 일방적 매도는 바른 역사관이라 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희곡을 통해 이완용을 변호하려는 게 아니라 ‘이완용의 변명’이라고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희곡집에서는 ‘매국노’ 이외에 실존 호스피스센터 자원봉사자 유성이 씨의 수기를 참고로 한 ‘낯설고 두렵고 아름다운 세상의 마지막 날’, 일제 경찰에서 군정 경찰, 그리고 정부 수립 이후에는 정권의 하수인으로 충성을 바친 출세주의자를 그린 ‘털 없는 원숭이傳’, 여자 세계 권투 챔피언이란 소재를 다룬 ‘챔피언 김남숙’, 화려한 남성편력을 자랑하는 여인을 그린 ‘여덟 남자를 사랑한 여자’ 등의 희곡 작품을 실었다.

저자는 발간 후기에서 “앞으로 희곡집과 산문집 각 1권씩 2권을 더 낼 계획이다. 이 지상에 왔다 갔다는 흔적으로 11권의 책을 남기는 셈”이라며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 내 입술에 남는 한 마디는 ‘감·사·합·니·다…!’ 오직 그 외침 뿐”이라고 밝혔다.

332쪽, 평민사,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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