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교육春秋] (45) 수능 앞두고 고민해보는 대입제도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치러진 수능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치러진 수능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교육부는 지난 10월 10일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시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10월 25일 대전을 시작으로 10월 30일 서울, 11월 9일 광주, 11월 10일 부산에서 각각 권역별 학부모 설명회를 개최한 후 11월 20일 대입개편 시안 대국민 공청회를 서울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교육부는 2028 대입개편 시안에 대해 국가교육위원회를 중심으로 심층 논의 및 의견 수렴을 진행한 후, 올해 안으로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왜 대학입시제도를 개편하려고 할까? 교육부의 발표에 따르면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미래를 대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수능시험과 고교 내신을 개선하겠다는 것이 개편의 이유다. 2028 대학입시제도는 올해 중학교 2학년부터 적용된다. 2025년부터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개정되고, 고교학점제가 전면 적용된다. 교육부가 밝힌 대로 고교학점제로 공부하게 되는 학생들에게 맞게 대학입시제도를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2028 대학입시제도를 이해하려면 고교학점제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 글에서는 고교학점제의 현실성이나 실천성에 대한 논의는 제외하고 이론적 관점에서만 살펴보자. 교육부의 온라인 자료에 따르면, 고교학점제는 잠자는 교실을 깨우고 미래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기르고, 학생 개개인의 다양성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되는 제도다. 한마디로 학생들의 수준과 흥미, 적성 등을 고려한 학생 중심의 맞춤형 교육제도로 이해된다. 교육부의 고교학점제 누리집에 나온 자료들만 살펴보면, 수업시간에 학업을 포기하고 잠자는 아이가 없는 교실, 자기 주도적 학습을 통해 다양한 능력과 적성을 찾아가는 학교를 그리고 있다. 기존에는 수업시간에 잠을 자도 교실에만 앉아 있으면 졸업을 할 수 있었지만, 고교학점에서는 그럴 수 없다. 출석 일수가 아니라 과목 이수학점이 기준에 도달해야 졸업할 수 있다. 과목 이수 기준은 공통 과목의 경우 학업성취율 40%와 과목 출석률이 2/3이상으로, 기준 이상 출석을 하고 점수가 100점 만점에 40점은 넘어야 한다는 의미다. 40점을 넘지 못하면 출석을 채워도 과목 이수를 할 수 없고 그러면 졸업할 수 없다. 물론 학생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40점을 넘을 수 있도록 학생 맞춤형 학습을 지원하는 교사를 비롯해 제도적 지원체계가 마련된다. 

고교학점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수업도 개설된다. 학생들은 주어진 교육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수업을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이 배우고 싶은 수업의 개설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고등학교에 개설된 수업은 모든 학교가 비슷한 과목을 가르치는 획일화된 정해진 과목을 다수가 듣는 시스템이었다면, 고교학점제는 아이들의 적성에 맞게 수업이 개설되는 다양한 과목을 소수가 듣는 교육환경으로 변화한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전공 선생님의 수급 상황이 학교마다 다르다 보니,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 중심으로 수업이 개설되었지만, 앞으로는 학생들이 희망하면 본인의 학교에 개설되지 않은 수업을 이웃 학교에 가서 들을 수도 있고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온라인 수업으로도 들을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고교학점제는 지금까지의 교육환경을 완전히 바꿀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로 가기 위한 도깨비방망이처럼 보인다. 그런데, 고교학점제가 도깨비방망이가 되려면, 대입제도가 연계되어야 한다. 지금도 수능준비로 일부 수업이 자습시간으로 둔갑해버린다는 걸 기억하면, 대입제도가 함께 바뀌지 않으면 고교학점제도 무늬만 바뀌는 셈이다. 2028 대입제도 개편안을 많은 이들이 기다린 이유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대입제도 개편안은 고교학점제를 무력화시킬 것으로 보여서 걱정스럽다.

교육부가 지난 10월 10일 발표한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을 살펴보면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학업포기 내모는 내신 9등급제, 2025부터 5등급 체제로’라는 문구다. 현행 9등급제를 5등급제로 바꾸면 1등급이 4%에서 10%로 확대된다. 그러면 학업 포기가 사라질까? 교육부는 2021년 고1은 9등급 상대평가, 고2‧3은 절대평가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표에서는 그렇게 할 때 학업중단이나 수업참여 동기가 상실되며 과도한 경쟁이 조장되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등학교 3년 내내 전과목 5등급 내신을 절대평가와 함께 상대평가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전교조가 정부의 개편안에 대해 전국 고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등학교 교사 5명 중 4명가량이(78%) 교육부 개편안에 따라 내신평가가 전과목 5등급 상대평가로 변경되면 고교학점제가 무력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상대평가를 하게 되면 소위,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듣는 수업을 피하거나, 성적을 받기 좋은 과목으로 몰리는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수능에서는 9등급의 상대평가를 유지한다고 한다. 그러면, 학생들의 흥미나 적성에 맞는 과목 선택은 힘들어지게 되고 고교학점제는 파행을 맞게 될 것이다. 교원단체와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까지 수능과 내신을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로 바꾸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수능을 대학 입학 자격 고사로 바꾸자는 주장도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대입제도나 내신제도를 바꾼다고 치열한 입시경쟁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의 발표대로 ‘2028 수능 국·수·탐 선택과목 없이 통합 평가’를 한다면 수능과목에 포함되지 않은 과목은 외면받게 되고, 그만큼 사교육 의존을 심화시키고, 수능 이외의 과목은 외면받게 될 것이다. 다음 주에 수능이 있다. 삶을 갈아 넣어 준비한 초조한 시간이 0.01점의 차이로 낙오자가 되는 것은 얼마나 비합리적인가. 0.01점 차이가 공부할 자격을 가르는 기준이 되긴 어려울 것이다. 연대가 아니라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꿈꾸기 전에 죽음을 먼저 떠올리는 비극의 교육현장에 작은 변화의 걸음이 필요하다. 

고교학점제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절대평가를 실시하고, 수능을 자격시험으로 바꾸자. 어떻게 해도 자연적 우연성과 사회적 운의 효과를 완화하고, 지금의 불평등한 구조를 개선하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가능한 영역에서 조금이라도 바꿔 나가야 하지 않을까. 교권 보장이 교육현장을 살리는 전부일 수는 없지만 하나의 출발이 될 수 있듯이, 내신과 대입제도의 개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움직이는 게 필요한 까닭이다.


#안재홍

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KBS제주 TV 시사프로 '집중진단' 진행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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