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환진의 제주 돌챙이] ⑦ 돌창고 장인 홍의백(1942년생, 제주시 도련동 거주)

‘돌(石)’은 제주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손꼽힌다. 그 돌을 일상에 맞게 다듬는 존재가 바로 제주 돌챙이다. 제주도, 제주도문화원연합회 도움을 받아 조환진 대표(돌빛나예술학교)가 제주 돌챙이 12명을 인터뷰해 책으로 묶었다. 바로 ‘제주 돌챙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제주의 근현대사를 헤친 돌챙이들의 철학과 인생을 생생한 제주어로 정리했다. [제주의소리]는 조환진 대표와 함께 ‘제주 돌챙이’에 소개된 12명을 차례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돌창고 장인 홍의백(1942년생, 제주시 도련동 거주) / 이하 사진=조환진
 돌창고 장인 홍의백(1942년생, 제주시 도련동 거주) / 이하 사진=조환진

1970년대부터 융자금 받아서 돌창고 많이 짓엇주
돌로 지으민 돈이 많이 들거든

Q. 창고 지을 때는 보통 몇 사람이 일합니까?

옛날 짓은 돌 건축 중에도 잘 쌓은 것들도 이서나서. 돌일 허는 사람을 석공이랜도 허고 돌챙이랜도 허고. 마찬가지 그게 그거주. 돌쟁이랜도 허고 석공이랜도 허고. 창고 지을 때는 서넛이도 허긴 허지만 자기대로 돌 다듬앙 발판 위에 올려놔 가멍 햇주게.

그땐 석공 일당이 잡부 일당에서 곱을 주니까 그것도 헐만 허댄 해나서. 제주에 그 당시에는 그렇게 일헐 게 엇어서. 과수원 창고 2단, 3단 놓고 올라강 돌을 싸젠허민 위험허메. 발판 밟지 못 허는 사람은 올라가지도 못허여. 그때는 사람으로 3단 위에다 돌을 다 날라다 올렸주게.

Q. 돌집이나 돌창고는 언제까지 지었습니까?

제주에 돌로 감귤창고 짓는 거, 김영삼 대통령 때 융자금이 나와나서. 그때는 돌로 지어신디 김영삼 대통령 이후 보조금이 안나오니까 부로끄로 많이 지엇주. 돌로 지으민 돈이 많이 들거든. 그 이후는 돌로는 별로 안해서.

돌 사이사이 시멘트 발라졍 이신 거. 우린 돌만 쌓으민 돼여. 미장허는 사람이 돌아가멍 미장하는 거고 우린 돌만 쌓아 주민 돼여.

돌집도 짓어신디 우리집 같은 경우는 옛날 초가집인디 밭담보다 조금 신경 써서 쌓은 거라서 잘 쌓은 게 아니주게. 새마을 사업 허멍 초가집을 걷고 집 고치는 비용을 정부에서 보조해주난 보조금 받앙 했는데, 옛날 초가집도 돌을 졸바로 쌓은 게 아니라, 4.3사건 후에 급허게 집 지으멍 흙 올려 놓으멍도 쌓고 해신디 그기 다 뜯고서 새로 쌓은거라.

초집인 경우 어떨 때는 돌로만 쌓고 어떤 때는 흙을 놓으면서 쌓기도 허는디 조금 돌담 높이가 올라가민 흙 노멍 쌓으민 돌 붙이기가 좋아. 옛날에는 돌을 제대로 쌓지 못헌 거지. 흙 노멍 쌓으민 돌을 얼마 다듬지 안해도 괜찮아. 흙노멍 쌓아도 단단하고 괜찮대.

그루후제 가족 공동묘지 몇 백 평씩 만들기 시작허난 석공들이 그런 일 맡앙 많이 했주게. 예전에는 산담에 보기좋게끔 막 치레허는 사람별로 엇어나서게. 이후로 산담도 막 보기 좋게, 막 치레허는 사람들이 생겨신디, 그런 담은 하루 몇 덩어리 붙이질 못해여.

과수원담 무너지민 우리가 가서 보수도 하고,
그때는 석공 일당이 잡부 일당 곱이라

Q. 돌담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습니까?

지금은 쪼끔만 해도 똠이 좔좔 허는디, 우리 젊은 때는 여름에도 계속 일 해나서. 우리가 처음 일 시작 헐 땐 각 마을마다 돌일 허는 사람이 별로 엇어서게. 돌아댕기멍 허는 사람이 혼두 사람 있긴 이신디 지금 모냥으로 잘 싸는 것이 아니고. 옛날 모냥으로 밭담이나 싸고 울타리나 싸고 허지 경 좋게 싸지 안 해서. 게난 이거 과수원 생김 시작허난 과수원에 보롬 막는다고 해서 밭에 돌아가멍 전부 다 담을 쌓았거든.

육지에서 흉년드난 육지사람들이 제주도에 와가지고 과수원에서 구덩이도 파고 해신디 그런 사람들은 돌일을 원 해보지도 않아신디 석공이랜 허멍 담 싸고 해서게. 돌 몬직아보지 안 헌 사람들이 과수원 담을 쌓게 되민 담이 제대로 되질 안 해났주게. 과수원담 막 무너지민 우리가 가서 보수도 하고 경해났주게. 그때는 석공 일당이 잡부 일당보다 곱이라. 석공이랜 행 가민 잡부 일당 곱 이상 받는 거라

난 제주에 살멍 밭담이라도 좀 올려놔 나니까 일 맡앙 해보라고 해서 한 거라. 과수원 담부터 시작허멍 건축 같은 것도 맡앙 허면서 일을 시작헌 거지. 나영고치 일했던 석공덜. 이 동네는 우리하고 일했던 사람이 별로 어서.

봉개도 더러 이서나고. 봉개에 가서 한 두어 달 가족묘지 헐 때는 봉개 사람덜 하고 같이했는데 그때는 돌도 전부 와리해서 벌르멍 해서.

돌을 사다가 한 것이 아니고 전부 벌르멍 돌 실르고 죽장 돌 쌓고 해나신디. 그 근방에서 돌  벌렁. 그루후제 북촌서 와리들 허멍 허난 공사 맡으민 북촌에서 돌 실어오랜 허민 실어다 주고 해나서.

돌 쌓는 사람이 돌도 깨카부댄 허는디 경 안허매. 돌은 쌓아도 돌 못 깨는 사람이 있고, 돌을 깨는 사람도 돌을 못 쌍는 사람이 이서. 우리는 처음 할 때부터 일을 맡앙 허젠 허면은 돌 깨는 일이고 뭐이고 다 맡앙 허지 안 허민 안 되겠대. 우리도 처음은 쌓는 것부터 허당보니까 돌 깨는 거 안 허민 안 되여. 그루후제 연장들 허영 돌도 깨고 다 헌거지.

우린 돌창고 지으나 담을 쌓으나
어느 정도 헐만이 해줬거든

Q. 과수원담부터 쌓으셨네요?

처음엔 과수원담들 답는 거 막 허당 나중엔 창고들 있잖아, 돌창고! 과수원에도 전부다 창고헌댄 해서 돌로 지어신디. 창고 쌓는 것도 보통 12자 높이로 허민 양쪽 높은 데는 15자, 5미터 이상 쌓는디. 그때는 돌을 해당 아래서 다듬으멍 자기 키만큼 쌓아놩.

그 위로 올라가젠 허민 발판을 놓는디 1, 2, 3단계까지 올라가사 되어. 아래서 돌 다듬엉 발판 위에 올려놩, 2단계에서 자기 키 정도 거진 쌓아놩, 또 계단 놩 쌓고 경해나서. 게난, 그때도 아무나가 창고 짓고 못 햇주게. 좀 하는 사람들이 해야 창고 짓는 데도 강 허고 했지. 게난 육지서 온 사람들이 2년이여, 3~4년 돌일햇젠 허는 사람들 일 허는 거 보민 제대로 되질 안허여. 우리는 창고를 지으나 담을 쌓으나 어느 정도 헐만이 해줬거든. 우리가 제주사람이니까.

Q. 육지에서 온 사람들은 일을 잘 못하던가요?

경력이 오래 돼도 천상 제대로 못 배운 사람은 맨날 그거라. 10년을 해도 쌓는 것이 그거라.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렇게 허질 못허는 거라. 외담인 경우 처음부터 할 때에 줄은 보면서 줄을 바르게 굽돌을 놓아야 하고 한 덩어리 노민 그거 위에 돌을 어떵 놔야 맞을지 생각해 가명 놔야는디, 생각엇이 막 주워올리는 거라. 게난 일이 안 되는 거주게. 제대로 배우질 못헌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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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배우지 않아도 하다보니 저절로 잘 쌓게 된 겁니까?

내가 맡으민 다른 석공들하고 합해가지고 허당 보니까 실력이 늘었지. 우린 돌일을 허면서도 남한테 싫은 소리 듣지 말자고 일을 맡으민 헐만이 해줘야 된다는 식으로 해서. 딱 일당이 안 되더라도 일은 헐만이 해준다. 경허난 일이 더 하영 들어와서. 일 잘 못 허는 사람들보다는 금액 차이가 좀 이서났주만. 딴 사람들은 일이 엇엉 못해도 우린 일을 계속 했으니까. 우리안티 일 맡기젠 몇 달 동안 기다리고 해나서.

우리가 창고 짓엄시민 손님들이 찾아왕 계속 창고 지어도랜 허거든. 지금은 못 허캔 허민, 끝낭 해달라고 허면서, 계속해서 맡으멍 우리가 해 난거라. 처음 시작은 경헌거라. 창고 짓고 과수원 담 허고 허멍.

우리는 그 당시에 일을 해도 뭐허게 안 허고 헐 때까지 해준다는 식으로 해줬거든. 딱 일당 계산해가민 안 되메. 일이 제대로 될질 안허여. 많이도 받지도 안 허주만, 맡앙 되는대로 해불민 일이 잘 되질 안허여.

어떤 돌이 좋은 돌이냐면 만져보면 부드러운 돌이 이서

Q. 어떤 돌이 좋은 돌입니까?

돌을 만져 보민 알지만은 돌도 아무쌍 엇이 아무 돌이나 막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안 허여. 어느 정도 돌이 좀 부드러운 돌이라야 헐 거 아니라. 뭘 모르는 사람은 덮어 놓고 돌만 이시민 될 것 닮아도 그게 아니라. 돌도 벌를 때를 강 봥. 이 돌이민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건가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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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돌은 곰보가 있고 어떤 돌은 구멍이 전혀 없는 돌도 이서. 돌의 특성이 이서. 곰보가 있다고 돌이 부드러운 게 아니고, 곰보 없이 민짝허다고 돌이 세는 것이 아니. 곰보가 잇어도 돌이 막 부드러운 것이 있고, 곰보가 있어도 막 질긴 돌도 있고 허매. 곰보가 이시민 좋고 민짝헌 돌이랜 해영 나쁜 거 아니. 민짝헌 돌도 막 부드러운 돌이 있지 안 허여게. 

담 쌓기는 부드러운 돌이 좋주. 부드러운 돌이 때리민 원하는 대로 잘 나가지. 질긴 돌은 한 번에 잘 나가지도 안 허고. 허당보민 일로 나갈 거 절로도 나가 불고. 우리는 돌 쌓으멍 일해난 보난 돌 벌르는 것도 안 허민 안 될거 같아가지고 오겐노영 망치영 다 사멍 우선 벌르는 것도 허멍 해나서. 

돌깨는 것도 정석이 있고 면석이 이서,
정석은 외담, 면석은 한면만 좋으면 되고

Q. 돌창고 지을 돌은 어디서 가져왔습니까?

돌창고 같은 거 헐 땐 북촌 가그네 사당. 북촌이 돌질이 막 좋은 것은 아니지만 괜찮은 거라. 예전에는 여기저기 좋은 돌이 있어나신디 지금은 북촌밖에 엇어. 도련도 어떤 데는 돌이 막 세여. 좋은 돌은 별로 엇어. 있긴 있어도 부드러운 돌이 경 많지 안 허여.

처음엔 울타리 쌓으켄 하멍 해신디 돌장고 짓젠 허민 딱 재어놩, 돌아가멍 돌을 다 실어다 놀 거 아니라. 그 당시에는 북촌에서 벌르는 사람들이 셔 나서. 처음 시작할 때는 돌 벌렁 실어다가 허질 안 해나서. 우리 일한 지 중간쯤 되니까 북촌에서 기계로 벌르난 우리가 끌로 쪼상 허는 거에 몇 배 벌러 부러. 돌 깨는 것도 정석이 있고 면석이 이서.

정석은 외담으로 쌓는 거고 면석은 한 면만 좋으민 되는 거고. 면 하나만 좋고 대구리만 크민 되어. 창고 짓는 거는 정석으로 벌렁 거져오랜 해야 되어. 산남이나 겹감은 한 면만 보면 되니까 면석도 되고. 그 당시는 한 사람이 하루에 한 평을 싸나마나 허여. 한 평이믄 50덩어리 조금 못 들어가메. 하루 한 평 쌓는게 좀 힘들어. 돌도 좋아야 허주마는.

관덕정 기단석 같은 거 보민 잘 다음엉 쌓은 것들이 잇어. 특별히 허는 것들이 잇주게. 게난 그런 것들은 호루 몇 덩어리 못 부쪄. 그것들은 돌도 좋아햐 허주마는, 막 다듬당 호끔만 타져부러도 안 되매게. 호루 열댓 덩어리 붙이기도 힘들어. 대패질허는 거나 마찬가지여. 

돌일 할때 쓰는 연장들은 일본 이름이 많아

Q. 돌일 할때 어떤 연장들을 썼습니까?

망치, 정, 끌, 야, 지렛대 이런 것들이 필요허주. 제주시 동문통 위에 철현이라고 셔 나서. 거기 강 연장을 맞촹 와서. 그 사람이 아파가지고 죽으니까 그 다음에는 동문통에 이서나서.

게난 철현이가 노미나 뭐나 담금질을 잘 해나서게. 겐노나 뭐다 담금질을 잘해야 허는디. 이젠 하는 사람도 벌로 엇어.

대장간 강 보민 겐노 만드는 쇠가 이서. 만들어 도랜 허민 거기서 만들어줘. 겐노든 정이든 덮어놓고 만들엉 되는 게 아니고 쇠가 무른 건 안 되매. 대장간 하는 사람은 쇠를 잘 알아사.

한쪽 끝이 뾰족한 작은 망치를 스미망치, 우리가 부르는 거는 쓰미망치, 오겐노, 돌끌 때리는 거는 그냥 망치랜 허곡. 야를 때리는 큰메는 오겐노라고 허매. 큰건 오겐노, 작은 건 하겐노, 스미망치, 야(알귀), 우리말이사 잇주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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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렛대를 댓꼬랜도 허곡, 철괴랜도 해나서. 불르는 사람 마음이라. 지렛대라는 것도 쇠가 무르지 말아야주, 무르민 안 되어. 저쪽 철괴는 막 길어난 거라. 경헌디 두 번이나 꺾어져분 거라. 원체 쇠가 강한 거라노니까. 저걸로 큰 돌 잦히민 말이여, 힘주고 허당 보민 뿌러져부러. 두 번이나 꺾어진 거라. 철괴는 철현이 있을 때 시에 강 맨들아온 거주.

겐노도 하나, 두 개만 가졍은 안되주게. 겐노가 혼 댓 개 이상 잇어사 돼. 일허당 서너니 개, 가물아 가민, 비나 오고 놀아지민 겐노 혼 뻔에 서너니 개 댓개 씩 강 배려오고 해야 일을 시작허는 거라. 

겐노랜 허 말은 일본말이라. 하겐노 하겐노 허주게. 게난 경치쓰미랜 허는 것도이? 제주에서는 경 안해나서. 일본사람들이 와가지고 경치쓰미도 쌓고 하겐노도 뭐이고 고라난 거 닮아. 그 전에 제주 사람들은 경치쓰미 엇어낫젠. 경치쓰미 같은 거는 일본 사람들이 와서 기술을 배워줄 것으로 생각되어.

저 오겐노도 저것보단 막 커나서게. 철현이안티 강 잘라도랜 허영 족게 만든거라. 너무 무거완. 옛날 하르방덜 쓰던 건디 너무 커가지고, 자루는 길어도 되고 짧아도 관계 엇어. 저 고무줄 묶은 건 여기가 매끌매끌 허난 고무줄로 감아 놓은 거라. 미끄러지지 말랜. 철괴영 오겐노영 철현이 있을 때 헌거. 담금질을 잘 해났주게. 게난 그 사람도 젊을 때 가부난, 죽은 지 15년이 넘엄실 거라.

돌 쌓아놩 올라가는 발판을 ‘우마’라고 허여. 한림 쪽에서는 조캉생이라고 허던데 서촌하고 이디는 말하는 게 다른 것이 셔. 이딘 발판이옌도 허고 우마옌도 허고. 집 짓젠 허민 집 지을 낭들 다 실러 올 것 아니라. 그 낭으로 우선 발판 만들엉 돌아가면서 발판 다 세워 놓고, 돌 쌓고 나민 그 낭으로 집 짓고 했지.

게난 돌창고 쌓을 땐 우리 키 정도 올라오면은 계단 딱 만들어서 아래에서 돌 다듬엉 그 발판 위에 돌 올려놓고, 다시 키 만큼 돌을 쌓아놩 2단계 발판 놓고 그 위에서 다시 쌓고 해나서.

산담 허는 건
소들이 무덤을 막 훼손허니까 하는 거지

Q. 산담도 하셨습니까?

산담을 무사 해신고 허민. 옛날엔 소들이나 말들이 들어가민 막 파버린다고 헌거 아니라. 산담 해도 소나 말이 들어가긴 들어가는데 좀 덜하지. 그냥 내불민 목장에 소들이 무덤을 막 훼손하니까 헌 거지. 

옛날에는 산담을 아주 잘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허는 거는 한 대 여섯이 가민 하루에 다 해주게. 산담 하나 정도는 15톤 덤프로 돌이 3차 정도 들어가민 7~8명이면 허주게. 잘 허는 거 아니고 잘 허젠 하면은 3배 이상 비용이 들어가. 옛날에는 오름에 산 쓰민 산담 허잰허민, 딸딸이 같은 걸로 돌을 식겅 날라신디 딸딸이도 못가. 게민 이걸 전부 다 등짐으로 다 지영 올라가야 허는디. 그 당시에는 여자들도 산담 돌 지영 꼭대기꼬장 올리곡. 여자들도 잘 해나서.

산담 맡은 사람이 돌 지는 사람을 빌어당 해난 거라. 여자들도 막 허고 경해서. 그때는 할 일이 엇어노니까 여자이고 남자이고 석공일 허는디 잡부로 왕 일허젠 막 해나서. 그때는 사는 것이 어려울 때난 여자고 남자고 일거리만 이시민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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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산남 하영 햇주. 옛날 산담도 하영 맡앙 허곡, 가독공동묘지도 했주. 우리집 사람은 안 댕겨봐서. 내가 돌일 맡앙 허민 소나 담아주는 정도 밖에 안해 나서. 산담 헐 때 대여섯이 강소 담아 주는 여자들 두어이, 서너이 강 허주게. 소나 담아주고 

Q. 산담은 어떻게 쌓나요?

산담이나 울타리나 줄 딱 매영 굽은 발라야 되매. 굽도 그냥 허지 말고 어느 정도 땅을 파가지고 굽을 단단허게 해야 되매. 딴 것보다도 굽이 허술허면은 위에 잘 쌓아봐도 안되여. 바닥을 잘 정리해가지고 한 뼘 정도 굽이 묻어지게.

첫째 굽을 잘 해줘야 해. 굽을 잘 안 해주면 굽으로 해서 다 해싸져부러. 우에 잘 쌓아봐야 필요가 엇어. 마지막에 위에 ‘스라’ 보는 것도 잘봐야 되메. 산담허래 가민 여러이 갈 거 아니라게. 허당 보민 어떤 데는 들어가고 어떤 데는 나가고 여러 사람이 허민 맞질 안허여. 한 사람이 헐 때는 괜찮은디 여러 사람이 헐 때는이? 언제든지 선은 봐야되메. 나가는 선 들어가는 선. 이거 나갔져, 저거 들어갔져 허멍 고치고. 좀 익숙헌 사람은 한번 보면 선에 맞춰서 나가메.

산담은 외담으로 울타리를 쌓으민 처음부터 꼭대기까지 줄 보멍 쌓은 건지, 아니면 눈짐작으로 쌓은 건지 궁금허지이? 산담은 딱 굽자리만 바르민 돼여. 올라갈 때까지 줄 안 매도 괜찮아. 이 선을 보멍 선대로만 쭉 나가민 되는 거. 뭐헌 사람들은 담이 올라가도 줄 매멍 허는디 경헐 필요 엇어. 절로 이까지 쭉 굽 놀 거 아니라. 이 줄만 바르민 영 쌓아가멍 선을 딱 보는 거라. 봐가멍 그 선대로 딱 맞춰나가당 우 쓸 때는 딱 줄 매영, 그것에 딱 맞게 나가불민 되어.

산담 높이는 바깥에서 봤을 때 봉분이 반 정도 보이면 되어

우리가 산담 헐 때, 굽자리 놀 때, 줄 매영 놔가고. 우에 쓸 때에 높이 딱 재여가지고 줄 매민 이것저것 줄 맬 필요가 엇어. 굽만 발라불민 그것대로 쭉 나가민 돼여.

산담 모양이 앞은 넓고 뒤에는 좀 좁아지게 허여. 옛날식은 다 그거. 앞에 하고 뒤에 차이가 거진 한 발 차이나 나서. 옛날 막 주워 올려 쌓은 산담 보민 앞담허고 뒷담허고 한 발씩 차이나 나서. 산담 높이는 밖에서 봤을 때 봉분이 반 정도 보일 높이면 돼여. 막 높으민 봉분이 까져 보이고, 안에 담아 논 거 닮앙 안 돼여. 외담이나 접담이나 산담 헐 땐 밖에서 봉분이 반 정도 보여야 시원해서 좋지, 막 높아도 돗통 모냥으로 돼서 막아졍 보기가 좋지 안 허여. 옛날 산담하는 식은 그거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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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산담 신문을 많이 놔신디. 근래에 산담 쌓고나민 밖에 팡돌을 놓기도 해나서. 팡돌은 가운데 놓기도 하고 옆으로 놔도 되고. 요즘은 옛날추룩 산담 안 허영 다 가족공동묘지들을 허난. 

지난 번 회천에서 산담 쌓을 때 보난 무덤 안에 돌로 만든 물그릇도 이선게마는. 옛날 하르방들이 그릇이영 뭐영 만들엉 놔신디 난 처음 보는 거. 상석도 처음에는 여기 석공들이 만들어나서. 그 후에 육지에서 석재사들이 들여오고 제주에서도 만들고 했주.

Q. 담을 잘 쌓는 비법 있으면 말해주십시오.

비법은 딴 거 엇어. 줄에 맞춰서 나갔나 안 나갔나 보고, 한 덩이 놓으민 그 위에 어떵 놓을지 계산하고, 다 와가민 되지 별 비법이랄 게 엇어. 

돌은 그 위에 다음 돌 붙일 생각을 해가멍 붙이면 되어. 외줄로 올라가지 않게 천상 엇매겨가멍 엇갈리게 허민 되어. 딱딱 물려지게. 게난 여기 산담 같은 것도 그전에는 막 잘허멍 허지 안 해나서. 돈 조금 있거나 일본에 강 돈 번 사람들이 제주 조상 묘에 산담이라도 잘하겠다고. 경한 사람은 산담도 막 좋게 해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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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돌담 쌓는 일 하면서 아프진 않았나요?

그때는 괜찮아서. 허리가 조금 아파도 약이나 먹으민 거뜬해서게. 허리 아프민 약 사당 먹으민 좋덴 해서 약 먹으니까 괜찮대. 다른 데는 괜찮은데 허리가 안 좋아.

아침 5시 전이 일어난 밥 먹고 현장에 가젠허민 걸엉도 가고. 해가 뜨기 전이 강, 해가 막 지도록 허당 오곡 허는 것이 일이주.

이디서 바농오름까지 걸엉 강 산담 해나서. 걸엉가민 거진 한 시간 걸려. 딸딸이 타고 갈 때도 있고, 걸엉 갈 때도 있고. 그때는 돌을 딸딸이로 식거나난. 여럿이 가민 하루에 끝날 때도 있고 며칠 걸릴 때도 있주게.

Q. 돌일 말고 다른 일도 하셨습니까?

집에서 농사는 조금씩 햇주게. 보리 같은 거 갈고, 자기 먹을 농사 정도는 했주. 일이 있을 때는 한여름에도 돌일을 햇주. 지금 이 정도 더위에도 계속 해시난. 일하기에는 가을 겨울이 괜찮아. 봄 가을 따질 건 엇주마는.

돌일은 은퇴랑 마랑 회천에 산담 허여 나서 허리가 좋지 못해가지고 일을 안 해서. 2020년인가. 회천 가름(마을) 안에 종국이네 울타리담 해주고, 안에도 조금 해주고. 그 후로는 허리도 좋지 않고 해서 그만둬서. 

돌담 쌓앙 돈이나 버나 마나. 촌에서 이녁 먹고 사는 데는 충분허지 안 허여. 서오누이. 딸 둘에 아들 하나. 이 아이덜 공부시키고, 먹고, 살고 허민 된 거주. 아무것도 엇인 사람이 무슨 거 어떵 말이라. 물려받은 재산도 엇고. 우리 집도 다 일허연 산거라. 그때는 상당히 살기가 어려울 때라서. 

제라헌 사람에게 배우지 못 허고
얼렁뚱땅 허당보민 일이 되지 안 허여

석공 일이고 뭐이고 제라허게 배운 사람은 1, 2년만 따라 댕기민 되는디 경 안 허영 험방둠방 허는 사람들은 몇 년 해봐도 배우질 못허여. 조금 헌 사람들은 한 일 년만 따라댕겨도 제라허게 허메. 제라헌 사람에게 배우지도 못 허고 얼렁뚱땅 허당보민 일이 되지도 안 허곡.

잘 허는 사람만 따라잡젠 허면은 자연적으로 잘 허게 되는 거. 자기가 원 못해도 그 사람을 따라가젠 허당 보민 배우게 되는 거주게. 경 안 허민 만날 해봐도 그거라.

우리 일헐 땐 딴 사람들 잘한 것도 보멍. 어떵허민 되는지 생각허면서 허난 되는디 경 안허영 그냥 무대뽀로 막 허당 보민 일 허는 게 제대로 되질 안 허여. 우리 산담허레 강 보민 “나 10년 햇수다!” 허는디, 10년 허민 무슨 소용이라게. 제대로 허질 못하는 디. 게난 1년을 해도 제대로 배운 사람들은 잘 허는데 얼랑둘랑 허던 사람들은 만날 해봐도 그거라.

장인의 마지막 돌 작업.
장인의 마지막 돌 작업.

 


[나의 시아버님을 말한다]

아버님은 큰 산이고 비옥한 대지
며느리 양보경

시댁에 가보면 아버님께서 밖거리 수돗가에 앉아 온몸에 묻은 먼지를 씻어 내고 계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버님은 담 쌓는 일을 하셔서 일을 마치고 오시면 항상 씻으시는 데 시간이 꽤 걸리셨다. 저녁 준비를 하다 보면 아버님이 오시고 우리는 아버지의 도시락과 짐을 정리한다.

어머님은 도시락을 여시며 항상 하시는 말씀이,

“또 남겼네, 남은 거는 내가 먹어야겠다” 하시며 남은 밥과 반찬은 상 위에 올리셨다. 그랬다. 아버님은 한번 집중해서 일하시면 점심식사도 대충 드시거나, 미루고 일에 전념하셨던 것 같다. 

한번은 궁금해서 여쭤보았더니 말씀하셨다.

“시간은 한정돼 있고, 퇴근 시간은 가까워져 오는데 일은 눈에 들어오니 오늘 할 것을 미루는 것을 할 수 없어서 대충 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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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집중하실 때 마다 담배를 갑으로 피우셨구나 싶었다. 지금은 현직에서 물러나셔서 그런지, 연세가 드셔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갑으로 피우시던 담배를 끊으셨고, 아끼는 마음으로 드시던 커피믹스는 하루에 두서너 잔으로 현저히 줄어들었다.

아버님은 거의 말씀이 없으신 편이다. 아버님이 자랑스럽다고 말씀드렸더니, 미소 지으시면서 신나게 말씀하시던 우리 아버님, 본인은 알고 계실까? 우리 자녀들이 아버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하는지.

돌챙이이신 아버님은 우리에게는 큰 산이시고, 비옥한 대지이다.


# 조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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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한림읍 태생
2002년 제주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서양화 전공)
2019년 제주대학교 지리교육과 석사 (석사 논문 - 제주도 지역별 돌담의 특징과 축조 방식)
2021년 제주대학교 지리교육과 박사과정 수료
2021년 석공예기능사, 문화재수리기능자
2023년 제주도 농어업유산위원회 위원

제주도 안에서 돌챙이로 살아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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